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유 선언에도 놀라지 않는 한국
한국은 외국사람들 눈에 불가사의한 나라로 비처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최단 시일 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절대빈곤을 타파한 것도 그렇고 비록 변증법적이긴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민주화의 대장정도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초유의 외환위기를 맞아 국가부도 직전에서도 일어섰다. 가진 자의 흥청망청 과소비 때문에 나라가 결딴 날 것 같아도 끄떡없다. 노사간의 전투적 대결로 회사가 곧 문을 닫을 것 같은데도 잘 버텨나간다. 정치도 벼랑 끝에서 위기와 불안의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이전투구에도 그냥 굴러간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선언해도 놀라지 않는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달 10일 핵 보유를 선언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처음으로 그 사실을 시인했다. 북한이 핵무장을 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북한 핵무기의 첫 번째 타깃은 아무래도 한국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부나 국민은 동요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은 말 할 것도 없이 미국, 영국, 프랑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서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주한 미 제2사단에는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와 전차 등 움직이는 목표물을 ‘족집게 공격’하는 ‘지능형 자탄(子彈)’을 장착한 지대지 미사일 수십 발을 배치했다는 보도도 있다. 만일의 북한 도발사태에 대비하려는 조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부나 국민은 핵무기 보유 파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태연하고 여유있는 모습같다. 핵폭탄이 가공할 만한 대량살상무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강 건너 불 보듯 하니 정말 놀랄 일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북한이 설마 핵무기를 보유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핵 카드를 써 먹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외교적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핵 보유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일 수 도 있다. 또한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북한의 경제사정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어디까지나 핵 공갈로 보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무엇이 문제될 것이냐는 시각이다. 강대국들도 다 갖고 있는 핵무기를 한국이 갖지 못한 것을 탓해야지 북한 핵무기가 뭐가 문제가 될 수 있느냐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북한이 강대국들의 저지 노력에도 굴하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정말 잘한 일이라는 시각일 수 있다.
셋째, 북한이 설사 핵 무장을 했더라도 같은 민족인 한국을 상대로 써 먹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결국 한국이 아닌 세계적 패권국가를겨냥하여 자위수단으로 개발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악의 축이니 폭정의 전초기지니 하면서 자극하는 데 누군들 가만히 있겠느냐고 이해하는 입장 때문일 것이다. 노 대통령도 북한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해도 조금도 겁 내지 않는 이유가 첫 번째라면 몰라도 나머지 두 가지 때문이라면 진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면 우리도 그에 필적할만한 대응무기 개발을 추진하거나 핵 억지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양치는 아이가 재미삼아 오지 않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믿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국가안보에 관한한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주의가 보다 적실성이 높은 것이 사실 아닌가. (konas)
홍 득 표(인하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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