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북한의 기묘한 對外무역 관계
안드레이 란코프, 호주 국립대 한국사 교수
Written by. 김필재
입력 : 2005-08-08 오전 9:31:36
북한의 핵 포기를 목표로 지난 달 26일 북경에서 개최된 6자 회담은 공동 문건 도출로 9일 간의 협상을 끝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핵 관련 프로그램의 동결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게 식량 및 경제지원 그리고 체제안전보장과 대외 무역 관계의 정상화 등을 내걸었다. 최근 북한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참관국(옵서버) 자격을 확보하길 희망한다는 의사를 국제사회에 타진한 바 있다.
北, 13년 째 태국에 쌀 수입 비용 지불하지 않아
그러나 북한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국가들은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993년 북한의 무역 대표부는 태국으로부터 쌀 60만 톤을 수입했다. 이 쌀은 당시 여러 척의 선박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북한은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태국 정부의 중재와 외교관들의 노력으로 얼마 전 북한은 부분적인 대금 지불을 약속했으나 여전히 1억 9천 만 달러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
태국의 비즈니스맨들은 북한을 겨냥해 무모한 교역관계를 맺기 전에 북한이란 나라를 오랜 동안 경험해온 러시아와 중국인들의 충고를 들었어야 한다. 실제로 과거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담당했던 구 소련 출신 관리는 태국 경제인들에게 위와 같은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에서 상호주의와 공정성에 기반을 둔 무역을 해본 역사가 없는 나라다. 195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북한이 행한 경제활동은 대개 정치활동의 연장일 뿐이다. 북한은 오로지 극소수의 경제 분야 관료들이 꼭 필요한 물건을 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국가로서 이는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北, 국제사회로부터 원조 받기 위해 6자 회담 참가
북한은 그동안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소리 높여 선전해왔다. 과거 구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원조를 받은 김일성은 1950년대 말부터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소련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북한은 더 이상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직-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원조를 받고 있다.
최근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 1991년 러시아 외무부 산하 리서치 센터의 Natalya Bazhanova 연구원은 1948년부터 1984년까지 구 소련이 북한에 원조한 자금을 총 20억 2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이 수치도 간접적인 방식을 통한 대북 지원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과거 구 소련은 북한에 대한 원조를 대부분 정상적인 교역관계로 위장했기 때문에 양국의 경제관계는 비정상적이었다. 당시 소련은 북한에게 해외에 내다 팔 수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각종 무기를 포함해 다양한 산업물자를 제공했다. 한편 북한은 구 소련이 이들 물자를 제공하는 대가로 담배, 채소, 부츠, 그리고 러시아 농부들조차 입에 대지도 못하는 저급한 술을 물물교환 형식으로 지불했다.
특히 구 소련과의 물물 교환 과정에서 북한 관리들은 물건 가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했으며, 선적과 대금지불 또한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이로 인해 부채가 눈덩이처럼 증가하면 북한은 자기 입맛대로 부채상환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곤 했다.
구 소련, 美에 대항키 위해 北 병영국가 체제 만들어
물론 이러한 불균형적 무역관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구 소련이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구 소련이 북한을 이처럼 경제적 종속 상태로 놔둔 전략적 배경에는 북한을 고도의 병영국가로 만들어 놓음으로서 미국에 대항해 냉전을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북한은 구 소련의 단순한 전략적 수혜자는 아니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당시부터 어떻게 하면 해외로부터의 원조를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원조국가의 관리들을 효율적으로 조종할 수 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이 시기 북한 전략의 핵심은 중국과 구 소련의 라이벌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시 모스크바는 중국을 미국보다 더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구 소련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고립시키려 했다. 실제로 1960년대 내내 북한주재 소련 대사에게는 "북한을 중국과 소련 사이의 중립국가 내지는 친 소련 국가로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따른다고 여겼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 소련 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겠다는 `소극적 양보 전략`을 택했다. (이는 구 소련의 입장을 헤아려 중국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구 소련과 북한과의 교역관계는 지난 1990~1992년에 걸쳐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1990년 양국의 교역량은 총 10억 1천 4백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1991년에는 3억 6천만 달러로 줄어들게 되며, 종국에 가서는 1억 달러(1992년)로 뚝 떨어져버렸다.
