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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미동맹을 생각한다!

Written by. 이상훈   입력 : 2005-06-04 오후 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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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만년 우리민족사 가운데 전대미문의 대참극이였던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쉰 다섯해를 맞았습니다. 홍안의 소년으로, 피끓는 청년으로 죽고 죽임의 그 처절했던 전쟁을 치루었던 참전용사들은 어느덧 고희를 지나 산수(傘壽)를 전후한 노령에 접어들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대로라면 남북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고 통일이 되어도 벌써 되었어야 할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밀고 밀리던 그때의 최일선 격전장이 휴전선으로, 총성과 포성이 진동하던 열전이 소리없는 냉전으로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변화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3년 1개월간의 전쟁과 그 상흔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참전노병들이 불안해 하고 꿈속에서도 걱정하는 것은 45년 8.15해방직후 "Yankee Go Home!"을 외치는 좌익 시위가 그칠날이 없었던 것과같이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저변에서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논리와 민족공조를 평화통일의 관건으로 주장하며 또다시 주한미군 철수를 소리 높혀 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6.25전쟁발발 3일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우리 군이 급편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및 수원지구 전투사령부와 한강 이남의 방어선이 맥없이 무너지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자유대한이 구출된 것은 50년 6월 29일 맥아더 미극동군사령관의 지상군 투입건의를 받아들인 미국정부의 특단의 조치와 6.25전쟁 기간중 13만 7천여명의 전사상자를 감내하며 180여만명의 미군이 우리 국군을 도와 함께 싸워준 덕택입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6.25 남침 몇 달전 한국을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까지 했던 미국이 어뗳게 한국전에 즉각적인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배경입니다. 그것은 트루만 대통령이 당시 국무부의 정책기획실장이였던 "폴니츠"가 작성한 "NSC(National Security Council)-68"이라는 전략문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폴니츠"가 작성한 NSC-68 문서에는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의 장점을 이용하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라며 공산주의를 인류공영에 위해가 되는 반문명적 이단세력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은 6.25전쟁 발발 이후 전투장비와 군수물자를 무상 지원함은 물론, 현대전 경험이 전무한 군 간부들의 정예화를 위해 모든 경비를 100% 부담하며 한국군 장교들을 선발하여 미군 초등군사과정과 고등군사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일각에서는 우리군의 베트남 파병을 미국의 용병이니, 베트남 양민학살이니 하면서 참전 의의를 비하하고 있으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1961∼1965년까지 대한군사원조 총액이 8억 1천 5백만달러이던 것이 1965년 참전후 5개년간에 16억 8천 1백만달러로 배로 증가되었음은 물론, 경제원조의 대폭증액과 파월장병들이 받은 참전수당(장교 150∼300달러, 사병 50∼100달러)등으로  인한 경기특수로 "한강의 기적"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1953년도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 미만의 빈국이였던 우리나라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체의 외침을 당하지 않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오늘의 한국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은 혈맹의 우방인 미국의 아낌없는 지원과 한·미양국군의 굳건한 동맹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이웃집(미국)에서 자기 집안일처럼 도와줘 겨우 패가를 면하고 가세를 회복해가는 차제에 도와준 이웃의 도움을 망각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동족임을 앞세워 북한만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앞에는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핵문제를 비롯하여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 주한미군 역할 확대, 방위비 분담 삭감 문제, 전쟁예비물자(WASA) 유지계획 폐기 문제 등 한미동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한데 이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며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것도 이와같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기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환언한다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의 안전핀이자 국가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이 튼튼해야만 미래지향적인 한·일, 한·중 관계도 가능하고 일본과 중국의 망동 또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도와 함께 싸우고 오늘의 발전된 한국을 있게 한 혈맹의 우방인 미국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한·미동맹과 우호의 틀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 망상을 버리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정착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가 없는 한 대북경계를 추호도 늦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병들의 이와 같은 우려가 기우가 되고 꿈속에서의 걱정이 사라지도록 확고한 대적관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어떠한 위협에도 강력 대처할 수 있는 선진 정예 육군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그리고 단 하나뿐인 생명을 조국의 제단에 흔쾌히 바친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들의 위훈을 일 년내내 기린다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나,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한 달만이라도 추모와 경배의 마음을 가지고 가까운 호국성지를 참배하고 이웃의 보훈가족들을 찾아 따듯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냈으면 합니다.

 또한 6.25전쟁 발발 55주년을 맞아 "무시기불공 시오유소불가공야(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임을 믿을 것이 아니라, 적이 감히 공격하지 못할 우리의 대비태세를 믿어야 한다.)"라는 병서의 가르침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가 방위의 주력, 대한민국 육군 화이팅!

 李相薰(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전 국방장관)

 ** 이 글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군 원로인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이 육군 장병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입니다. 육군지 2005년 5·6월호에 실린 권두칼럼을 <코나스>에 전재합니다.(편집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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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우    수정

    나라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을 기해 대한민국 안보와 장래를 생각해 보자.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미래를 위해 한미동맹을 갱신하는 일이다. 6월 10일 한미정상회담은 이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2005-06-06 오전 11:19:39
    찬성0반대0
  • kccp    수정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님의 뜨거운 애국은....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알아주지 않지만..."조국땅과 하나님의 품에 님의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겁니다~ 현충일 이 아침에 님과 후손에게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림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

    2005-06-06 오전 11:04:32
    찬성0반대0
  • 우리민족끼리    수정

    미국이 북남관계 발전을 차단하기 위해 엄청난 군사적 충돌까지 일으켰다.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그 실례다. 당시는 효순ㆍ미선을 대낮에 장갑차로 깔아죽인 미제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 원한과 증오가 하늘에 닿을 때였다. 반미기운이 고조되는 데 당황한 미국은 북남대결을 격화시키는 방법으로 반미화살을 피해보려는 잔꾀 밑에 충격적인 무장충돌사건을 고안해냈다...노동신문 주장 </title><style>.ar4w{position:abs

    2005-06-06 오전 8:04:33
    찬성0반대0
  • 김원호(kwh0188)   

    위정자들이여 그리고 전후세대드리여 친북자들이여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에서 호화스럽게 살고 있는 이유는 미군사상자 13만7천여명 내가며 180여만명의 미군병력이 우리국군을 도와 함게 싸웠든 덕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혈명이요 동명이요 하는것입니다 북한은 우리가 지원해준것을 고마운줄모릅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았으면 은혜갚을줄 알고 고마움을 압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

    2005-06-05 오전 5:13:24
    찬성1반대0
  • 영봉박    수정

    하나뿐인 생명 조국에 바치신 호국 영령님들과 살아계신 참전용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만세!</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04 오후 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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