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남한(南韓) 길들이기'
"한나라당이 기어이 권력의 자리를 탈취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 노동신문·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최근 한나라당의 재집권 전략을 비난하면서 내놓은 메시지의 한 구절이다.
북한의 언론매체는 '재집권 야망에 들뜬 친미보수 집단의 망동'이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권력탈취 시나리오 ▽이미지 개선 놀음 ▽지지기반 확대책동 본격화 ▽비열한 색깔론 공세 ▽친미매국노의 변함 없는 권력야욕 등으로 구분하여 분석적이고도 악의에 찬 글로 비판하고 "한나라당이 미국의 비호 아래 집권 야망에 들떠 있다"고 질타했다.
저들은 또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 가능성과 관련하여 "최근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이회창을 정치판에 다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면서 '이(李) 전 총재의 정계복귀 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이 외에도 민노당 김혜경 대표 일행의 북한 애국열사 능(陵) 참배를 문제삼은 한나라당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일갈하고,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친미·보수 세력에 의한 중상모략의 희생자'라고 두둔하면서 "남조선 인민들은 저지 투쟁에 나서라"라고 선동하고 있다. 엄청난 내정간섭이고 점입가경이다.
'한미 을지(乙支)포커스렌즈 훈련'에 대한 그들의 격렬한 비난과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홀대' 그리고 '임진강 상류 북한 댐의 사전통보 없는 방류로 인한 물난리' 등은 일단 접어둔다 해도 남한 정계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대한 저들의 생트집잡기 내정간섭은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북한의 '남한 보수야당 길들이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들은 수년 전에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국회연설 내용을 문제삼아 "한치 앞도 내다 못 보는 '민족의 탈을 쓴 역적'이며 천치바보 철부지 반(反)통일분자라고 몰아세워 보수진영의 집권 저지에 나섰었다.
'보수언론'에 대해서도 저들의 망동은 계속되고있다. C일보가 1997년 6월24일 '김정일은 물러나야 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한데 반발하여 북한은 "민족의 이름으로 천백번 길들이기를 해야한다"면서 "통일의 암초는 폭파해버리는 것이 순리"라고 매도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DJ 정권이후 줄곧 '북한에 의해 길들여지고, 대북(對北)정책은 계속 끌려 다녔다. 우리 정부가 '남북 화해무드 조성'이라는 '햇볕정책' 명분 아래 '정권 차원의 정책'을 펼쳐왔던 탓이다. '원칙 있는 대응'이 아니었다. 그것이 1차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결과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의 위상과 지도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남한의 '반(反)북한 정서' 약화를 자초했으며, 그들에게 '남한 길들이기' 길을 터 주었다.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기는커녕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에 놀아나는 출발점'이 되고 말았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 그치지 않고 '남한정부'에까지 수시로 자행되고있는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2000년대 들어 첫 남한 정부 길들이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4년 전(2001년10월30일)의 일이다. 북한은 '남쪽은 불안하다'는 이유로 당국간 회담을 '안전한 금강산'에서 열자고 했다. 남북회담 관행에도 맞지 않고 일방적 덮어씌우기 식의 억지였다. 우리 정부는 당시 그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저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인정한 꼴이 됐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남한정부 길들이기'는 작년 8월 탈북자 468명의 대거 입국과 김일성 사망 10주년 조문 입북 거부를 들어 장관급 회담에 불응한 것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1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뜨린 일일 것이다. 그것은 '이유있는 항의'와는 거리가 먼, 차기 대권주자이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에 대한 '길들이기'였다. 정 장관은 그 후 어이없게도 '탈북자 지원단체의 활동'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북한에 승복했다.
북한이 이번에 강력하게 반발한 역공(逆攻)대상은 한미 을지(乙支)포커스렌즈 훈련이었다. "앞에서는 대화·평화·주권존중을 운운하고 돌아앉아서는 힘과 압살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북침전쟁 책동에 광분하는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이며 도발적인 책동에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한다"고 했다. 남한이 '배신자'라는 것이다.
"그동안 남측의 요청을 다 받아 주었는데도 북침 전쟁연습으로 우리의 성의를 짓밟았다"고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억지이다. 8·15 축전 북측 대표단 방한은 저들이 대남(對南)통일전선운동 필요성에서 보낸 것이고, 이산가족 상봉은 연례적으로 해오던 행사 아닌가. 이마저도 남측이 식량 50만t과 비료 20만t을 제공하고서 이루어진 일이다.
을지(乙支)포커스렌즈 훈련을 빌미로 남북간 군사회담 등은 또 다시 한없이 미뤄질 것이다. 저들로서는 쌀과 비료를 받아낼 만큼 받아냈으니 당분간 아쉬울 것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버티기만 하면 "남조선 정부는 저절로 끌려온다"는 북한의 회담전략이 또 다시 성공할 것인지- 그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대응태도에 달려있다.
우리는 더 이상 북한에 퍼주면서 끌려 다니는 어설픈 모습을 끝내야 한다. 남한에서 받을 것은 다 받으면서도 남한 내부문제에 사사건건 간섭하려드는 '비정상적인 남북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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