구 소련 패망 후 자금 모두 北에서 철수
이것은 물론 북한 당국의 금수조치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구 소련의 패망 후 러시아 당국은 자국 회사들이 북한과 무역을 지속하길 원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러시아의 자본가들은 북한이 정당한 무역의 대가로서 자신들에게 경화를 지불하길 원했으나, 북한 경제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결과 북한 내 러시아 자금은 모두 본국으로 철수하게 된다.
현재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은 그 규모가 매우 미약하게 나마 존재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관계자들은 북한이 무역관계에서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아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한과의 무역은 속임수가 많고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관리들 사이의 개인적인 커넥션(현금 봉투)이 경제관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오랜 기간 동안 북한 지도층의 머릿속에서는 경제관계에 있어 돈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들은 교역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북한의 특수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단지 북한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서방의 선진국들은 이미 1970년대에 산업물자와 기계류 등을 수입에만 의존한 북한이 결국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北,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많은 부채에 시달려
실제로 1970년대 이르러 북한은 공산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나라가 됐다. 이 시기 북한의 부채는 10억 달러~10억 3천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북한에 차관을 제공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현재까지 대금을 지불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험에 의하면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금액을 상환 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는 북한에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북한은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대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경우 늘 외채 상환 부담에 시달리다 정권이 붕괴됐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떤가? 북한은 과연 자국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주변국가들의 채무상환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북한은 서방세계와의 무역관계에 있어 제대로 약속을 이행한 사례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에는 상호주의라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50년 동안 상호주의를 무시해온 북한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나라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는 점이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북한은 소련과의 무역과정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새로운 파트너 국가들에 적용시키고 있다. 즉 지속적으로 북한 주변의 부유한 국가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전략이다. 이는 쉽게 말해 `공갈`(blackmail)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공갈전략이 그런 대로 잘 먹혀들어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은 프랑스 와인과 스카치 위스키를 즐기는데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제네바협정·KEDO 北 `공갈전략`의 극치
지난 1994~2003년까지 북한의 주요 수입원은 다름 아닌 핵 프로그램으로 실제 핵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도 전에 북한은 이미 주변국가들로부터 돈을 떼먹을 생각을 했다. 일례로 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 그리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프로젝트는 북한 공갈 전략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라이벌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원하지는 않지만, 친미성향이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와 함께 중국은 북한이란 공산주의 국가가 자국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대한 원조 및 경제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에 이어 한국이 북한 원조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거 1970~1980년대 기간동안 구 소련이 북한에 보낸 원조를 훨씬 뛰어넘는 양의 대북 원조를 하고 있는데, 거의 돈을 퍼주다(pumping money)시피하고 있다. 지난 1995~2004년까지 공식적으로 한국이 인도적 차원으로 북한에 제공한 자금은 무려 10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은 대북 `경제협력사업계획`을 통해 북한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게 후원과 인센티브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 사업의 정점에는 북한에 보내는 5억 달러 상당의 비밀(clandestine)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대한 약속은 지난 2000년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아낌없는 북한 퍼주기, 요원한 남북통일
남한의 아낌없는(largesse) 북한 퍼주기는 국가주의 내지는 인도주의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정권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길 원하는 듯 하며, 북한에서 민주적인 봉기(혁명)가 일어나길 바라지 않고 있다. 특히 삶의 질에 있어 남한과 북한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심해진 이후부터 독일식 통일은 현재 한국에서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은 대북 지원자금이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통해 통일을 먼 미래로 의도적으로 연기시키고 있다. 수십 년 전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은 무슨 일이 (북한) 내부적으로 발생하건 상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외부인들(outsiders)은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북한이 내심 또 다른 교역파트너(남한)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북한이 기묘한 방식의 무역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된다. 마치 60만 톤의 쌀을 수출하고 13년이 지난 후에야 대금을 지불하기 시작한 북한에 대해 여태껏 대금을 상환받길 바라는 태국처럼 말이다.(konas)
출처: 홍콩 `아시아타임스` 인터넷 리뷰 8/4
필자: 안드레이 란코프
舊 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과 졸업(1986)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現 국민대학교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번역·정리: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미국은 그동안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핵 관련 프로그램의 동결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게 식량 및 경제지원 그리고 체제안전보장과 대외 무역 관계의 정상화 등을 내걸었다. 최근 북한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참관국(옵서버) 자격을 확보하길 희망한다는 의사를 국제사회에 타진한 바 있다.
