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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1) 휴전선과 함께한 한여름 밤의 꿈

Written by. 김태희   입력 : 2024-08-20 오후 4: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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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4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과 선택을 고민하는 혹자의 모습이 담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5월의 어느 날 문득 발견한 14회 대학생 국토대장정 포스터와 짧은 고민 속에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기까지 1시간 남짓 걸린 나의 선택은 국토대장정을 다녀온 현재 올해의 최고의 선택이었지 않았나 싶다.

사실 2024년 상반기는 나에게 있어 좋지 않은 선택의 결과와 기억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해는 참 안되는 해구나. 그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이런 시간들이 지나면 분명 내년, 내후년엔 운이 들어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속에 스스로를 체념하고 자책하며 보내던 나날이었다. 새로운 공기, 분위기 속에 나를 환기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향군국토대장정을 발견하였다. 마지막 대학생활, 버킷리스트, 안보관 확립 등의 거창한 말로 지원동기를 포장하여 작성하였으나 실상은 ‘다른 것에 집중하여 생활하다 보면 좋지 않은 선택의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자기 안도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6박 7일이라는 기간 동안 스스로의 기제로서 자기방어에 사로잡혀 아쉬웠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이었기에 지금 내 속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남아 있다.

1 일차(6.25)

나는 지방 사람이다. 지방 사람으로서 가장 서러운 점은 서울에 일정이 있을 때, 마음 편히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지인을 두고 있었기에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9시 반이라는 도착시간에 맞추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설레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 속에 나 자신을 던지는 일정이었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전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조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엔 스텝으로 지원했기에 당연히 스텝으로 활동할 것이라 짐작하고 갔었지만 그게 아니었기에 당혹스러움이 있었다. 알고 보니 스텝의 경우 유경험자 위주로 뽑았기에 나의 경우 자격 미달이였던 것이다. 의아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현재는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조원들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모두 어린 동생들이었다. 나이가 있어 조원들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발 벗고 조장이 되고 싶다는 조원이 있었고 조장의 배려? 덕에 내 부담도 홀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어색한 우리의 분위기는 출정식 예행연습의 열기에 잊혀 극복되지 못하였고 오리엔테이션은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출정식은 6.25 전쟁 74주년 정부 행사가 대구에서 열리는 바람에 아쉽게 재향군인회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가장 기대되는 일정 중 하나로서 정부 행사를 눈앞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단장님의 출정식 신고를 시작으로 기념 촬영 및 회장님 등과 간단한 악수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버스에 올라탔다. 14회 대학생 국토대장정, 드디어 시작이다. 뒤로 지나서는 빌딩들을 바라보며 뒤숭생숭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버스가 처음 정차한 곳은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선거 이후 당선된 국회의원 및 대통령이 가장 먼저 인사하는 곳,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TV 속에서만 바라봤던 곳을 방문하는 경험은 새로운 느낌으로 가득했다. 6.25 행사로서 제식용 총을 든 군인들의 퍼포먼스 관람을 시작으로 현충원 참배를 진행하였다. 단체 묵념을 하며 이곳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정신이 깃든 곳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6월 25일”에 호국 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을 생각해보았던 것이 언제였을까. 초, 중학생 시절이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잊고 지냈던 것 같았다. 새삼 어색하고도 오래된 옛 기억을 상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근처에서 점심으로 육개장을 먹고 간단한 휴식을 취한 뒤 차량에 탑승해 첫날 종착지인 12사단 서화대대로 이동했다. 12사단 서화대대에 도착하기 앞서 버스에 내려 1시간 정도 도보로 이동했다. 온 사방이 산으로 뒤덮여 있고 옆에는 강이 흐르며, 시골 냄새 가득히 맑은 공기로 기분이 절로 좋아졌던 첫 도보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언제 이런 곳에 와봤을까. 할머니 댁이 시골에 있어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낯설면서도 친숙한 느낌이었다.

부대 앞에서 국방모바일보안(외부인용) 앱을 설치하고 카메라 기능을 정지시켰는데 예비역으로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현역 때는 촬영 금지 스티커만 부착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런 새로운 것이 생겼을까’하고 생각 들었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부대에서 먹은 저녁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역하고 오랜 기간이 지나가고도 군대에서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일반 사회에서 경험해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조차 전역하고 6년이 넘는 기간이 지났지만 군대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기만 하다. 그 중, 군대에서 먹었던 닭백숙의 맛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이다. 그만큼 군대에서의 식사 경험은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로 저장되어 있다. 그런 경험을 다시 해볼 것이라 전혀 기대 못 했지만, 다시 하게 될 줄 이야... 식사를 하며 ‘넘 행복하다’ 는 말을 속으로 연거푸 했다.

