탈북자 구출하다 실종된 제프리 박 목사
2000년 중국 연길에서 탈북자를 돕던 김동식 목사의 납북에 이어,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장정에 참여, 이들의 자유를 위해 힘을 쏟았던 한 목사가 메콩강에서 실종되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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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목사안수를 받은 뒤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중국 옌지(延吉) 등지에서 10년 넘게 사비를 털어 선교활동과 탈북자 지원활동을 해왔었다. 옌지에서 탈북 어린이를 위한 고아원을 꾸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중 만나게 된 이번 일행이 떠날 차비가 없는 것을 보고 직접 이번 일에 뛰어 들게 된 것이다.
미국의 한 교포신문은 그의 실종을 전하면서 "꽃제비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도 험지에서 목숨과 돈을 아끼지 않은 박 목사를 통해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메콩강에서 강 건너다 실종, 사망추정
천기원 두리하나선교회 대표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달 24일 미얀마를 찾아가 상황을 살피고 돌아왔다고 밝히고 탈북자 6명이 미얀마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갇혔을 당시 작성했다는 진술서 20장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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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에 따르면 박 목사 일행은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 진입 실패 이후 지난해 12월말 라오스를 거쳐 태국 난민수용소로 목적지로 결정, 1월 2일 미얀마와 라오스의 경계가 되는 메콩강에 도착했다. 100원을 주고 구한 타이어 튜브 4개를 이용해 70m의 강을 건너기로 하고 탈북자들부터 먼저 강을 건너도록 한 후 박 목사는 튜브없이 수영으로 건너가기 위해 물에 들어섰다. 처음 시도한 모세씨(가명·51)가 메고 가던 베낭을 떠내려보낸채 겨우 건넜고, 5명의 탈북자들은 센 물살에 휩쓸려 1시간 가량을 떠내려 가다가 나타난 쪽배에 의해 겨우 구출됐다. 튜브도 없이 험한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휩쓸린 박 목사는 구출되지 못한채 실종됐다. 모세씨가 박 목사가 물살에 휘말려 가라앉은 것을 본 후 다시 솟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 일행은 시신이 물에 뜨길 기다렸으나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천 대표는 동행하던 탈북자들이 쓴 진술서를 근거로 "지난 1월 2일 박 목사가 탈북자 6명과 함께 메콩강을 건너던 중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으며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 건너기 직전 박 목사, "이 점심이 최후의 만찬"
탈북자들은 "강가에서 할아버지와 점심을 먹는데 '이 점심이 최후의 만찬'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일정이 시작된 29일 탈북자 일행과 박 목사가 함께 작성한 유서도 각자 지니고 있었는데, 박목사의 '유언' 내용은 천국으로 보내달라는 것과 아들이 선교사업을 잘 하기를 바라는 것, 할머니(부인)한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저희가 자유를 누리는 것을 보면 죽어도 원이 없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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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와 동행했던 탈북자 일행은 진술서를 통해 박 목사를 "할아버지는 말이 없으시고 너무나 부드럽고 좋으신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미선(가명·25)씨는 "처음에 우리와 같은 탈북자 인줄 알았다"며, "저렇게 연세가 많으신 분이 이 길을 떠나는가 하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박 목사는 일정을 계획하고 탈북자 일행에게 숨어지낼 동안의 생활비와 비행기 티켓, 신분증을 마련하는 등 일체비용을 부담하며 정성을 쏟았다. 부흥이 엄마(가명·44)는 진술서를 통해 박 목사가 "2005년 2월이면 인권법안(미 북한인권법안)이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며 "미국에 고아원을 꾸리고 북한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겠다고 말한바 있다"고 말했다.
부흥이 엄마는 이어 "저희같은 북한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위험한 길을 걸으시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라고 하시면서, 저희가 한국에 가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보면 죽어도 원이 없다고 하셨어요"라며, "탈북자를 돕는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늘 안타까워하셨다"고 덧붙였다. 이미선씨(가명·25)는 "할머니(부인), 아드님께 정말로 죄송하다"며, "하루빨리 할아버지 행처와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탈북자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려다 자신을 희생한 박 목사의 순교에 머리가 숙여진다.(konas)
김수연(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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