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4·3 진상조사 보고서 다시 만들 것"
왜곡된 보고서에 반기들고 사표던진 나종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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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나 위원은 이번 진상조사보고서의 문제점과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에 대한 축소·은폐, 수집된 자료의 편파적 해석, 불공정한 조직구성, 잘못된 집필방향 등에 대한 진상을 속속들이 고발했고, 이에 독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옮겨놓는 등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9회의 연재를 끝내고 <코나스>는 25일 나종삼 전 위원을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 그 동안의 소회(所懷)와 함께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일어난 뒷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에서 나 위원은 “4.3사건을 민중봉기로 명하고, 군·경에 의한 피해만을 일방적으로 서술한 책인 「제주 4.3을 말한다」는 책을 집필한 사람들이 바로 보고서 작성 팀장과 조사관으로 활동했다”면서 “명색이 정부가 추진하는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 작업인데, 조사관들끼리 단 한 번의 토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부터 정해진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려 한 것”이었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10포인트 크기의 글자로 장장 A4용지 16장의 글을 쏟아냈음에도 나 의원은 여전히 부당한 보고서 작업과정을 용인하기 어려운 듯,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상기된 얼굴로 열변을 쏟아냈다.
나 위원은 “정부는 왜곡된 보고서를 수 천부 찍어 전국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해 국민 역사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개인적 차원의 보고서를 만들 것”이라며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거대한 파워를 동원한 역사왜곡 작업에 맞서 애국심과 정의감 하나로 당당히 투쟁에 나선 나종삼 위원의 열정이 귀하다.
다음은 나종삼 위원과의 일문일답.
-‘진실을 은폐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의도는 무엇인가요?
정부차원에서 실시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남로당의 주요활동은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하고 군과 경찰에 의한 주민피해상황을 부각시켜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반쪽 보고서였다. 나는 사건에 대한 모든 내용이 망라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내 의견과 이의제기는 번번이 묵살 당하기 일쑤였다. 보고서 집필위원 중 한 사람으로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는 훗날 누군가 이 작업을 다시 하게 될 때를 대비, 현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참고자료를 남기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하게 된 것이다.
- 그동안 주요일간지나 <코나스>를 통해 ‘진상조사 보고서는 은폐·축소 보고서’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는 등 수차례 보고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가하셨는데, 위원회 측으로부터 비난이나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나에게 비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통해 그들도 모든 내용을 알고 있다. 잘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 보고서 작성팀의 인적구성은 어떻게 됐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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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 위원회의 인적구성은 매우 불공평하게 구성됐다.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지원단은 단장을 포함 90% 이상이 제주도 출신 공무원들로 구성됐고, 실질적인 보고서작성을 담당하는 전문위원은 5명이었는데, 유족회 측 3명과 군·경측 1명, 중립 1명으로 구성됐다. 그나마 중립 한 명도 노사모 회원이었다. 1:4의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토의가 한 번도 없었다는데….
그렇다. 여러 사람이 공동 집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반드시 토의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단 한 번의 토의도 없었다. 내가 토의하자고 주장했지만, 양조훈 팀장은 “토의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냥 계약서상에 주어진 임무대로 하자”며 거부했다. 집필방향에 대한 상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미리 집필방향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놓은 그들은 토의를 통해 내가 제재를 가하면 자기네들 뜻대로 하기 힘들어질 것을 우려했고 어차피 그들 뜻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낭비를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제대로 된 사람이 병신이 된다.
- 전문위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조사관 중 양조훈 팀장과 김종민씨는 「4·3을 말한다」라는 책을 쓴 장본인들이다. 그 책은 4·3사건을 민중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군이나 경찰의 주장은 하나도 없으며 전부 군·경이 사람들을 죽인 것만 써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민중운동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경찰이나 군이 제주사람을 못살게 억압해서 봉기가 일어났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총 5권까지 나왔는데, 이 두 사람은 5권 전권에 대한 집필에 관여했다. 이번 진상조사위에서도 이 두 사람은 중요한 부분을 모두 집필했고 정부보고서도 책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작성했다. 심지어 군 및 경찰의 작전부분 집필을 담당한 나의 역할도 그들에게 가로채이기 까지 했다. 그들의 주장은 오로지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 서로 목적이 다르니만큼 많은 의견충돌이 일어났을 텐데요….
나는 정부보고서라면 4·3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실(史實)이 망라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팀장을 비롯한 제주도 출신 세 사람은 희생자를 명예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보고서가 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그들과 여러 차례 의견충돌이 있었다.