저녁 식사 후 조원들과 간단히 다과회를 가지며 사소한 이야기도 하고 마지막 날 있을 장기자랑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6박 7일 중 첫날이 이렇게 지나갔다. 아마도 대장정 기간 2번째로 기억에 남았던 하루였지 않았을까 싶다.

2 일차(6.26)

대장정의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장마 기간과 겹쳐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첫 날처럼 날이 참. 좋았다. 버스로 이동하는 길에 보이는 푸른 바다 물빛과 심심하지 말라고 하얀 파도가 소용돌이 쳐 조화를 이룬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버스의 정차로 정신을 차렸다. 앞을 바라보니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북한과 근접한 곳에 다다른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이 되었다. DMZ를 사이에 두고 70여 년간 분단되어 총을 겨누고 있는 두 국가의 모습을 곧 보는 것이었다. 우선 DMZ 박물관에 도착하여 DMZ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관람을 이어갔다. DMZ 박물관 견학 시간은 아주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비무장지대 내 마을(기정동 마을(북한), 대성동 마을(남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M14 대인지뢰, M16A1대인지뢰 등 다양한 지뢰가 존재하고 DMZ에 매설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관람이 끝나갈 무렵에는 대북확성기도 볼 수 있었다. DMZ 박물관을 단순히 눈으로만 즐기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운 좋게도 관람 중에 편지를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시간이 부족했지만 무궁화 속 내 바람을 적어 다른 편지와 함께 걸어두었다.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안전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06.26. 김태희 왔다가 감”

DMZ 박물관에 이어 고성통일전망대를 방문하였다. 처음 본 DMZ의 모습은 그저 누구의 손길도 없이 70여 년간 홀로 버려진 광활하고 푸르른 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를 뒤로하고 손 닿을 곳에 북한 지역이 있었다. 동해안 선을 따라 북한 지역까지 이어진 ‘도로’를 보고 있자니 이 이상으로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느꼈다. 고성은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 모두에 영토가 존재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고성읍은 북한에 있고 휴전선을 기준으로 현내면 등은 남한 지역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도 분단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지역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먹먹함을 느꼈다.

 ▲ 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전망대에서의 여운을 뒤로하고 짧게 도보로 이동한 후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짧은 휴식시간 동안 근처 눈 앞에 펼쳐진 ‘동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르고 가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노클링을 하며 유유자적 바다 위를 헤엄치는 사람들,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치고 웃음꽃 피운 사람들의 모습,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후 버스로 이동하여 2 일차 숙박 장소인 7사단 신병대대로 향했다. 이동 중, 잠시 백골병단 전적비를 들러 6. 25전쟁에 참전한 백골병단 장병의 넋을 기렸다. 6.25 전쟁을 포함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셨던 호국 영웅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부끄럼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서 이런 분들을 기리기 위한 정책들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이 높아지면서도 나처럼 많은 동료 시민들이 이런 비석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강화된 홍보 및 안보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호국 영웅들의 발자취가 가득한 창밖의 자연환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즈음 7사단 신병교육대대에 도착하였다. 이후 저녁식사 및 개인정비를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3 일차(6.27)

3일차 아침이 밝았다. 국토대장정을 하러 온 것인지, 병영 체험을 하러 온 것인지 모호한 느낌이 들면서도 조금씩 내 앞에 펼쳐진 주변 환경들이 익숙해져 갔다. 달이 선명하게 보이는 아침 하늘을 보니 오늘도 날이 맑을 것이라 짐작했다. 출발하기 앞서 조원들과 사진을 남겼다. 이 날씨, 이 풍경, 함께한 우리 조원들로 당시의 기분을 남기고 싶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평화의 댐이었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임남댐 방류에 대비하여 건설되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평화의 댐을 거쳐 남한의 북한강으로 이어진다. 여름철 장마 시즌마다 북한에서 방류된 물로 인해 군남댐 수위에 촉각을 둔 정부의 모습이 뉴스에 다루어지곤 하는데 이와 비슷한 목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줄기가 이어진 관계, 남과 북은 휴전 상태에 있는 분단국가로서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일국가인 것이다. 거대하고 웅장한 댐 수문과 평화롭게 저수되어 있는 댐 물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내는 이런 슬픈 이면이 있다.

