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군대처럼 만들자
군기란 '규율'이 아닌 '사기'를 의미, 군인을 비하하고 매도하는 풍토 사라져야
지난 6월 19일 최전방 GP에서 육군 일병이 상급 병사 및 장교에게 총기를 난사, 여덟 명의 아까운 목숨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국방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에 야당은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정부 여당은 국방개혁을 위해 장관이 유임되어야 한다고 맞서 싸웠다. 결국 한 병사가 저지른 사건은 정치적 싸움으로 비화되었고 앞으로 그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방안이 수립되어야 할런지에 관한 논의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사건은 사실 정치의 차원을 넘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건이며, 이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는데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일이다. 이처럼 험악하고 위험한 군대에 자기 자식, 형제를 보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온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는 군대를 가고 누구는 안가도 되느냐의 문제가 첨예한 사회 갈등을 일으키는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 방안 마련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이 사건의 원인에 관한 분석이 선행 되어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경우 항상 나타나는 고민은 그 사건이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연원한 것인지 혹은 조직이나 시스템의 잘못 때문에 야기된 사건인지를 명확하게 구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군대 조직의 속성상 위계질서가 필연적이고 그동안 군대 내무생활은 일반 사회생활과 달리 비민주적, 폭력적인 측면이 용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조직과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과 같은 총기 난사 사건은 수십 년에 한번 정도 일어나는 일이며 범행 당사자인 김 일병의 비정상적인 소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측면이 많다. 아무리 분노가 극에 달했다 해도 동료, 선배를 죽이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같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병사를 사전에 걸러 내지 못한 것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군기가 빠져서 일어난 일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군기사고란 주로 해이 상황에서 야기되는 안전사고를 의미한다. 교통사고, 총기 오발 사고 등이 군기 해이 때문에 난 사고의 전형이다. 이번 사고는 의도하고 살인을 하기로 작정한 사고라는 점에서 군기의 문제로 접근 하는 것은 무리다.
군기란 상관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꼼짝없이 말을 듣는 억압적 분위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군기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우애, 협동심, 상급자의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느슨해 보이는 부대가 전투에 나가면 훨씬 더 훌륭한 전과를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군기란 단지 규율 (規律 discipline) 뿐 아니라 사기(士氣 Morale)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며 우려스럽게 생각되는 부분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인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가 정말 땅에 떨어진 것 같다는 점이다. 국민개병제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빠지는 사람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고, 지금은 없어진 제도지만 짧게 군대를 갔다 오는 방위병을 ‘장군의 아들’이라 부르고, 군대생활을 다 해야 하는 일반 병사들을 ‘어둠의 자식들’이라 부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책임을 질 일이 많은 사람들의 자식들이 혹은 본인들이 군대를 피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믿는 것이 국민 일반의 생각이다. 예로서 드문드문 보도되었던 우리나라 국회의원 혹은 고위 관리들의 병역필 비율이 일반국민들보다 오히려 낮다는 사실은 국민개병제인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최대의 원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여론조사 담당 연구원인 칼린 보우맨(Karlyin Bowman)은 미국군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제도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은 미국 군대가 하는 일은 우선 옳은 일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군인임을 혹은 군인이었음을 자부하고, 늙은이들은 추수감사절 혹은 크리스마스 등 가족들의 파티에 옛날 입던 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
우리나라에서 군인은 ‘군바리’ 라고 비하되고, 사회적으로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된다. 물론 군사 쿠데타, 유신 독재, 12.12, 광주 5·18 등의 악몽은 대한민국 군대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우를 거두어 버리는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는데 열심인 대부분의 정상적인 군인들마저 싸잡아 매도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필자도 이미 오래전 장교로서 군복무를 하며 많은 병사들이 제대하는 날 환호하며 떠나는 것을 보았다. 장교로 병역의무를 마친 필자의 동료들도 군을 떠나는 날 솔직히 섭섭하기보다는 기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동안 최소 2년 이상 몸담고 있던 조직을 떠나며 섭섭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환호하는 경우가 군대말고 또 있을까?
이제 더 이상 군대라는 조직을 젊은이들이 자신의 달력에 X 표를 하며 날짜 가는 것을 세는 조직으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자기는 부모를 잘못 만나 군대를 왔다고 생각하는 병사가 있는 한, 군대에 와서 세월이 빨리 가기만을 기대하는 병사들이 있는 한, 군대를 민주화 한다느니 어려운 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휴가를 많이 준다느니 등등의 처방은 임시변통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군대를 군대처럼 만들자. 그리고 군대에 가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게 하자. 군대에 다녀 온 것이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자.(new-right.com)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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