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육탄10용사" 그 거룩한 희생정신 오늘의 귀감으로
파주 통일공원 현지서, 56주기 추도식 거행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5-05-04 오후 7:50:54
당시 육탄 10용사가 소속된 부대(2중대)를 지휘했던 채명신 초대 주월 사령관의 생생한 증언이 추도식에 참석한 1,500여명의 내외귀빈과 장병, 학생들의 가슴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4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공원 육탄10용사 탑 아래서 56년 전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해 한국전 최고의 살신성인의 표상으로 추앙 받는 '육탄10용사' 56주기 추도식이 육군 전진부대 군악대의 장중한 주악 속에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와 국방부장관 등 군 관계자, 정당대표, 유관기관장의 조화가 조국을 위해 숨져간 젊은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듯 따갑게 내리쬐는 5월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을 드리우고 헌화분향을 하면서 공원은 국화향기와 향내음으로 가득했다.
이날 육탄 10용사 56주기 추도식은 (사)육탄 10용사 추모사업회(회장 윤종언)주최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고 대한민국재향군인회, 6·25참전 유공자회, 육군 보병 제1사단, 국방일보사, 6·25참전 80동우연합회가 후원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윤종언 추모사업회장은 추도사에서 "포탄을 안고 적 기관총 진지로 뛰어든 임들의 죽음이야말로 한국전사와 세계전사에 길이 남는 신화였다"며 "임들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우리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다"고 10용사를 기린 후 "김정일은 들으라, 그대는 즉각 6자회담에 응하고 국제사회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감안하고 각성하라"며 6자회담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하기도 했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해 추념사에 나선 황유환 보훈심사위원장은 "영령들은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용전 분투의 삶은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며 "북한군의 도발을 온몸으로 막아 조국을 지켜낸 육탄 10용사는 대한민국의 수호신이고 영원히 아로새겨질 금자탑으로, 호국정신의 귀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인의 안위보다 국가를 위한 원동력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해야 할 가치임에 임들의 애국·충정을 되살려 화합과 국론통합의 계기를 이룩해야한다" 며 10용사의 명복을 기렸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추모사에서 "임들의 위대한 군인정신과 애국충정을 호국의 표상으로 마음속 깊이 새기고 청사와 후세에 길이 전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한 뒤 "추모행사를 통해 그분들이 송악산 자락에 뿌린 호국·애국·구국의 투혼을 계승하여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굳게 지켜나갈 것을 굳게 다짐"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육탄 10용사가 소속되었던 전진부대 정승조 장군(육군소장)은 진혼사에서 "전우와 부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육탄 10용사의 충정은 전진부대 장병의 정신적 지주"라며 "싸움에서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사랑의 참뜻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진부대가 될 것을 임들의 영전 앞에서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행사에서는 전군 부사관 중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14명의 부사관들에게 육탄10용사상과 메달, 국가보훈처장의 격려금이 주어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황유환 보훈심사위원장,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채명신 6·25참전 유공자회장, 이재창 파주시 국회의원 정승조 전진부대장, 파주시장 및 각급 기관장, 참전용사, 재향군인회원, 전진부대장병과 문산여고생 등 1,500여명이 참석해 10용사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1년전에 발생한 '육탄 10용사' 신화는 49년 5월 3일 북한 인민군 제1사단 3연대 병력 1,000여명이 개성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남침, 주요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당시 개성경비는 1사단 11연대가 담당했다. 아군은 즉각 반격에 나섰으나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기관총 토치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육탄공격을 감행할 특공부대를 모집했다. 100여명이 너나없이 나섰다.
서부덕 이등상사 등 9명이 뽑혔다. 그리고 5월 4일 정오 81미리 박격포탄과 폭약을 안고 적 진지로 몸을 던졌다.
토치카는 박살나고 대기중이던 공격부대가 공격을 개시, 주요고지를 탈환했다. 한편 이에 앞서 박창근 하사는 적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 돌진하다 전사했다. 바로 이들이 한국 전사에 빛나는 '육탄 10용사'다.