평화의 댐 구경을 한 후 발길을 돌려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2시간여를 도보로 이동하였는데 기수단을 시작으로 2조 깃발을 든 조장을 뒤따라 걸으며 처음으로 안보 관광보다는 걸음을 이어가는 내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에 지원하기 앞서 펼쳤던 상상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선두에서 걸으면 뒤 조의 대원분들이 따라오기 힘들다고 천천히 걸어가 달라고 소리치는 이야기를 듣고, 뒤에서 걸으면 앞 조의 대원분들을 따라가기 바빠 걷고 뛰기를 반복하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걸어가며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었던 2조 조원들 덕분에 도보로서의 이동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2조 파이팅”이라는 조장의 구령에 맞춰 “2조 화이팅!”이라는 응원의 소리가 주위 산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  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이윽고 터널이 나왔다. 터널 속 도보 이동은 아마도 도보로 이동했던 코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건조하고 더운 공기는 시원하고 습한 공기로 매워졌다. 어두운 조명 속에 희미하게 밝게 비추고 있던 터널 출구가 먼발치에서 보였다. 자동차 길이었지만 자동차가 지나가지 않자 뒤에서부터 뛰어와 앞질러 가는 대원들이 있었다. “뛰어가자”라는 누군가의 소리에 따라 하나둘씩 대열에서 흩어져 뛰어가는 대원들의 모습에 내 안의 아드레날린 터지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뛰어가고 있었다. 질주를 하며 스쳐 지나간 시원한 공기, 희미한 빛이 출구가 가까워지며 확신의 밝은 빛으로 다가오기까지의 가슴 벅찬 감정은 가빠진 숨과 조금씩 조여오는 다리 통증을 이겨내고 있었다. 어느덧 출구에 도착하였다. “와하~”

터널 끝에서 맞이한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걸어간 끝에 점심식사 장소인 ‘오미리 막국수’에 도착하였다. 어릴 적 여름 휴가지로 강원도 여행을 떠나 여행지서 먹었던 막국수의 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는데 막국수라는 단어만 들어도 생각나는 기억이다. 인원이 많아 조금의 대기시간이 필요했기에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그 짧은 시간이 살짝 고문? 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조금 뒤, 막국수가 나왔다. 막국수 소스를 한가득 덜어 넣고 참기름과 식초를 한 바퀴 돌린 후 차가운 육수를 살짝 얹어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심심한 맛이 살짝 아쉬울 법하였지만 먹으면서 더위가 쏴악 사라지는 것이 은은한 여운을 남기었다.

배를 든든히 하고 다시금 배낭을 고쳐 매어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붕어섬까지. 화천을 가로지르는 북한강을 따라 이동하는 코스로 조정 경기를 하는 사람을 비롯해 수상 레저를 즐기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보 이동 거리가 비교적 장거리였고 오전에 쌓인 피로가 풀리지 않아 힘들기도 하였으나 뒤에서 앞에서 함께 이끌어 걸어준 조원들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붕어섬을 끝으로 오늘의 도보 일정을 마무리하였고 숙소인 1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남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엔 안보국장님이 격려차 방문하셔서 다과회가 진행되었는데, 안보국장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충고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멘토로서 전해지는 말들일 수 있겠지만, 바라지 않는 사람에겐 꼰대로서 전해지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나의 경우, 사회에선 초년생으로서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나 학교에선 가장 큰 연장자로서 맏이를 담당하는 위치에 서 있다. 자연스럽게 어린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기회가 많이 생기는데, 혹여나 나이가 있어 충고로서 전했던 말들이 다른 학생들에겐 꼰대질이 되지 않았는지, 내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신뢰 관계를 충분히 쌓아갔었는지를 돌이켜볼 수 있었기에 안보국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4 일차(6.28)

대장정 일정의 중반에 접어들었다. 군 시설을 활용하여 숙식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대와 관련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첫 일정으로 15사단에서 장비견학을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의 일종이지 않았을까. 사실 군 생활 동안 직간접적으로 여러 장비를 보았기에 엄청 새롭고 신기하다고 느꼈던 장비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함께한 대장정 인원 대부분이 미필자였고 여성분들도 많았기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는 많은 부분들을 체험하고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학군사관 후보생인 우리 조 조장의 경우 군장 배낭을 포함해 완전 군장 후 총을 목에 메어 대원 대표로서 군인 간접 체험을 하였는데 미래 자신의 모습 속에 설레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나 역시 절로 흐뭇할 수 있었다.

