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보시는 분들! 아이들의 눈물을 잊지마세요.
Written by. 최홍재
입력 : 2005-09-27 오전 10:02:00
생을 두고 잊지 못할 선생님 몇 분이 계십니다. 따뜻한 미소와 엄한 격려로 나의 의지를 곧추 세워주셨던 선생님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학생운동 시절 3년 2개월 여의 긴 수배 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찾아뵌 선생님. 선생님은 그때 칭찬도 질타도 없이 그저 많이 먹으라시며 꽃등심을 제 수저에 올려 주셨습니다. 교사의 월급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이임에도 입안에서 살살 녹아나는 꽃등심의 맛에 취해 버리고 말았던 기억. 선생님을 제 가슴에 품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문득 문득 궁금해지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마 중학교 2학년 가을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는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하나의 학원이 재단으로 있었습니다. 2년에 한번씩 학원 축제를 했던 것 같았는데 제가 2학년 가을에 그 축제가 준비되었습니다. 중학생 천여명은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집단체조에 매달렸습니다. 이 집단 기계체조는 체육선생님이 지도를 하셨었는데, 그는 우리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투포환 선수 출신의 체육선생님은 키도 컸을 뿐 아니라 몸도 좋으신 까닭에 우리 같은 병아리들에 비하면 거의 코끼리 수준이었습니다. 이 분은 언제나 가슴까지 올라오는 곤봉을 휴대하고 다니셨는데, 연습때마다 우리는 이 분의 입과 곤봉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체육시간만 연습에 집중하다가 그 다음 얼마동안은 수업 종료 이후 2시간 이상을 여기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축제가 가까워지자 아예 수업시간의 일부까지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든, 두려워하는 친구들이든 모두 하나같이 왜 그렇게 수업시간을 좋아했던지... 아프지도 않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평상시에는 잘 끼워주지도 않던 허약한 친구에게 보내는 부러움의 눈빛이란...
연습의 말미가 될수록 공포분위기는 한층 더 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점차 숙달되어갔기 때문에 실수는 흰옷에 튄 먹물자욱처럼 선연하고 드러났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먹물자욱들은 가차없이 ‘읍참마속’의 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한번 마속이 되었습니다.
실수로 연단에 올라가 풀스윙에 희생되는 가여운 짐승들의 신음소리에 움찔거리노라면 정말 아무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친구들이 한 명도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혼자만 틀리고 말았습니다. 모두 오른쪽으로 손을 활처럼 만들어 내미는데 혼자서 왼쪽으로 삐진 후 선생님의 눈과 마주쳤을 때의 절망감이란...
대북지원활동을 해온 22개 민간단체 인사들이 26일부터 다음달 15일 사이 약 9,200여명이 방북한다고 합니다. 가서 아리랑공연도 볼 예정이라고 하네요. 10만명이 만들어내는 대서사시라는 아리랑! 최고석 300달러가 아깝지 않을 거라는 아리랑! 1만명이 100달러라고 가정하면 백만달러가 김정일의 호주머니로 또 들어가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요. 대통령이 나서서 몇 억달러씩 챙겨주는데 그깟 백만달러야 김정일의 입장에서 코묻은 돈에 불과하겠지요. 그럴듯한 말로하면 조족지혈이 되겠네요.
그러니 그깟, 3백달러 가지고 제가 문제삼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작 아리랑을 관람하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아리랑을 준비했을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만이라도 헤아려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북녘의 아이들이 나의 중학교 시절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준비했던 집단체조보다 양과 질에서 비교도 안되는 규모의 아리랑을 준비할 때 한 아이 한 아이, 북녘의 아이들이 쏟아냈을 땀방울과 희생들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지요. 준비부터 본격적인 공연까지 하려면 10시간 이상 자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데 그 자리에서 대소변을 다 보아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읽어내 주길 바라는 거지요.
다시 저의 과거로 따라와 주세요. 참 허망하더군요. 한달 반 동안 수업도 빼먹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포속에서 연습을 했는데 딱 30분만에 끝나고 박수를 받자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연단에 앉아 계시던 이사장님과 넥타이 두른 손님들의 30분 눈요기를 위해 천명의 아이들이 한달 반을 바친 꼴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몸뚱아리를 탓하며 말이지요. 그때 아이들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흘러나왔는지는 제가 여기에 적지 않아도 되리라 여깁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북한 예술가들의 집단무용과 집단체조를 보면서 감동했다"고 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식 안무를 담당했던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은 이야기합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도 국 감독의 전율을 위해 아이들은 피눈물을 쏟아야 했을 것입니다. 수령주의에 완전히 의식이 마비된 기계들이 아니라는 가정에서 말입니다.
