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27)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비
전쟁은 끝났지만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이 있다. 경기도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군의 이름으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였던 스미스 부대원도 그들 중 일부이다. 1955년 7월 5일 미 제24사단 장병들이 격전의 현장을 찾아 부대원 총원 숫자였던 540개의 돌을 쌓았다. 전사한 전우들의 넋을 위로하고 초전을 기념하기 위한 추모의 기념비를 세웠다. ‘유엔군 초전기념비’다. 그 돌을 하나하나 쌓을 때 참전용사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감히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마음이었으리라. 73년 전, 6.25전쟁 발발 10일 만에 치러진 ‘오산 죽미령 전투’의 참상은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비’와 ‘유엔군 초전기념관’, 그리고 이곳에 조성된 ‘오산죽미령평화공원’에 오롯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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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5일, 경부국도와 철도를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던 죽미령에서 유엔군 선봉대 미 제24사단 소속 1대대장 찰스 스미스 중령의 이름을 따 '스미스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로 불리던 장병들이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 540명의 스미스부대원 중 181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북한군은 전사 42명, 부상 85명, 전차 4대가 격파되는 손실을 입었다.
그날 오전 8시 16분부터 6시간 14분간 벌어진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미 지상군의 참전을 확인하게 되었고, 미군은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식하고 적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글라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사령관은 전후 회고록에서 “스미스 특임대의 오산 죽미령 전투는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의 작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투 이후 북한군이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10일 넘는 시간을 소비하는 사이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고 맥아더 사령관은 두 달여 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전세를 뒤집었다. 오산 죽미령 전투 이후 유엔군의 추가파병이 이어졌다.
올해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73년이 되었고 정전협정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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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22개국 젊은이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해 이 땅에서 목숨을 바쳤다. 이들이 피흘려 싸워 지켜낸 동맹의 가치가 오늘날 한국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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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비 방문은 한미양국이 혈맹으로서 관계 뿐만아니라 향후 동맹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인도하는 길잡이를 만난 느낌이었다.
한미관계는 6.25전쟁 시 유엔군의 파병과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로 잿더미에서 오늘날의 부흥을 일궈내는 기적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재건사업에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군사안보, 경제원조 등을 넘어선 평화와 번영의 동맹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출발지,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 있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시계는 1950년 7월 5일 오후 2시 30분에 멈춰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춤없이 계속 움직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보답이요, 의무이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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