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마오쩌둥, 6·25 전쟁 개시일 사전 몰랐다?"

한·미·일·중 학자, 6·25 전쟁 국제학술회의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5-06-10 오후 1:41:56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3

 한국을 중심으로 미·일·중국의 저명한 군사사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이자 6·25 전쟁발발 55주년을 맞아 과거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을 되돌아보고 전쟁사 연구 영역의 확대 및 심화를 위한 국제학술회의 자리였다.

 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홀에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소장 안병한)가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6·25 전쟁과 동북아 군사관계의 변화"였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주최로 열린 '6.25전쟁과 동북아 군사관계의 변화' 국제 학술회의. 온창일교수(육사 명예교수. 가운데)주제로 제1주제 발표가 진행되고있다.

 이 날 학술회의에는 윤광웅 국방부장관, 백선엽 국방부 군사편찬 자문위원장, 장지량 한국군사학회장, 김석원 전쟁기념관장, 김재창 한미안보연구회장, 박정인 전 군사편찬연구소장 등 군 원로 및 통일관계 학자와 군사학회지 발행인, 일반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 윤광웅 국방부장관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기조연설에서 "55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6·25전쟁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민족간의 첨예한 대립이자 비극의 역사였으며, 전 국토가 참화를 입음으로서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가져온, 지금까지도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으로 긴장된 평화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어 "과거 한국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당사국들의 저명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전쟁사를 논의하며, 보다 사실에 근접하여 깊이 있는 성찰을 함으로서 교훈을 찾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하는 것이며, 6·25에 대한 주변국들의 입장을 분석하고 상호 역학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다짐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또 "6·25전쟁은 한국 내 자체에도 엄청난 경험을 갖게 했지만 국내차원을 떠나 세계에 커다란 자극을 준 사건이었다" 며 "이러한 학술회의의를 통해 국가 간 정보교류의 확대로 한반도의 환경과 주변국의 역사를 재인식하여 초국가적인 협력안보, 공동안보, 포괄적 안보의 필요성 제기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백선엽 군사편찬 자문위원장
 또 6·25전쟁당시 한국군 1사단장과 군단장으로 참전하여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칭되는 백선엽 군사편찬 자문위원장은 격려사에서 "정부수립 2년도 채 되기 전에 북한의 6·25 기습남침을 받은 대한민국은 현대사 최대의 위기를 맞았으나 미국을 비롯한 우방 21개국의 지원으로 자유민주체제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으며, 이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며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국가를 보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온 UN 참전국과 피로 얼룩진 국군용사의 값비싼 댓가에 경의와 감사, 위로를 드린다" 고 말했다.

 이어 백 장군은 "오늘의 세미나를 통해 남과북, 동북아의 군사관계를 예의 주시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이 되는 것인가를 모색하는 폭넓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미나는 제1부 "한·미·일 군사관계와 중국" 주제로  ▲ 미 해군군사연구센터 마롤다 박사의 "1945 - 1953년 극동의 위기와 미 해군" ▲ 일본 간다 외국어대 사카다 교수의 "한국전쟁과 한·미·일 안보체제의 형성" ▲ 중국 베이징대 장시아오밍 교수의 "한국전쟁기 중공의 인식과 대응" 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어 오후에 진행된 2, 3부는 "6·25 전쟁과 미군의 대응", "6·25전쟁과 일본"을 주제로 ▲ 한국전쟁시기 미군과 국가안보(데이비스 박사, 미 육군군사연구센터) ▲ 6·25전쟁시 미군의 한반도 전개양상과 특징(남정옥 연구원, 군사편찬연구소) ▲ 6·25전쟁기 주일미군의 군사작전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남기정 교수, 국민대) ▲ 한국전쟁기 일본 방위제도의 재건(히로유키 신도 연구원, 일본 방위연구소 전사부)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1945 - 1953년 극동의 위기와 미 해군

