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의미와 과제
Written by. 이상현
입력 : 2006-02-07 오후 1:28:43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한국과 미국은 지난 1월 19일 워싱턴에서 첫 번째 ‘동맹파트너십을 위한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회의를 가졌다. 양국간 전략대화는 작년 11월 APEC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경주선언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개최된 고위급 전략대화이다. 경주선언에서 양 정상은 한·미 관계를 포괄적·역동적·호혜적인 동맹관계로 지속 발전시키기로 합의하고 한·미 동맹이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의 공동 가치 증진에 유용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한 한·미 정상은 동맹 및 전략 문제를 다룰 양국 외교장관 사이의 ‘장관급 전략대화’를 운영키로 했다. 한·미간에는 양국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연례안보협의회(SCM)를 매년 개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양국 외무장관이 참석하는 고위전략대화는 없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전략대화를 이미 운영 중이다.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경주선언의 합의가 구체화된 것이다. 이번 전략대화의 중요한 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최근 양국관계에서 논란이 되어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대해 개괄적인 합의에 도달한 점이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을 동북아시아 등의 분쟁지역으로 이동,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따라 주한미군은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이동과 배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라이스 장관은 그러나 한국 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이번 전략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 틀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 두 장관은 북한에 대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양국은 6자회담과 관련한 향후 논의는 북한이 안전보장 등을 받는 대가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자회담의 재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고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 전략대화에서 양국은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한의 달러화 위조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위폐문제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미국측 입장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셋째, 양국은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양국은 동북아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 지역 다자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을 모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동북아의 안보상황은 각국이 안보태세를 강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역내 안보불안과 갈등은 오히려 증가하는 안보딜레마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에서 OSCE와 같은 다자안보협력체가 갈등의 선순환구조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동북아 안보구도의 예측성을 강화하고 기존 양자관계 중심의 안보질서를 보완하기 위해 다자안보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환경조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의미
이번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점이다.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파견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서 필수적인 요구사항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테러·반확산을 전략 기조로 채택하고, 그에 따라 미군의 태세를 붙박이형 군대에서 신속기동대응군 형태로 바꾸는 군 변환(Transformation)을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의 변환전략은 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군사태세의 변환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태세의 변환이다. 미국의 군사력 변환은 동맹 네트워크, 군사역량, 그리고 글로벌 방위태세 조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GPR로도 알려진 글로벌 방위태세 재편은 미군의 해외배치를 새로운 안보환경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냉전기 동안 미국은 적과 대치한 최전선에 요새화된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 적을 억지하고 동맹국 방어의 의지를 과시하며 적대행위 발생시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군은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군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신속전개가 가능해야 하고 숫자보다는 능력에 기반한 우위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군은 해외의 대규모 영구기지에 덜 의존하는 대신 소규모 시설을 순환하는 배치방식을 택하였다. 새로운 글로벌 방위태세의 핵심은 반테러 전쟁과 미래의 위협에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미군을 필요한 곳에, 그리고 미군의 주둔에 우호적인 곳에 주둔시킨다는 것이다.
군사차원의 변환과 더불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최근 조지타운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지향할 21세기 외교로 변환외교 (Transformational diplomacy)를 강조하였다. 변환외교란 외교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취지로 미 국무부가 추진해온 공공외교(public diplomacy)가 더욱 확대·발전된 개념이다. 라이스 장관은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위협은 국가들 사이에서보다는 국가들 내부로부터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즉, 정권 자체의 근본 성격이 국제관계에서 힘의 분배보다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미국의 안보이익과 타국의 안보이익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미국과 타국의 이익을 포괄하는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변환외교의 목표는 될 수록 많은 국가들과 파트너십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의 확장을 도모하는 그물망 지식외교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교 분야에서도 군 변환에 필적하는 외교태세의 변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전 세계에 배치돼 있는 외교 인력을 21세기적 수요에 따라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구 8,000만 명의 독일과 10억 명이 넘는 인도에 같은 수의 외교관이 배치돼 있는 유럽 우선주의를 과감하게 재조정하고, 동시에 외교관들을 각국의 수도에 중점적으로 배치하는 대신 여러 국가를 동시에 관장하는 지역 공공외교센터를 본격적으로 확충하며, 군사와 외교의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의 도움을 얻어 외교관 일인 포스트와 가상 포스트(Virtual Presence Post)를 많이 만들어 세계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미국식 자유를 전파하기 위한 현장외교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부시 1기 행정부의 반테러·반확산 중점이 2기에 들어 여기에 민주주의·인권 확산이 추가되면서, 이를 군 변환과 변환외교로 뒷받침한다는 것이 현 부시 행정부의 큰 구상인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변환전략에 따른 핵심적 요구사항이다. 그것은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양국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의 특수성을 감안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논란의 초점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로 초래될지도 모를 주변국들과의 긴장관계와 안보 공백 문제이다. 특히 미국의 안보전략이 중국을 포위하는 것으로 인식해온 중국의 반응이 우려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그동안 우리가 원하지 않는 동북아의 분쟁 확대 가능성 때문에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즉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간 분쟁에 투입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에 비추어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합의한 것은 동맹 재조정 논의의 큰 걸림돌 중 하나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최악의 경우 우리에게 위험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동맹관계를 해치면서까지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할 이유는 크지 않다. 한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연루(連累)의 위험은 동맹관계의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동맹의 이익이 있으면 대가도 따르는 법이다. 한미동맹 강화에는 분명히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맹 완화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이 주변 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전략적 유연성을 주한미군의 유입(flow-in)은 되지만 유출(flow-out)은 안 된다는 입장에서만 바라본 결과이다.
