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北을 과거로 되돌려 놓은 ‘햇볕정책’
김정일, 내부 결속위해 식량 배급제 부활 시켜
안드레이 란코프, 호주 국립대 한국사 교수
[原題] North Korea hungry for control
북한의 식량 배급제 재가동 움직임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북한 정권이 과거처럼 식량을 독점하려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이것이 단지 과거로의 회귀(回歸)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은 식량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 전역에 걸쳐 관리들은 식량 배급제의 부활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실 북한의 식량 배급제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1994~1995년 기간 동안 북한에 불어닥친 '고난의 행군' 결과 그 기능이 상실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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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식량 배급표는 주민들에게 계속 지급됐으나, 이를 가진 북한 주민들은 구할 식량이 없었고 단지 당국이 제공하는 비상식량(ration)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들어 식량 배급제는 북한의 주요 도시에서 부분적으로 부활했지만, 과거처럼 충분한 양의 배급이 주민들에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2002년 소위 '7.1 경제 개선' 조치 이후 북한에서는 배급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북한, 평양 거주 주민들에게만 식량 배급해 문제
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동안 북한의 식량 배급은 주로 평양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만 국한됐고, 대다수의 주민들에게는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어 북한 당국이 최근 배급제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했으며, 오는 10월부터는 농산물에 대한 사적 소유를 금지키로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실제로 식량 배급제를 부활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좀더 흘러야 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북한은 이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들의 자신감은 실제 북한이 처한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북한의 올해 작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식량 원조를 통해 이와 같은 계획이 현실화 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상인들은 우선 외부에서 지원된 쌀을 판매해 들어오는 현금으로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서 싼값의 양곡을 구입하는 '돌려 막기' 식 유통을 시도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 후 우리는 북한의 식량 배급제가 쌀과 곡류를 중심으로 재개되는 상황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과연 배급제의 부활은 북한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먼저 배급제가 부활하게 되면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물론 이를 환영할 것이다. 배급제가 제대로만 가동된다면 북한의 대다수 주민들은 충분한 양의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악몽(惡夢)으로 여겨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힘겨운 삶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집권기간이 북한의 역사에 있어 그나마 지금보다는 나았다고 여기고 있다. 이유는 굶어죽는 일이 현재와 같이 다반사로 발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일반주민들에게 있어 식량 배급제의 부활은 과거의 안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를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환영받을 일인가? 지난 10년 동안 남한 對北 정책의 핵심은 일방적(unilateral) 유화전략이라 할 수 있는 '햇볕정책'(Sunshine Policy)으로 요약된다. 이 정책에 따라 남한 정부는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을 포기한 채 엄청난 양의 직·간접적 지원을 해왔다. 햇볕정책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막기 위한 정책이다. 북한의 붕괴를 남한 정부는 악몽(nightmare)으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붕괴된 북한은 남한에게 있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며, 그동안 쌓아온 경제기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남한에서는 일방적인 유화정책과 對北지원을 통해 개혁에 대해서라면 편집증(paranoiac)적 공포심을 가진 북한 지도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북한 지도층은 편집증 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완벽히 정상적이며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볼 때, 북한 지도부는 그들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도 자신들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붕괴와 함께 북한 지도층도 괴멸될 것
이들은 또한 북한이 처한 상황은 중국의 입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북한의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하며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보다 15배나 높은 한국이 존속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불과 수백 마일 떨어진 남한 동포들이 자신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그토록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북한 정권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가?
만일 북한이 붕괴되면 그 지도부는 어떻게 될까? 이들의 미래는 舊 소련이나 동유럽의 지도층과는 달리 성공적인 자본가로 탈바꿈하기는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국가 주요 경제 시스템이 남한 주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붕괴되면 기존의 엘리트들은 얻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오직 모든 것을 잃을 일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남한의 햇볕정책 옹호론자들보다도 이 사실을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서 개혁은 내부적 불안정성을 야기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스런 행동으로 간주된다. 현실적으로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일 북한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나라가 얼마나 절망스런 상황인지를 인식하고 現 정권을 무너뜨리고 남한과의 통일을 하려들 경우 모든 상황은 역전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가 유발되어야만 한다.
북한, 외부 원조의 극대화 전략 추구해
이 같은 상황을 대비해 북한 지도부는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있을까?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의 엘리트들은 과거 자신들의 선배들이 과거 수십 년 간 사용해온 방법으로 외교적 수단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전략을 통해 그동안 북한은 성장할 수 없는 경제구조를 가지고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원조는 그동안 주로 러시아와 중국이었으나 현재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국제기구로 바뀌었다.
물론 이들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특히 대북 원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외부 원조는 실제 북한 경제를 발전 시킬 정도의 파급력은 없으나, 경제 자체의 현상유지는 충분히 가능케 만들었다. 한편 외부로부터의 원조는 북한의 심각한 기아를 막는 원동력이 됐지만 김정일과 그의 최측근들이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만일 북한의 식량 배급제의 부활과 관련된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북한 지도부의 꿈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꾸는 꿈이란 과거처럼 국가가 나서서 모든 식량을 분배하는 계획경제로의 회귀(回歸)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배급할 충분한 양의 식량이 생기게 되면, 예전처럼 배급제를 모든 주민들에게 확대 실시한 후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양의 식량만을 공급할 것이다.
식량 배급제 부활, 체제 개혁에 전혀 기여 못해
이는 북한 정권의 안정으로 이어지겠지만 체제의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배급제의 부활은 현재 북한 주민의 생명줄과도 같은 시장과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들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일 주민들에게 하루 평균 500~700그램(성인 1인 기준)의 식량만 배급된다면, 북한은 정권의 위협이 될 소지가 많은 사회개혁, 경제개혁 등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식량배급제의 부활은 북한 정권에 유리한 작용을 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원조가 많아지면 많아지는 만큼 과거로의 회귀(回歸)에 대한 강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북한 사회를 바꾸려 했던 노력이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북한은 서서히 사회 · 경제에 있어서 아주 느리지만 변화가 있어왔다.
그러나 식량 배급제가 부활되면 이 모든 것들은 중단될 것이다. 이처럼 애초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 주요인은 바로 햇볕정책 때문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상황이 북한 지도부가 아무리 꿈꾸고 희망하고 있을지라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보가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하급관리들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점점 약해져가고 있다.
북한의 진정한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어
우리는 북한문제에 있어 여전히 모순(paradox)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부세계의 원조가 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북한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틈타 북한 지도부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안정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인 원조를 받으려면 북한은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접촉을 통해 북한은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전혀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출처: 홍콩 '아시아타임스' 인터넷 리뷰 9/10
필자: 안드레이 란코프
舊 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 종합대 조선어문학과 졸업(1986)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現 국민대학교 교수
저서 <북한현대정치사>,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 <북한의 위기>
번역·정리: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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