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Right의 神託, 팍스코리아나1
5월7일 토요일 오후 2시 명지빌딩 20층에서 자유지식인선언 주최의 네티즌토론회가 개최됩니다. 아래는 제가 이날 발표할 발제문 중 첫부분인 [우파의 반성]부분입니다. 연이어 [우파의 사명] [우파의 전략]을 발송할 예정입니다. 5월7일 많은 애국청년 여러분의 참여가 있기를 바랍니다. (김성욱)
1. 右派의 반성과 사명 그리고 비전
최근 보수우파 스스로의 자성(自省)이 잇따르고 있다. 입법, 집행, 사법부에 이어 언론*문화*노동*교육*시민단체권력 등 경성*연성 모든 권력(權力)이 소위‘진보좌파’에 장악됐다는 절망감 때문이다.
중원(中原)은 넘어갔다! 보수우파는‘저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젠 강제력도 없고, 영향력도 적고, 힘도 약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빠져나간다. ‘세상 좀 안다’하는 이들은 보수딱지, 우파명찰을 버리고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중도(中道)연 하더니 어느새 평화(平和), 자주(自主), 화해(和解), 진보(進步), 개혁(改革)의 양산 밑에 기어들어가 버렸다.
‘보수우파’의 군단(軍團)은 ‘꼴통수구’의 대대(大隊)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잘난’ 사람들은 보수와 우파 앞에 중도, 열린, 합리적 등 온갖 수식어를 붙인 채 저‘못난’ oldy와의 차별성을 내세우느라 안간힘이다. 건국과 호국의 전장(戰場)을 오가던 백발의 노전사들은 부러진 창을 붙들고 피눈물을 삼킬 뿐이다.
2.보수우파를 위한 변명,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렇다. 저들 말처럼 한국의 소위 지도층은 이기적이었다.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은 있었으나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이 없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없었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없었고,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없었다.
6*25때 국군이‘빽’하며 죽어갈 때 현역 미군장성의 아들은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다쳤었다.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은 말하지 않았던가? 저것이 바로 미국인의 정신이라고!
한국의 지도층은 서양의 귀족처럼 희생(犧牲)하지 못했고, 일본의 지도층처럼 검약(儉約)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산업화가 가져다 준 엄청난 결실을 누렸을 뿐 결실을 지속시키려는 책임감이 모자랐고, 결실을 나누려는 도덕성이 빈약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커녕 국민의 기본의무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기득권층’의 비난이 쏟아지는 지금의 보수우파엔 ‘기득권층’이 없다! 오히려 자식의 군대를 빼돌리고, 탈세를 일삼으며, 땅 투기로 배를 채우던 이들은 중도, 열린, 합리적의 수식어로 가면을 쓴 지 오래다. 아예 평화, 진보, 화해, 개혁의 선박으로 갈아탄 이들도 많다.
3.‘졸부(猝富)’와 ‘권세가(權勢家)’...그들은 보수우파가 아니었다
그대들은 혹 근대화의 기적을 이룬 저들 노옹(老翁)을 이기적 지도층이라 부르려는가? 저들 노옹은 다른 어떤 후진국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도덕적 정직성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들이다. 증오심과 적대감이 아닌 실체적 통계들은 그것을 증명한다. 저들에게 절을 올릴진 못할지언정 악령에 씌어 돌을 던지진 말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안 하고, 국민의 의무도 안 하는 이들은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도 우파(右派)도 아니었다. 그들은 보수우파가 이뤄낸 ‘기적’ 밑에 기생(寄生)하며 치부(致富)하다, 이제 진보좌파의 광기 아래 천박한 삶을 연장하는 ‘졸부(猝富)’와 ‘권세가(權勢家)’들에 불과하다.
적어도 모든 권력을 빼앗긴 2005년 지금의 보수우파 중엔 국민의 의무에 게으르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하지 않는 이들은 찾을 수 없다.
저들 보수우파는 20세기 중상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21세기 시장주의시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느낄지언정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며, 과거의 를 긍정하지만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저들 보수우파란 관념주의(觀念主義)가 아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따르고, 형평(衡平)이 아닌 효율(效率)을 중시하며, 자유통일과 북한해방을 넘어 국가선진화를 갈망하는 이들일 뿐이다.
4.‘삼각룻트’ 열린사회에선 사라질 인습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 노블리스 No오블리제? 그것은 닫힌 사회, 중앙집권의 유산(遺産)서 나온 인습(因襲)일 뿐이다. ‘열린’ 유럽에선 마르세유의의 군주가 의무를 안 할 때 쥐리히의 군주를 찾으면 된다. ‘분권’이 된 일본에선 삿포르의 쇼군이 마음에 안 들면 히로시마의 쇼군을 찾아갔다. 초원의 칸이 무능하고 탐욕스러울 때 유목민들을 양떼를 몰고 다른 칸을 찾아 나선다.
노블리스 No오블리제! 그것은 대한민국 보수우파의 죄악이 아닌 닫힌 사회, 중앙집권의 조선사가 만들어 낸 인습(因襲)이다.
6*25 때 국군이 ‘빽’하고 죽을 때 북한의 인민군은 당원이 아니라 죽는다며 ‘땅’하고 죽었다. 저들 북쪽의 왕조체제는 300만의 주민들이 굶어죽을 때 평양의 호사스런 탐식(貪食)에 젖어 있었다. 진보와 개혁과 민주를 외치던 남쪽의 새로운 노블리스를 보라! 또 하나의 특권층 또 다른 기득권층의 모습이 아닌가!
보수우파, 저들 oldy에 가해진 공포스런 수식어를 떼라! 과거 한국의 기득권층이 저지른 실책에서 저들을 해방시켜라!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것은 북한해방, 자유통일이 이뤄지고 대륙(大陸)과 초원(草原)과 해양(海洋)의 ‘삼각 룻트(Triangle Route)’가 연결될 때, 그 열린 BeSeTo공간에서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들이다. (계속)
김성욱(미래한국 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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