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높아가는 북핵(北核) 변수
부시 미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김정일에 대해 '백성을 굶기는 독재자' '폭군' '위험한 인물' 등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가며 비난했다. 김정일을 '제2의 사담 후세인'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그는 또 이라크 상황과는 별도로 북핵문제에 대한 동시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은 이라크에 대규모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와는 상관없이 북한 문제를 처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라이스 미 국무의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라는 표현을 트집잡아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부시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에 대해 6자회담에 나오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이라는 벼랑끝전술로 관련 5개국을 궁지로 내몰고 있지만, 달리 해석하면 북한으로부터 '6자회담의 틀'이 제거된다는 것은 식물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영양공급장치가 제거되는 것에 비유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문제이다. '6자회담의 장(場)'이 마련됐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이 다자(多者)간 대화의 장(場)이 닫힐 경우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싼 협상의 물꼬는 막히고 만다.
분명한 것은 이제 북한이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6자회담에 다시 나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사태의 긴박성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맥(脈)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북핵문제가 이처럼 돌파구가 묘연한 상황 앞에 당면해 있다.
최근 미국은 강경 대치하고있는 북한에 으름장을 놓아가며 마지막 응답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소생기미가 없는 6자회담에 대해 한번 더 기대를 걸고서 집중치료에 나선 격이다. 미국은 그래도 안 풀릴 경우 북핵문제를 UN 안보리로 떠넘길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미국이 이미 그런 수순(手順)을 밟고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지난 3월부터 핵실험 준비에 착수했고, 5월 말께 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돌고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은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이 된다.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은 이처럼 더할 나위 없이 불안감을 증폭시켜주고 있다.
그간 북핵문제와 관련된 국내 여론은 어떠했나. 한미동맹과 한미공조를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민족공조와 자주적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주장에 밀려 '중국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왔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기정사실(fait accompli)일 뿐이다" "북한 핵은 미사일에 탑재하기에는 핵탄두가 너무 커서 실체적 위협이 될 수 없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해도 경협은 계속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진들 우리한테 사용하겠는가" 등이 미국과 입장을 달리한 정부의 그간의 태도였다.
북한이 핵(核)으로 무장할 경우 우리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다 해도 북한 핵무기와 '힘의 균형'을 이룰 수는 없다. 북한의 요구에 끌려다녀야 한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생존(生存)이 내걸린 문제가 바로 이 '북한 핵'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우리가 북핵문제에 관여할 여지는 없어지고 미국이 주도할 UN의 대북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대북(對北) 응징이 범세계적 여론이고, 국제정치에서의 '힘의 우위'가 미국에게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결국 자국(自國)의 이해와 맞물려 미국의 논리에 동조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현실로 다가설 경우 사태는 이처럼 심각해진다. 핵실험 이전과 이후의 북핵문제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잠시의 느긋한 여유'라도 누리기에는 너무나 긴박한 사태를 맞게 될 것이고, 국민은 그간의 북핵 불감증(不感症)에서 깨어나 불안감을 갖게 될 것이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그간 우리 정부는 '북핵의 해결'-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중재자로서의 기선(機先)잡기' '평화적 해결'이라는 레토릭(修辭)에 매달려 핵심에 근접하지 못하고 전술적 차원의 해법에 집착해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핵문제의 해법'과 관련하여 미국에 투정을 부려왔을 뿐, 북한을 탓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좌고우면(左雇右眄)할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그간 불투명한 태도로 국민의 불안감과 불신을 더해주었던 정부의 명철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 일간지의 주미특파원이 전하는 미국 현지의 반응이 마음에 앙금으로 남는다. 미국 현지의 한반도 전문가들은이 최근의 한미(韓美)관계를 "한미 양국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차마 이혼은 못하고 각 방 쓰는 부부처럼 말이 안 통하는 사이"에 비유한다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우리가 국익을 헤아려 판단해야하는 중차대한 명제(命題)이다. 무엇보다도 '냉철한 상황 인식'과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이 아니면 안된다.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에서 비극과 참화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없이 신중하고도 결연한 행동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그 해법(解法)을 다름 아닌 허울좋은 민족공조가 아닌, '한미공조의 바탕' 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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