아리랑을 관람하시는 님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공부하지도 못하고 달러벌이에 동원되어 국감독의 찬탄을 자아내기 위한 북녘 아이들을 잊지 마세요. 관람료 3백달러에 화해나 통일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고, 아리랑에 흐르는 아이들의 눈물을 제대로 읽어낸 거기에 고상한 단어들이 응결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하세요.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 귀를 기울여 보세요. (출처:www.new-right.com)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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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두고 잊지 못할 선생님 몇 분이 계십니다. 따뜻한 미소와 엄한 격려로 나의 의지를 곧추 세워주셨던 선생님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학생운동 시절 3년 2개월 여의 긴 수배 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찾아뵌 선생님. 선생님은 그때 칭찬도 질타도 없이 그저 많이 먹으라시며 꽃등심을 제 수저에 올려 주셨습니다. 교사의 월급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이임에도 입안에서 살살 녹아나는 꽃등심의 맛에 취해 버리고 말았던 기억. 선생님을 제 가슴에 품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문득 문득 궁금해지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마 중학교 2학년 가을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는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하나의 학원이 재단으로 있었습니다. 2년에 한번씩 학원 축제를 했던 것 같았는데 제가 2학년 가을에 그 축제가 준비되었습니다. 중학생 천여명은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집단체조에 매달렸습니다. 이 집단 기계체조는 체육선생님이 지도를 하셨었는데, 그는 우리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투포환 선수 출신의 체육선생님은 키도 컸을 뿐 아니라 몸도 좋으신 까닭에 우리 같은 병아리들에 비하면 거의 코끼리 수준이었습니다. 이 분은 언제나 가슴까지 올라오는 곤봉을 휴대하고 다니셨는데, 연습때마다 우리는 이 분의 입과 곤봉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체육시간만 연습에 집중하다가 그 다음 얼마동안은 수업 종료 이후 2시간 이상을 여기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축제가 가까워지자 아예 수업시간의 일부까지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든, 두려워하는 친구들이든 모두 하나같이 왜 그렇게 수업시간을 좋아했던지... 아프지도 않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평상시에는 잘 끼워주지도 않던 허약한 친구에게 보내는 부러움의 눈빛이란...
연습의 말미가 될수록 공포분위기는 한층 더 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점차 숙달되어갔기 때문에 실수는 흰옷에 튄 먹물자욱처럼 선연하고 드러났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먹물자욱들은 가차없이 ‘읍참마속’의 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한번 마속이 되었습니다.
실수로 연단에 올라가 풀스윙에 희생되는 가여운 짐승들의 신음소리에 움찔거리노라면 정말 아무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필 친구들이 한 명도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혼자만 틀리고 말았습니다. 모두 오른쪽으로 손을 활처럼 만들어 내미는데 혼자서 왼쪽으로 삐진 후 선생님의 눈과 마주쳤을 때의 절망감이란...
대북지원활동을 해온 22개 민간단체 인사들이 26일부터 다음달 15일 사이 약 9,200여명이 방북한다고 합니다. 가서 아리랑공연도 볼 예정이라고 하네요. 10만명이 만들어내는 대서사시라는 아리랑! 최고석 300달러가 아깝지 않을 거라는 아리랑! 1만명이 100달러라고 가정하면 백만달러가 김정일의 호주머니로 또 들어가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요. 대통령이 나서서 몇 억달러씩 챙겨주는데 그깟 백만달러야 김정일의 입장에서 코묻은 돈에 불과하겠지요. 그럴듯한 말로하면 조족지혈이 되겠네요.
그러니 그깟, 3백달러 가지고 제가 문제삼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작 아리랑을 관람하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아리랑을 준비했을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만이라도 헤아려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북녘의 아이들이 나의 중학교 시절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준비했던 집단체조보다 양과 질에서 비교도 안되는 규모의 아리랑을 준비할 때 한 아이 한 아이, 북녘의 아이들이 쏟아냈을 땀방울과 희생들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지요. 준비부터 본격적인 공연까지 하려면 10시간 이상 자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데 그 자리에서 대소변을 다 보아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읽어내 주길 바라는 거지요.
다시 저의 과거로 따라와 주세요. 참 허망하더군요. 한달 반 동안 수업도 빼먹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포속에서 연습을 했는데 딱 30분만에 끝나고 박수를 받자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연단에 앉아 계시던 이사장님과 넥타이 두른 손님들의 30분 눈요기를 위해 천명의 아이들이 한달 반을 바친 꼴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몸뚱아리를 탓하며 말이지요. 그때 아이들의 입에서 어떤 말들이 흘러나왔는지는 제가 여기에 적지 않아도 되리라 여깁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북한 예술가들의 집단무용과 집단체조를 보면서 감동했다"고 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식 안무를 담당했던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은 이야기합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도 국 감독의 전율을 위해 아이들은 피눈물을 쏟아야 했을 것입니다. 수령주의에 완전히 의식이 마비된 기계들이 아니라는 가정에서 말입니다.
아리랑을 관람하시는 님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공부하지도 못하고 달러벌이에 동원되어 국감독의 찬탄을 자아내기 위한 북녘 아이들을 잊지 마세요. 관람료 3백달러에 화해나 통일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고, 아리랑에 흐르는 아이들의 눈물을 제대로 읽어낸 거기에 고상한 단어들이 응결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하세요.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 귀를 기울여 보세요. (출처:www.new-right.com)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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