北, 13년 째 태국에 쌀 수입 비용 지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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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비즈니스맨들은 북한을 겨냥해 무모한 교역관계를 맺기 전에 북한이란 나라를 오랜 동안 경험해온 러시아와 중국인들의 충고를 들었어야 한다. 실제로 과거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담당했던 구 소련 출신 관리는 태국 경제인들에게 위와 같은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에서 상호주의와 공정성에 기반을 둔 무역을 해본 역사가 없는 나라다. 195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북한이 행한 경제활동은 대개 정치활동의 연장일 뿐이다. 북한은 오로지 극소수의 경제 분야 관료들이 꼭 필요한 물건을 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국가로서 이는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北, 국제사회로부터 원조 받기 위해 6자 회담 참가
북한은 그동안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소리 높여 선전해왔다. 과거 구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원조를 받은 김일성은 1950년대 말부터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소련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북한은 더 이상의 원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직-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원조를 받고 있다.
최근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 1991년 러시아 외무부 산하 리서치 센터의 Natalya Bazhanova 연구원은 1948년부터 1984년까지 구 소련이 북한에 원조한 자금을 총 20억 2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이 수치도 간접적인 방식을 통한 대북 지원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과거 구 소련은 북한에 대한 원조를 대부분 정상적인 교역관계로 위장했기 때문에 양국의 경제관계는 비정상적이었다. 당시 소련은 북한에게 해외에 내다 팔 수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각종 무기를 포함해 다양한 산업물자를 제공했다. 한편 북한은 구 소련이 이들 물자를 제공하는 대가로 담배, 채소, 부츠, 그리고 러시아 농부들조차 입에 대지도 못하는 저급한 술을 물물교환 형식으로 지불했다.
특히 구 소련과의 물물 교환 과정에서 북한 관리들은 물건 가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했으며, 선적과 대금지불 또한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이로 인해 부채가 눈덩이처럼 증가하면 북한은 자기 입맛대로 부채상환 날짜를 마음대로 바꾸곤 했다.
구 소련, 美에 대항키 위해 北 병영국가 체제 만들어
물론 이러한 불균형적 무역관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구 소련이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구 소련이 북한을 이처럼 경제적 종속 상태로 놔둔 전략적 배경에는 북한을 고도의 병영국가로 만들어 놓음으로서 미국에 대항해 냉전을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북한은 구 소련의 단순한 전략적 수혜자는 아니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당시부터 어떻게 하면 해외로부터의 원조를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원조국가의 관리들을 효율적으로 조종할 수 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이 시기 북한 전략의 핵심은 중국과 구 소련의 라이벌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시 모스크바는 중국을 미국보다 더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구 소련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을 고립시키려 했다. 실제로 1960년대 내내 북한주재 소련 대사에게는 "북한을 중국과 소련 사이의 중립국가 내지는 친 소련 국가로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따른다고 여겼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 소련 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겠다는 `소극적 양보 전략`을 택했다. (이는 구 소련의 입장을 헤아려 중국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구 소련과 북한과의 교역관계는 지난 1990~1992년에 걸쳐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1990년 양국의 교역량은 총 10억 1천 4백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1991년에는 3억 6천만 달러로 줄어들게 되며, 종국에 가서는 1억 달러(1992년)로 뚝 떨어져버렸다.
