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보도] 眞相을 은폐한 濟州4·3事件眞相調査報告書(끝)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 원인들③
보고서의 일방적 통과
10월 15일(수)은 진상보고서가 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날이었다. 이에 필자는 ‘진상조사보고서는 반쪽보고서’라는 요지의 글을 10월 15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하였는데, 많은 국민들이 이 글을 보고 ‘진상조사보고서가 잘못 집필되었구나’ 하고 느꼈을 것으로 보았다.
10월 15일의 회의는 오후 5시부터 개최되었는데, 보고서에 대해서는 예상과 같이 유족회측이 다수의 힘으로 통과를 주장하자 국무총리는 정상적인 투표절차마저 생략한채 ‘통과’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에 군·경측 민간위원 3명은 거세게 항의를 하면서 무효를 주장하고 위원직 사퇴를 선언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필자도 다음날인 16일에 전문위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사표는 다음날인 17일자로 수리되었다. 아마 앓던 이가 빠진 심정으로 본인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을 것이다. 본인마저 위원회를 떠남으로서 위원회에는 군·경측 민간인은 전원 철수한 셈이었다.
국가에서 작성한 진상조사보고서는 4·3사건관 관련된 모든 진상이 명확하게 규명하여야 하며, 원만하게 집필되고 쌍방 합의하에 통과되므로서 권위를 가져야 하건만 사건의 한쪽편인 당시의 정부를 대변하는 군·경측의 중앙위원과 전문위원이 채택된 보고서를 반대하면서 전원 철수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진상조사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측의 중요한 대책회의마저 은폐하였고,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주요전투마저 생략해 버렸으며, 군·경측의 주장을 묵살하고 유족측의 주장만 수록하므로서 반쪽보고서 또는 은폐보고서라는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발발원인과 사건의 성격마저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면서 ‘의거’와 같은 뜻을 함축한 ‘봉기’로 결정하였다면 과연 진상보고서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진상을 조사하여 발행한 보고서가 맞는 것일까?
왜 팀장과 유족회측 집필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상황을 축소·은폐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유족측 위원마저 4·3은 최초의 공산통일 시도라고 시인한 공산반란사건을 봉기로 표현하여 민중운동으로 미화하고, 심지어 4월 3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주장까지 했을까? 유족회측이 대정부건의문(초안)에서 ‘4월 3일을 공휴일로 하자’는 주장을 듣고 필자는 ‘대한민국 정부가 공산정부인가?’라고 자신에게 반문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필자가 내리기 보다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정부차원의 보고서이므로 사건과 관련된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진상이 규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도적으로 핵심내용인 공산주의자들의 주요대책회의나 기도가 빠지고 군·경의 잘못만 부각시키므로서 진상규명을 외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편파적으로 집필되었으므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차원에서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를 모두 폐기처리하고 집필진을 재구성하여 재작성해야 한다.(끝)
나종삼(前 4.·3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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