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소장을 생각하며...
6ㆍ25 55주년을 맞으며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6ㆍ25를 이야기할 때 의례히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를 생각한다. 이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일거에 전세를 반전시키고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6ㆍ25발발 후 제일 먼저 우리의 땅을 밟았고 노도와 같은 북한군의 공격에 용전분투하다 실종되어 결국 3년의 포로생활 끝에 판문점으로 귀환한 미 보병 제24사단장이었던 윌리엄 딘(William F. Dean)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명장이지만 미국 국민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Dean장군은 UN결의와 미측의 참전 결정 아래 가장 먼저 한국에 발을 내디딘 사단장이었다. 참전결정 이후 4일만에 사단규모의 병력과 장비를 작전지역에 이동할 정도로 신속한 작전을 전개했지만 북한군이 보유한 T-34전차의 위력에 눌려 초기 전투(대전지구전투 : 1950.7.14∼20)에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지원된 3.5인치 로켓포로 북한군을 격파하면서 미군의 증원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지연전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Dean장군은 최후에까지 대전에 남아 있다가 실종하고 만다. 장군은 사단장으로서 지휘소이동과 더불어 먼저 이동하는 법인데 마지막까지 대전에 남아 있었던 것은 전투에 임하는 부하들에 대한 전의(戰意) 고양과 계속 밀리기만 하는 한국군의 지휘관들에게는 지휘도(指揮道)의 큰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장군의 실종 경위를 살펴보면,길을 잘못들은 상황에서 부상병들을 수습하다가 피를 흘리며 갈증을 호소하는 병사에게 줄 물을 구하기 위해 계곡을 헤매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실신하였던 것이다. 격전장에서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솔선수범하면서 부하들을 끔찍하게 사랑한 진정한 군인,훌륭한 지휘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장군은 실종 36일 만에 진안에서 한 농부의 밀고로 북한군에 체포된다.
특히 그는 군인으로서 포로가 되는 것은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진 장군이 한국전에서 적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잘 말해 준다. 포로가 된 후 자신이 알고 있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군사기밀을 북의 모진 심문에 굴복하여 무의식중에 발설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며 군인으로서 고민과 항거를 하다가 휴전 이후 3년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데,체포 당시 86㎏의 체중이 58㎏으로 줄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도 Dean장군은 자신을 밀고한 농부가 체포되어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라는 소식을 접하자 오히려 그의 감형을 탄원,출소하도록 도와 주었다.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해 전쟁을 치르지만 이념의 대립과 비굴한 인간의 내면에서 나온 비극을 끌어안는 참군인의 모습을 그는 끝까지 보여준 것이다.
6ㆍ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많아지면서 대미관계를 역사속에서 읽지 못하는 요즘,딘장군의 발자취는 객관적 시각으로 역사를 관조하는 안목을 키워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으로 지켜낸 한 군인의 정신과 의지,용서의 마음은 한국으로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자 영원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6ㆍ25전쟁을 망각하면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올 수 있음을 자각함과 함께 딘 장군을 포함한 전쟁참전용사들의 혁혁한 전공과 군인정신을 깊이 생각하며,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해 주신 은공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konas)
손 희 선(성우회 자문위원ㆍ예육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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