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과 80년대 이념편력의 성찰-5.18 25주년을 맞으며
이제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야
필자는 25년전 고교시절 5월 광주의 참극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에는 이 사건이 인생의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주리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1982년 대학에 입학해서야 광주의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운명을 깨달았고, 주저없이 이념 서클에 가입하여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 여름방학 무렵, 선배들로부터 처음 마르크스주의를 소개받고 약간의 주저가 있었지만, 그 논리 정연함과 명쾌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결국 여러 번의 투옥을 거치며 1996년까지 약 15년에 걸친 청년기를 혁명을 꿈꾸며 살았다.
5.18이라는 주제는 80년대의 10년동안 수많은 대학생이 운동권에 투신하는 원천이 됐으며, 박정희 정권 이래 한국 사회를 이끌던 주류들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넘치게 했다. 차라리 분노보다 정작 심각한 것은 불신이었다. 광주의 사망자만 하더라도 실제의 200여명보다 무려 10배가 많은 2000명설이 꽤 오랜 기간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 확신됐다.
군사정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어느 것 하나 믿고 싶지 않았으며, 그 반대에 진실이 있을 거라는 역행의 단순 발상이 쉽게 지배해 버렸다. 이 불신의 대상은 성역처럼 여겨지던 반공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수용이라는 과감한 반역(?)이 이뤄졌고, 80년대 중반에는 북한 체제를 희망으로 삼는 주사파까지 등장하여 운동권의 주류가 되었다.
80년대 대학가 좌파 이념의 광범한 확산은 5.18로부터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유신체제의 심장부였던 박정희의 죽음으로 당연히 얻게 될 것으로 믿었던 민주화가 좌절된 허탈과 상실은 무척 컸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집단적 죽음이 발생했다는 현실 앞에서, 이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이념적 무기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공감을 얻게 됐다. 그 결과, 종속이론에서 서유럽의 신좌파까지 다양한 모색과 편력 끝에 마르크스주의를 택하게 되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반미감정도 그 근원은 5.18에서 찾아진다. 80년대 대학가에서는 광주학살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는 비판이 일어났고, 그 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는 북한의 혁명논리까지 수용됐다. 당시 주사파의 반미 주장은 미군이 한국의 군 작전권을 갖고 있고, 따라서 군이 동원된 광주학살은 결국 미국이 주범이라는 무척 쉽고 단순한 논리로 확산됐다. 이때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공수부대는 미군의 작전권 밖에 있었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외침은 7년만에 6월항쟁으로 그 열매를 맺었으며, 5.18은 4.19의 민주화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역사적 평가를 받으면서 그 명예가 회복됐고, 그 가해자들도 처벌됐다. 이제 거의 한 세대가 흘러 어김없이 5월은 우리 앞에 또 다가왔다.
80년대 좌파 이념의 선택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인해 착오로 증명되었고, 북한 체제의 사실상 파산이 목격되면서 친북 주사파도 설 땅이 없어져 버렸다. 무엇보다도 가장 염원하던 민주화의 목표가 실현됐다. 이제 5.18의 후예들인 386세대들은 청년기의 이념 편력을 성찰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20대의 열정을 이어갈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가야 할 때가 됐다.
적지 않은 386세대들의 정신세계에는 개인의 선택과 민간의 자율에 대한 불신과 정부의 개입에 대한 선호가 있다. 나아가 지난 산업화시대를 혐오와 부정의 눈으로만 보려고 하며, 선악의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는 데 익숙하다. 반미주의와 민족 공조로 대표되는 강한 민족주의 경향도 발견된다. 인권을 무척 중시하면서도 북한 정권의 가혹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세계화·자유화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이제 낡은 이념의 잔재를 벗어 던지는 ‘사상혁명’을 매력적인 화두로 삼고 싶다.(www.new-right.com)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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