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 다시 가봤더니
신병훈련소는 3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연병장으로 가는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입소하는 장정과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까지 훈련소 군인들은 친절하게 맞이해줬다.
큰 아이를 배웅했을 때는 처음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둘째 아이를 훈련소에 들여보내는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정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만 작별을 앞둔 그 많은 배웅객의 표정은 하나같이 착잡해보였다. 군악대의 장중하고 때로는 경쾌한 환영 연주도 변함없이 애잔하게 들렸다.
입소식 안내방송에 따라 장정들이 정렬을 시작하면서 잠시 들뜬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았다. 눈에 이슬이 맺힌 장정들은 가족 친지들에게 애써 한번씩 웃어보인 뒤 바삐 본부석을 향해 대오를 지어 섰다. 시키지 않았지만 그 사이 장정들은 이미 바짝 긴장해 있었다.
입소식 후 곧바로 장정들은 앞사람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몇 줄씩 길게 늘어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막사 뒤로 사라졌다. 배웅나온 사람들의 눈시울이 일시에 붉어졌다. 표정없이 굳게 입을 다문 사람,연병장 저쪽의 뿌연 흙먼지를 응시하는 사람,통곡하는 어머니….
장정들은 그날 밤을 태어나고서 가장 길게 보냈을 것이다. 이제 한동안 그 어머니들은 자식 생각에 따뜻한 잠자리가 되레 불편하고,좋은 음식을 즐겁게 먹지 못할 것이다. 입혔던 옷가지가 배달돼 오는 날에는 다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고.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성경 이사야 2:4)”
장차 올 완전한 평화는 아쉽게도 아직 세상에 도래하지 않았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입대하는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모든 국민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있고(헌법 39조),모든 남자는 헌법과 병역법(3조)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좋든 싫든 그들은 군에를 간다. 지금은 남북 화해 협력시대라지만 남북한 간의 양보할 수 없는 군사대치는 불변이다. 한편에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해소를 자찬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 징후는 여전히 없고,북한 핵문제로 긴장이 더 높아졌다는 진단도 많다.
최근 보도된 국가정보원의 ‘현역병사 안보관’ 조사결과는 이 시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부 내용을 옮기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별로 없다(50.5%)’거나 ‘전혀 없다(9.5%)’는 응답이 60%였다. 북한에 대해서는 63.2%가 ‘경계심은 유지하되 동반자적 관계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으며 ‘군대만큼은 여전히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답변은 36.8%에 그쳤다.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 길을 터주라는 요구도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집총을 거부하는 특정 종파의 교인을 중심으로 입영에 불응하다 매년 수백명씩 구속되는 것을 해결하라는 주장이 먹혀드는 중이다. 국방부 장관까지 대체복무제를 ‘심도 있게’ 연구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새로 나온 국가인권위의 인권정책기본계획 중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권고는 군불을 더 지핀 격이다. 국가기관들이 앞다퉈 병사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이런 식으로 상처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목숨걸고 총칼로 지키는 평화 아래서 양심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은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다는 것은 국군 모독이다.
미국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이렇게 썼다. “기원전 1500년부터 서기 1860년까지 영구적 평화보장을 전제로 약 8000건의 평화조약이 체결됐지만 그 효력이 지속된 기간은 평균 2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전쟁발발 책임에 관해 그는 “정치인들이 장본인이며,전쟁은 이들 정치인이 악의보다는 문제를 서투르게 처리하는 데서 빚어진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한석동(국민일보 논설실장,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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