 마롤다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말경 미국은 범 태평양권 국가 중 미국의 군사력보다 더 강한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트루먼 행정부는 미 해군지도자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중요성을 역설했음에도 유럽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중국의 국·공 내전 등 아시아의 분쟁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49년 중국의 칭따오에 주둔하던 함대를 전면 철수시킴으로 소련을 비롯한 공산진영은 미국이 그들의 군사적 행동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며 "그러나 50년 6월 25일 북한의 공격은 극동아시아와 미국의 전반적인 전략적 이해와의 관계에 대해 트루먼이 갖고 있었던 인식을 전면적으로 바꾸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 해군의 한국전 경험은 해군의 군사력이 전쟁의 승리에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주었으며, 미국과 UN군의 항공모함은 지상군 작전을 전개하는데 결정적인 지원을 제공했으며, 전반적으로 해군의 군사력 특히 미 해군은 아시아 지역의 비공산권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고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이승렬 교수(해군사관학교)는 "미국이 중국의 국민당 정부 부패 등으로 아시아에서 중립을 견지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나 갑작스럽게 이 정책을 바꾸어 한국으로의 파병을 결정을 한 배경, 또 미국이 한국전에서 재해권을 장악하여 아군에 유리하게 한 점은 다 인정되나 싸움은 잘 해놓고도 해상에서의 군계선 설정을 모호하게 처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전쟁과 한·미·일 안보체제의 형성

 사까다 교수는 먼저 문제제기를 한미관계가 단순히 한반도의 휴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뤄진 것인가? 단순히 정치적 방편인가를 제기하면서 "휴전을 위한 협력을 얻는 것이 단기적인 목적이었으나 장기적 전략적 목적 역시 있었는데, 아시아, 태평양에서 지역 집단 안보의 일부로서 한미 동맹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집단안보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의문점을 검토해 한·미 동맹관계의 기원이 지역안보 차원임을 명확히 했다.

 사까다 교수는 발표에서 한·미 관계를 기존의 동맹 틀을 중심으로 발표하면서 토론자가 현재 동북아 균형자론 이나 한·일 관계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중공의 인식과 대응

 장시아오밍 교수는 "최근 냉전 종식이후 중국정부는 김일성과 관련한 문서의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연구원이나 일반인들이 모든 정보를 다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논문을 준비하면서 과거의 문서와 회고록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논문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임시적이고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한국전쟁은 중국의 건국 직후에 개입하게 된 첫 국지전쟁이었으며, 함축적 의미가 크고 광범위하다. 중국은 한반도 주변국가중 하나로 이 지역의 실질적, 잠재적 군사적 충돌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는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마오쩌둥 등 중국지도부는 김일성의 군사공격 개시일자를 알지 못했다. 중국지도부가 고심했던 것은 새로운 중국의 재건설이었으며, 자세한 전쟁 일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소련의 최고지도자 스탈린의 재가를 받은 이후 마지못해 전쟁을 승인했다.

 김일성이 무력으로 그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는 계획을 중국으로선 반대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김일성과 스탈린 등의 '공모'나 '음모'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기밀 해제된 서류가 필요하다고 본다" 며 미국이나 한국학자들의 사전 공모설 등에 대해 일축하며 현재로선 자료부족의 원인을 들었다.

 그는 또 미국이 주도하는 UN군의 개입은 중국의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왔다며 "중국지도부는 국가이익과 이데올로기 두 가지 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이후 중국 지도부는 한반도의 상황을 심각히 고려해 마오쩌둥은 망설임과 숙고를 거듭한 후 전쟁에 참여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고 밝히면서 토론자와 청중의 질문에서도 앞서의  공모설 등을 부인하며 자위적 안보론으로 대응했다

 이날 사회를 담당한 온창일 육사 명예교수는 한국전쟁은 매우 특이한 전쟁이라고 운을 뗀뒤 "전쟁 직후 어느 누구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하게 알지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북한 사람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면서 "이런 점에서 한국전쟁은 또 특이한 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오늘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 것도 목숨을 내 던진 참전 호국영령과 부상자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이며 이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거듭 감사를 드린다" 고 평을 하면서 제1주제의 세미나를 마무리했다.(Konas)

 ▲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외국의 석학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개똥이    수정

    아니 모택동이 사전 몰랏다고 에라이놈아</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11 오후 6:30:58
    찬성0반대0
  • 미래파    수정

    중국놈들 땜에 북진통일 코앞까지 갔다고 헛탕쳤는데......................</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10 오후 2:14:09
    찬성0반대0
  • typhoon    수정

    요즘 우리사회 분위기로 보아 6.25전쟁도 북침이라는 주장이 안 나올지 모릅니다.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애국이고 민족공조 라고 생각하는 판이니까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06-10 오후 1:58:54
    찬성0반대0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