장비견학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하여 근처 금성지구전투전적비에서 추모행사를 한 후 점심식사를 하였다. 금성지구전투전적비 옆에는 인근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폭우로 인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순직하게 된 23인의 넋을 기린 추모비도 있었다. 그 기간 옆 부대에서 함께 군 생활을 하셨던 단장님의 당시 상황 등의 말씀을 들으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던 전우들의 안녕을 함께 빌었다.

오후엔 철원 한탄강 유역의 주상절리 길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일정상 관람 및 추모시간이 짧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순간의 반복에서 벗어나 모처럼 여유 있게 자연과 동화하고 조원들과 사진 찍으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절벽 위에 하얀 철골로 엮어진 다리. 흔들거리는 다리 속에 내 다리도 후 덜덜 떨렸지만 떨렸던 그 순간도 추억이다. 누군가가 휴대폰 카메라만 내밀면 어떤 이의 훌륭한 촬영 모델이 되어 있고, 푸른 녹음과 끝을 알 수 없는 하늘 경계로 구름 조각들이 심심치 않게 떠 있는 그림을 담을 수 있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었기에 ‘이게 지상낙원이지 않을까.’ 싶어 연신 그 모습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주상절리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삼부연 폭포가 나온다. 가는 길은 조그마한 동굴을 지나야 하는데 어두운 터널부터 시작된 시원한 공기는 동굴을 벗어나 세찬 물줄기의 폭포 아래까지 이어졌다. 그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어갔던 순간이 폭염주의보 의 경고가 울리는 요즘엔 그립기만 하다.

행복했던 여유와 작별하고 오늘의 숙소인 6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하여 남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대장정 기간 가장 여유와 낭만을 몸소 즐길 수 있었던 하루였다.

5 일차(6.29)

어느덧 대장정의 후반으로 우리의 시간은 향했다. 우리의 여정은 철원/연천 지역의 제2 땅굴 > 평화전망대 > 백마고지전적비 > 태풍전망대로 이어졌다.

 ▲ 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제2 땅굴은 1975년에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가 반복적으로 들려오던 폭발음을 신고하면서 발견하게 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다. 안전모를 쓰고 앞사람의 꽁무니를 쫓아 들어가다 보면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에, 몸을 숙이고 이동해야 하는 높이의 땅굴이 지하 아래로 펼쳐졌다.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여 땅굴을 개발했기에 땅굴 벽엔 하얀 동그라미 페인트 자국이 여럿 남겨져 있었고 다급하게 개발하느라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은 듯 거칠고 다소 부자연스런 형체의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50여 년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이끼가 군 데 생존해 있고 서늘한 공기가 물로 액화되어 떨어지면서 곳곳에 조그마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내려갈 땐 어디가 끝인지 몰랐기에 끝없이 계속된 땅굴 속 길들이 무섭기도 하였고 이런 땅굴 개발을 시도한 북한의 치밀함에 한 번 더 무서워졌었다. 통일 염원 성취 우물을 끝으로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며 관람을 마무리했다. 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지 발견된 현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전쟁 중인(휴전으로)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내가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땅굴 관람 후 인근의 철원평화전망대를 방문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으로 대부분 이뤄진 DMZ 구역은 앞서 1일 차에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본 DMZ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철책선을 경계로 군 데 gp 초소들이 있어 삼엄한 분위기였고 전망대에 올라 DMZ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들뜬 분위기 덕에 더욱 대조되어 보였다. 전망대에선 디지털 망원경으로 인공기가 걸린 gp 초소와 북한 사람의 형체도 볼 수 있었다. 북한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이 앞섰지만 오랜 휴전으로 인해 무뎌진 것인지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무서움보다는 신기함이 더 앞섰던 내 마음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폐역이 된 월정리역 관람을 마치고 인근의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전투식량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군 생활 당시 먹었던 전투식량과 외관은 달랐지만 맛은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전투식량의 파운드 케이크를 좋아했던 1인으로서 파운드 케이크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시는 먹어보지 못할 추억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군 생활 기억도 회상하고 힘이 났다. 무엇보다 향군 여성회에서 응원차 아이스크림과 초코바 등을 간식으로 나눠주셨는데 이보다 더 든든하고 힘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엔 도보로 이동하여 백마고지전적비를 답사하였다. 무더운 날씨에 지칠 수도 있었지만 대원들과 함께 걸으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전적비 아래서 가벼운 묵념 후 동영상 촬영을 위해 대형을 이뤄 걸어 내려갔다. 나는 대형 뒤쪽에 있었는데 내려갈 때 일사불란하게 대형에 맞춰 이동하였던 모습에 비장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상에 잘 담겼는지는 15기 지원자들의 지원률에서 확인하는 걸로...

