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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사랑한 푸른 눈의 이방인

Written by. 김태선   입력 : 2005-10-29 오전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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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향군인회에서 근무하다보니 옛 전우를 찾아달라는 전화를 자주 받게 된다. 찾은 분이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줄 때는 내 일인양 안타까웠고 다행히 찾아 줄 수 있을 땐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1년 전 뜻 깊은 인연을 찾아준 기억이 있다. 내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너무나도 사랑한 푸른 눈의 이방인, 미국 할머니..

 작년 여름, 재미교포 이응철씨로부터 돌아가신 미국인 할머니의 유언으로 한국군 장교를 찾는다며 전화가 왔다. 2년 전부터 육군본부로 국방부로 확인을 했지만 결국 찾지못해 마지막으로 재향군인회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사실 군부대에도 기록이 없는 것을 재향군인회가 나서서 찾기란 쉬운 일도 아니고, 내 자신도 본연의 업무로 바쁜데 귀찮다는 생각과 함께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보니 꼭 찾아줘야 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사연은 미국 버지니아주 소재 해군부대에서 근무하는 딸(토니 매그로)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979년도에 자신의 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한국군 장교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한국을 고향 이상으로 사랑했고 한국인에게 가족 이상의 정을 보여준 어머니의 뜻을 기려 친분을 나눴던 한국군 장교들을 찾아 한국에 어머니의 유골을 뿌려주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었다.

 토니씨의 어머니(코빈 매그로)는 지난 1960년대 초 한국군 장교들이 군사교육을 받던 시카고 소재 모 군수기지 인근에 살면서 한국군 장교들과 첫 인연을 맺었는데, 큰 딸이 한국군 장교와 만나면서 많은 한국군 장교들이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왔고 "한국인의 집"이란 한국어 문패까지 달았다는 것이다. 코빈 매그로씨는 당시에 차가 없던 한국군 장교들에게 차편도 제공하고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한국군 장교들을 돌봐주었다. 이에 한국군 장교들은 답례로 매그로씨 가족에게 밥과 김치 등 한국음식을 만들어주고 아리랑, 도라지 등 한국노래와 한국말을 가르쳐 주며 가족처럼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그 후 매그로씨 가족의 친절에 감동한 한국군 박모, 권모 중령은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했다고 한다.

 딸 토니씨도 어린 시절 한국군 장교들과 가족처럼 지낸 시간들을 기억하는 데, 그 후 연락을 계속 주고받다가 지난 1994년 경부터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어머니가 비록 한국에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한국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고 회상하는 딸 토니씨..  알츠 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유언을 남기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편히 쉴 곳은 한국이라 생각해 화장한 어머니의 유골을 간직하고 한국군 장교들을 찾을 계획이라는 것이다. 토니씨는 "어머니가 생전에도 항상 미국인은 한국인과 한국문화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며 특히 "한국인의 친절한 마음씨를 배우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했다.

 이같은 사연을 듣고보니 내가 나서서 찾아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25년 전의 한국군 장교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급과 이름을 근거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장교를 육군본부에 문의하였으나 당시 기록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이 군수분야의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병과를 추적했다. 병기나 수송, 병참병과 출신으로 제한했고 수십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 두 명의 한국군 장교를 찾을 수 있었다. 한 분은 지금 미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딸 토니 씨를 기억하며 기뻐했다. 어머니 코빈 매그로씨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전하니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나 내년쯤 매그로씨의 유골을 가져올 때 꼭 참석하겠다고 딸 토니씨와 전화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전화통 붙들고 씨름하며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작년에 나는 토니씨의 부탁을 받은 재미교포 이응철씨로부터 감사패를 전달 받았다. 토니씨의 감사의 뜻과 함께 한미양국의 부대 마크가 새겨진 패였다. 지금도 집안 장식장에 고이 모셔두고 내 아이들에게 이 엄마가 참으로 보람된 일을 하였노라 얘기해 준다. 기회가 되면 나도 매그로 할머니의 유골이 이 땅에 뿌려지는 날,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어떻게 그렇게 끔찍히도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할 수 있었느냐고?"

 최근들어 '맥아더 동상 철거' '미군기지이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50년 전통의  한미동맹관계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즈음에 내 조국 대한민국을 너무나 사랑했던 푸른 눈의 미국인 할머니가 더욱 생각나는 건 왜일까? (konas)

 김태선(재향군인회 참전부 근무, 예비역 여군대위)

 **이 글은 <코나스> '사람사는 이야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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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쫀득이   

    정말 가슴따뜻해 지는 이야기 입니다. 재향군인회 참 좋은일 했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1-10 오후 2:08:53
    찬성1반대0
  • 정병주    수정

    작은 일이지만 필자가 한 일이 외무장관이 한 일보다 값진 것 같습니다. 민간의 외교와 유대관계가 정부간의 벽을 허무는 일은 흔이 있긴 하지만 필자의 이번 일은 한미관계가 악화되어 가는 시점 이여서 더욱 값진 것 같소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0-30 오후 5:58:17
    찬성0반대0
  • Ms.장    수정

    반미정권의 '자주'외교 보다 한 개인의 민간외교가 한미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있네.. 한미공조가 절실한 이 시기에 필자의 노력이 한없이 돋보입니다. 재향군인회도 참 좋은 일 했네요.</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0-29 오후 2:32:24
    찬성0반대0
  • 어쭈구리    수정

    재향군인회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ㅋㅋ</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5-10-29 오후 12:51:37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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