- 고충이 심하셨을 듯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나에게 집필에서 빠져달라고까지 말했다. 자기네들이 다 하겠으니 편히 쉬라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소리냐”며 반발했었다. 내가 써야할 부분도 자기네들이 쓰려했는데 나의 의견이 들어갈리 만무했다. 한번은 그들 중 한사람이 나에게 “우리도 제주사람들로부터 무지무지한 압력을 받고 있는데, 좀 봐달라”고 사적으로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
-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의 비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조사위는 총 12권의 자료집을 만들었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제주도 인민 유격대 투쟁 보고서’라는 자료는 4·3사건이 일어난 원인이 다 나온다. 즉 경찰들이 주민들을 억압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경찰에 체포된 220명의 남로당원이 조직이 폭로될까 두려워 역공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자료집 작성에서 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막말과 고성이 오가며 싸움이 일어났었다. 나는 “이것을 빼자는 것은 은폐하자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결국은 자료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감추려고 했고, 나는 밝히려고 노력해 양측의 신경전이 엄청나게 있었다. 그래서 ‘4.3보고서는 반쪽·은폐 보고서’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 제주 4·3사건에 대한 의미를 평가하신다면?
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아픈 기억이었겠지만, 국가 전체로 봤을 땐 전화위복이 된 부분도 있다. 이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당시 여수에 있는 일개 대대를 보내려고 하다가 반발이 일어나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내에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침투한 것이 발견됐다. 이로 인해 5천여 명이 숙군(肅軍)돼 군내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골라냈다. 이런 과정 없이 6·25전쟁 때 군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실제로 숙군한 덕택에 전쟁 중 한 사람도 부대를 끌고 넘어간 일이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 작성 당시 이런 주장을 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내용을 보고 양조훈 팀장이 발끈해 한바탕 싸움이 나기도 했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유족과 도민에게 사과를 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결국, 편향된 보고서 작성과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고 죽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명예회복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진상규명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을 포함시킬 수는 없다. 사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절박한 전쟁 상황에서는 일일이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은 공산주의에 가담했거나 동조했거나 그런 분위기에 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무조건 군이나 경찰에 의해 선량한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만 서술한 것이 이 보고서의 문제점이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는 (죄를 인정받고)재판을 받고 죽은 사람도 있는데, 심지어 이들까지도 억울하다고 하고 있다. 공산당 활동에 가담하다 죽은 사람들까지도 명예회복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명명백백히 가려서 보상과 처벌을 구별해야한다.
- 훗날 4·3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다시 하게 된다면,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4·3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배경이 포함돼야 한다. 이번 보고서에는 일체 언급이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좌-우익의 대립이 굉장히 심했다. 그 여파로 4·3이 일어난 것이다. 4·3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고 해방공간의 정치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 하나, 남로당의 성격이 규명돼야 한다. 남로당의 전신과 주도한 당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조선공산당이다. 이것을 집어 넣어야만 이 사건의 성격이 제대로 나온다. 이런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차원에서 작성한 진상보고서에 원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회복만을 강조를 하는 것은 정부보고서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것은 역사왜곡이고, 진실 은폐이다.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이 잘못된 정부보고서를 바로 잡기위해 또 다른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한다. 정부의 4·3사건 보고서는 현재 교육 자료로 배포돼 자라나는 학생들이 배우고 있고, 정부 예산으로 약 3000부가 인쇄돼 전국 대학 도서관과 일반 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포되고 있어 국민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인식시키고 있다. 이를 바로 잡으려면 똑같은 물량으로 보고서를 배포해야 하는데, 이것을 책으로 발간해봤자 누가 일부러 사서 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료로 배포해야한다고 보는데, 문제는 자금이다. 보고서 작성 작업은 몸으로 떼우겠는데, 적어도 3000부 이상을 찍어내려면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로 하다. 이것이 숙제이다. 역사를 바로 잡는데 도움을 줄 독지가가 절실히 필요하다.(konas)
** 나종삼씨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나씨의 휴대폰 <016-783-3392>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윤경원(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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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가던 역사에 왜곡 미래 후손들을 교육과정을 국가와 민족을 진실된 말을하여도 후세들은 왜곡으로 인정하고 진실된 교육이라도.미틈을 왜곡한다제주 4,3.사건은.편견부터 차자야한다.사상전환기.호국 군경이 얼마나 희생당하였나.그곳분들은 너머나도 잘알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
2005-05-30 오전 10:53:28조폭들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라 수고 많으셨군요. 그러나 이 정권이 끝나면 진실된 역사는 다시 살아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옹졸한 정권의 한심한 작태를 국민과 역사는 냉정하게 심판할 것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5-29 오후 1:4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