구 소련 패망 후 자금 모두 北에서 철수
이것은 물론 북한 당국의 금수조치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구 소련의 패망 후 러시아 당국은 자국 회사들이 북한과 무역을 지속하길 원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러시아의 자본가들은 북한이 정당한 무역의 대가로서 자신들에게 경화를 지불하길 원했으나, 북한 경제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결과 북한 내 러시아 자금은 모두 본국으로 철수하게 된다.
현재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은 그 규모가 매우 미약하게 나마 존재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관계자들은 북한이 무역관계에서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아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한과의 무역은 속임수가 많고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관리들 사이의 개인적인 커넥션(현금 봉투)이 경제관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오랜 기간 동안 북한 지도층의 머릿속에서는 경제관계에 있어 돈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들은 교역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북한의 특수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단지 북한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서방의 선진국들은 이미 1970년대에 산업물자와 기계류 등을 수입에만 의존한 북한이 결국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北,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많은 부채에 시달려
실제로 1970년대 이르러 북한은 공산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나라가 됐다. 이 시기 북한의 부채는 10억 달러~10억 3천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북한에 차관을 제공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현재까지 대금을 지불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험에 의하면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금액을 상환 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는 북한에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북한은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대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경우 늘 외채 상환 부담에 시달리다 정권이 붕괴됐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떤가? 북한은 과연 자국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주변국가들의 채무상환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북한은 서방세계와의 무역관계에 있어 제대로 약속을 이행한 사례가 없다. 북한이란 국가에는 상호주의라는 원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50년 동안 상호주의를 무시해온 북한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나라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는 점이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북한은 소련과의 무역과정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새로운 파트너 국가들에 적용시키고 있다. 즉 지속적으로 북한 주변의 부유한 국가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전략이다. 이는 쉽게 말해 `공갈`(blackmail)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공갈전략이 그런 대로 잘 먹혀들어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은 프랑스 와인과 스카치 위스키를 즐기는데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제네바협정·KEDO 北 `공갈전략`의 극치
지난 1994~2003년까지 북한의 주요 수입원은 다름 아닌 핵 프로그램으로 실제 핵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도 전에 북한은 이미 주변국가들로부터 돈을 떼먹을 생각을 했다. 일례로 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 그리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프로젝트는 북한 공갈 전략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라이벌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원하지는 않지만, 친미성향이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와 함께 중국은 북한이란 공산주의 국가가 자국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대한 원조 및 경제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에 이어 한국이 북한 원조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거 1970~1980년대 기간동안 구 소련이 북한에 보낸 원조를 훨씬 뛰어넘는 양의 대북 원조를 하고 있는데, 거의 돈을 퍼주다(pumping money)시피하고 있다. 지난 1995~2004년까지 공식적으로 한국이 인도적 차원으로 북한에 제공한 자금은 무려 10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은 대북 `경제협력사업계획`을 통해 북한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게 후원과 인센티브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 사업의 정점에는 북한에 보내는 5억 달러 상당의 비밀(clandestine)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대한 약속은 지난 2000년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아낌없는 북한 퍼주기, 요원한 남북통일
남한의 아낌없는(largesse) 북한 퍼주기는 국가주의 내지는 인도주의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정권이 정치적으로 안정되길 원하는 듯 하며, 북한에서 민주적인 봉기(혁명)가 일어나길 바라지 않고 있다. 특히 삶의 질에 있어 남한과 북한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심해진 이후부터 독일식 통일은 현재 한국에서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은 대북 지원자금이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통해 통일을 먼 미래로 의도적으로 연기시키고 있다. 수십 년 전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은 무슨 일이 (북한) 내부적으로 발생하건 상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외부인들(outsiders)은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북한이 내심 또 다른 교역파트너(남한)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북한이 기묘한 방식의 무역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된다. 마치 60만 톤의 쌀을 수출하고 13년이 지난 후에야 대금을 지불하기 시작한 북한에 대해 여태껏 대금을 상환받길 바라는 태국처럼 말이다.(konas)
출처: 홍콩 `아시아타임스` 인터넷 리뷰 8/4
필자: 안드레이 란코프
舊 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과 졸업(1986)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現 국민대학교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번역·정리: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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