전적비 답사 후 숙소인 28사단 신병교육대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코스로 태풍전망대를 들렀다. 다른 곳과는 달리 군 보안이 엄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기억 속에만 저장해두는 것이 아쉬웠지만 노리고지, 베티고지 등의 유명한 고지와 귀전마을 오장농 농장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기에 이로써 아쉬움을 달랬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28사단 신병교육대대에 도착했다. 이전의 어느 일정보다도 많은 장소를 소화했던 탓에 피곤하기도 하고 기억 속에 잘 저장되어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답사지를 줄이는 일정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피로감을 느끼며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악대의 군가 연주 소리였다. 군인 시절 40km의 행군을 마치고 사단 내부로 들어오는 길엔 어김없이 군악대의 군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제 도착했구나’라는 안도감과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28사단 신병교육대대 건물은 어느 신병교육대대보다도 인상 깊었다. 군 시설로 깜짝 놀라기 쉽지 않지만, 대학교 캠퍼스 신축 기숙사 건물 같은 느낌이랄까. 나날이 더 좋아지는 병영 시설 및 문화를 바라보며 군인이 더욱 대접받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티라미수 케이크로 디저트까지 먹으며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였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6 일차(6.30)

6 일차 아침의 모습은 그동안의 아침과 달랐다. 새벽부터 비가 왔던 탓에 실내에서 아침점호를 약식으로 진행했다. 대장정 기간 날씨가 좋았던 탓에 ‘하루 정도 비 내리는 날의 행군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군인 시절 훈련 간 이동 중에 판초 우의를 입고도 온몸이 젖었고 덥고 습했으며 꿉꿉했던 그 냄새를 잊을 수 없었기에 정말 피하고 싶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오전 내내 비는 그치지 않고 많이 내렸고 도보 이동 코스가 길었기에 어쩔 수 없이 판초 우의를 입고 이동을 했다. 출발했을 당시엔 하늘에서 폭포가 내렸었다. 산 언덕을 넘어 아스팔트가 아닌 농경지 사이로 이동하는 코스였기에 신발은 온통 진흙으로 덮였다. 그 와중에 물이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앞길이 물웅덩이로 덮여 있을 때면 조금이라도 발이 젖지 않기 위해 앞꿈치로 걷거나 지반이 상대적으로 높아 덜 고여 있는 곳으로 이동해 걸었기에 웃길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여러 연출되었다. 점점 육체적으로 지쳐갔다. 노래를 들으면 이 순간의 힘듦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노래도 틀었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비가 서서히 그쳐갔다. 임진각 역에 도착하기까지 발은 물로 퉁퉁 불어 있었고 땀과 비로 온몸이 젖어 있었지만, 이 또한 국토대장정의 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힘들었던 여정 탓인지 부대찌개를 먹고 난 후 라면 사리를 두 번 넣어 먹었는데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정말 정말 정말 맛있었다. 오후엔 놀랍게도 언제 비가 내렸었는지 모르게 날이 맑았다. DMZ 생생누리에서 자유시간을 가지며 ‘바이킹’도 타고 힘들었던 오전의 시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파주에서 김포로 이동한 오늘의 여정의 끝엔 애기봉 전망대가 있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며 많은 전망대를 오갔지만,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북한의 모습과 느꼈던 감정은 사뭇 달랐다. 풀과 나무로 빽빽한 산 위에 철책선으로 경계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을 이루고 그 위에 북방한계선(NLL)으로 구분하고 있었기에 긴장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다. 전망대에선 남측 대성동 마을과 북측 기정동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선전마을로써 활용 중이지만 디지털 망원경으로 북한 측 주민들이 소를 몰고 밭을 경작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만, 평화로워 보이는 이런 모습 속에서도 한강 위에 떠 있는 어떠한 물체(배 등)도 없었다는 점, 휴전 이후에 한 척의 배도 이 지역을 지나지 못했다는 사실 속에 어딘지 모를 먹먹함을 느꼈다.