육군은 이들을 기려 부사관 최고의 상인 '육탄 10용사 상'을 제정, 2001년부터 운영해 오고있다.(Konas)
"그 때 우리는 38선상 방어진지에서 진지보강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적의 기습공격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적은 완전히 계획된 도발을 한 것이며 아군은 반격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해서 후방에서 김영직 대위가 지휘하던 하사관(오늘의 부사관)교육대와 우리중대가 역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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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육탄 10용사가 소속된 부대(2중대)를 지휘했던 채명신 초대 주월 사령관의 생생한 증언이 추도식에 참석한 1,500여명의 내외귀빈과 장병, 학생들의 가슴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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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공원 육탄10용사 탑 아래서 56년 전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해 한국전 최고의 살신성인의 표상으로 추앙 받는 '육탄10용사' 56주기 추도식이 육군 전진부대 군악대의 장중한 주악 속에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와 국방부장관 등 군 관계자, 정당대표, 유관기관장의 조화가 조국을 위해 숨져간 젊은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듯 따갑게 내리쬐는 5월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을 드리우고 헌화분향을 하면서 공원은 국화향기와 향내음으로 가득했다.
이날 육탄 10용사 56주기 추도식은 (사)육탄 10용사 추모사업회(회장 윤종언)주최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고 대한민국재향군인회, 6·25참전 유공자회, 육군 보병 제1사단, 국방일보사, 6·25참전 80동우연합회가 후원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윤종언 추모사업회장은 추도사에서 "포탄을 안고 적 기관총 진지로 뛰어든 임들의 죽음이야말로 한국전사와 세계전사에 길이 남는 신화였다"며 "임들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우리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다"고 10용사를 기린 후 "김정일은 들으라, 그대는 즉각 6자회담에 응하고 국제사회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감안하고 각성하라"며 6자회담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하기도 했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해 추념사에 나선 황유환 보훈심사위원장은 "영령들은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용전 분투의 삶은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며 "북한군의 도발을 온몸으로 막아 조국을 지켜낸 육탄 10용사는 대한민국의 수호신이고 영원히 아로새겨질 금자탑으로, 호국정신의 귀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인의 안위보다 국가를 위한 원동력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해야 할 가치임에 임들의 애국·충정을 되살려 화합과 국론통합의 계기를 이룩해야한다" 며 10용사의 명복을 기렸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추모사에서 "임들의 위대한 군인정신과 애국충정을 호국의 표상으로 마음속 깊이 새기고 청사와 후세에 길이 전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한 뒤 "추모행사를 통해 그분들이 송악산 자락에 뿌린 호국·애국·구국의 투혼을 계승하여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굳게 지켜나갈 것을 굳게 다짐"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육탄 10용사가 소속되었던 전진부대 정승조 장군(육군소장)은 진혼사에서 "전우와 부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육탄 10용사의 충정은 전진부대 장병의 정신적 지주"라며 "싸움에서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사랑의 참뜻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진부대가 될 것을 임들의 영전 앞에서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이 날 행사에서는 전군 부사관 중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14명의 부사관들에게 육탄10용사상과 메달, 국가보훈처장의 격려금이 주어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황유환 보훈심사위원장,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채명신 6·25참전 유공자회장, 이재창 파주시 국회의원 정승조 전진부대장, 파주시장 및 각급 기관장, 참전용사, 재향군인회원, 전진부대장병과 문산여고생 등 1,500여명이 참석해 10용사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1년전에 발생한 '육탄 10용사' 신화는 49년 5월 3일 북한 인민군 제1사단 3연대 병력 1,000여명이 개성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남침, 주요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당시 개성경비는 1사단 11연대가 담당했다. 아군은 즉각 반격에 나섰으나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기관총 토치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육탄공격을 감행할 특공부대를 모집했다. 100여명이 너나없이 나섰다.
서부덕 이등상사 등 9명이 뽑혔다. 그리고 5월 4일 정오 81미리 박격포탄과 폭약을 안고 적 진지로 몸을 던졌다.
토치카는 박살나고 대기중이던 공격부대가 공격을 개시, 주요고지를 탈환했다. 한편 이에 앞서 박창근 하사는 적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 돌진하다 전사했다. 바로 이들이 한국 전사에 빛나는 '육탄 10용사'다.
육군은 이들을 기려 부사관 최고의 상인 '육탄 10용사 상'을 제정, 2001년부터 운영해 오고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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