이를 끝으로 오늘의 숙소인 해병 2사단 동원 교육대대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는 평소와는 달리 숙소에서 벗어나 해병대 복지시설인 청룡회관에서 삼겹살 파티로 진행되었다. 지난 5박 6일간 국토대장정을 함께했던 조원들과 음주를 겸해 고기를 먹으며 회포도 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음주가 가능했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아쉬움은 저녁 식사 이후 장기자랑 및 레크레이션으로 풀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조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토카토카’ 춤도 추고 점수를 얻기 위해 함성도 지르며 오늘의 스트레스를 맘껏 풀었다. 그리고 재향군인회에서 준비한 ‘우리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에 관한 영상도 보며 그동안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레크레이션의 여운을 안고 대장정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기 아쉬워 잠을 뒤척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7 일차(7.01)

대장정의 7 일차 아침이 밝았다. 대장정 기간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간단했다. 서해수호관을 관람하고 천안함 용사들에 참배를 한 후 해단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서해수호관 견학은 그동안의 어떤 관람 또는 견학보다도 뜻깊었다. 제1, 2 연평해전부터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그리고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사건을 통해 어떤 이들이 순직하셨는지, 그 결과로부터 북한은 어떠한 전략으로 맞서왔는지 등의 스토리들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제1, 2 연평해전, 대청해전의 승리를 이끈 많은 호국 영웅들, 이에 따른 북한의 비대칭 전략으로 기습 어뢰 공격으로 순직하신 천안함 46용사까지 한 명 한 명의 성함과 업적을 들으며 평화를 위해 흘렸던 그들의 눈물과 피를 기억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현역들에 대한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나 역시 예비역으로서 전쟁이 일어나면 이 한 몸 바치리라 다짐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하신 박동혁 병장 몸에서 나온 4kg의 무수한 총알 파편은 해전 당시의 급박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 더 가슴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견학 중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막내아들을 잃은 윤창정 어머니께서 국가를 위해 헌납하신 1억원, 초대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부인 홍은혜 여사가 작곡한 해군 최초의 군가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었는데, 감정에 북받쳐 흘러내렸던 눈물을 누군가 보지 않도록 연신 닦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서해수호관을 나서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는 추모를 하고 인양된 천안함의 실체를 보았다. 거대한 함선이 두 동강 나 있었고 두 동강 난 자리는 여러 전선이 실타래처럼 꼬여 어지러이 있었으며 철로 만들어진 합판들이 구부러져 있었다. 당시 어뢰로 인한 가스버블과 충격파로 인한 물기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을 것이라 생각 들었다. 안타까운 비극의 실상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더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안함 견학을 끝으로 대장정 일정을 마무리하고 점심식사 후 해단식 장소로 이동했다. 해단식 장소에 도착해 좌석에 앉아 수료증과 기념 군번줄을 받아보니 6박 7일간의 대장정 기간이 드디어 끝나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재향군인회 회장님의 말씀을 끝으로 본식이 마무리되었고 해단식 건물인 충무관에서 나와 수료증을 들고 14기 단체 사진을 찍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파 함께 했던 2조 조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빡빡한 일정 탓에 사진 찍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지만 ‘꼭 다시 보자’라는 약속을 하며 각자의 버스에 올라타 대장정을 끝맺었다.

 ▲ 2024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6박 7일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조원들, 14기 대원분들, 스태프를 비롯해 버스 기사님, 단장님, 부단장님! 너무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함께 활동한 2조 조장인 치헌이를 비롯해 노은이, 민성이, 정현이, 준석이, 시은이, 예은이, 예빈이, 그리고 영빈이에게 대장정 기간 고마웠고 덕분에 행복했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대장정에 지원한 목적을 이뤘냐고 물어본다면 충분히 좋은 기억,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당시엔 현재에 집중한 나머지 주변 것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할 것이다. 플러스로 부끄럽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알지 못했던 6.25 전쟁 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북한과 휴전 중인 현재 상황에 대해 사실적으로 직시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은 꼭 한 번 재향군인회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가보라. 그곳에서 기억하고 배우고 느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konas)

김태희 : 연세대학교 약학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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