동맹은 두 나라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의지적 결정의 산물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협상의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협상을 통해 쟁취할 것은 쟁취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글로벌 방위태세에서 핵심적 사안이다. 그것은 우리가 거부한다고 해서 미국이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한 부분은 과감히 양보하고 우리가 반드시 차지해야 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협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동맹의 의사소통 구조가 아직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맹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동맹의 건전성과 신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맹관계에서 실무차원의 조율과 조정이 잘 되고 있다는 것만이 한미동맹의 건강을 측정하는 지표는 아니다. 실상 실무차원의 조정은 동맹의 우호 정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처리해야 하는 사안들이다. 실무적 조율이 잘 되었다고 해서 동맹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안이한 판단이다. 한·미 양국이 동맹의 목표와 역할, 근본적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할 때 동맹의 토대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앞으로 전략적 유연성의 원칙과 절차를 확립하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주한미군을 어떤 상황과 기준, 판단에 따라 동원할 것인지 수용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도출해야 한다. 이번 전략대화의 후속조치로 금년 4월에는 서울에서 차관급 전략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이 모임에서 양국의 의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금년 하반기에 2차 장관급 전략대화를 열 계획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차출에 따른 안보 공백과 국민 불안 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출처: 정세와 정책 2월호/ 세종연구소)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shlee@sejong.org)
한국과 미국은 지난 1월 19일 워싱턴에서 첫 번째 ‘동맹파트너십을 위한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회의를 가졌다. 양국간 전략대화는 작년 11월 APEC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경주선언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개최된 고위급 전략대화이다. 경주선언에서 양 정상은 한·미 관계를 포괄적·역동적·호혜적인 동맹관계로 지속 발전시키기로 합의하고 한·미 동맹이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의 공동 가치 증진에 유용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한 한·미 정상은 동맹 및 전략 문제를 다룰 양국 외교장관 사이의 ‘장관급 전략대화’를 운영키로 했다. 한·미간에는 양국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연례안보협의회(SCM)를 매년 개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양국 외무장관이 참석하는 고위전략대화는 없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전략대화를 이미 운영 중이다.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경주선언의 합의가 구체화된 것이다. 이번 전략대화의 중요한 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최근 양국관계에서 논란이 되어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대해 개괄적인 합의에 도달한 점이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을 동북아시아 등의 분쟁지역으로 이동,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에따라 주한미군은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이동과 배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라이스 장관은 그러나 한국 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이번 전략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 틀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 두 장관은 북한에 대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양국은 6자회담과 관련한 향후 논의는 북한이 안전보장 등을 받는 대가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자회담의 재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고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 전략대화에서 양국은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한의 달러화 위조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위폐문제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미국측 입장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셋째, 양국은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양국은 동북아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 지역 다자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을 모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동북아의 안보상황은 각국이 안보태세를 강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역내 안보불안과 갈등은 오히려 증가하는 안보딜레마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에서 OSCE와 같은 다자안보협력체가 갈등의 선순환구조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동북아 안보구도의 예측성을 강화하고 기존 양자관계 중심의 안보질서를 보완하기 위해 다자안보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환경조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의미
이번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점이다.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파견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서 필수적인 요구사항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테러·반확산을 전략 기조로 채택하고, 그에 따라 미군의 태세를 붙박이형 군대에서 신속기동대응군 형태로 바꾸는 군 변환(Transformation)을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의 변환전략은 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군사태세의 변환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태세의 변환이다. 미국의 군사력 변환은 동맹 네트워크, 군사역량, 그리고 글로벌 방위태세 조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GPR로도 알려진 글로벌 방위태세 재편은 미군의 해외배치를 새로운 안보환경의 실정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냉전기 동안 미국은 적과 대치한 최전선에 요새화된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 적을 억지하고 동맹국 방어의 의지를 과시하며 적대행위 발생시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군은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군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신속전개가 가능해야 하고 숫자보다는 능력에 기반한 우위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군은 해외의 대규모 영구기지에 덜 의존하는 대신 소규모 시설을 순환하는 배치방식을 택하였다. 새로운 글로벌 방위태세의 핵심은 반테러 전쟁과 미래의 위협에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미군을 필요한 곳에, 그리고 미군의 주둔에 우호적인 곳에 주둔시킨다는 것이다.
군사차원의 변환과 더불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최근 조지타운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지향할 21세기 외교로 변환외교 (Transformational diplomacy)를 강조하였다. 변환외교란 외교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취지로 미 국무부가 추진해온 공공외교(public diplomacy)가 더욱 확대·발전된 개념이다. 라이스 장관은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위협은 국가들 사이에서보다는 국가들 내부로부터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즉, 정권 자체의 근본 성격이 국제관계에서 힘의 분배보다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미국의 안보이익과 타국의 안보이익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미국과 타국의 이익을 포괄하는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변환외교의 목표는 될 수록 많은 국가들과 파트너십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의 확장을 도모하는 그물망 지식외교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교 분야에서도 군 변환에 필적하는 외교태세의 변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전 세계에 배치돼 있는 외교 인력을 21세기적 수요에 따라 재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구 8,000만 명의 독일과 10억 명이 넘는 인도에 같은 수의 외교관이 배치돼 있는 유럽 우선주의를 과감하게 재조정하고, 동시에 외교관들을 각국의 수도에 중점적으로 배치하는 대신 여러 국가를 동시에 관장하는 지역 공공외교센터를 본격적으로 확충하며, 군사와 외교의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의 도움을 얻어 외교관 일인 포스트와 가상 포스트(Virtual Presence Post)를 많이 만들어 세계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미국식 자유를 전파하기 위한 현장외교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부시 1기 행정부의 반테러·반확산 중점이 2기에 들어 여기에 민주주의·인권 확산이 추가되면서, 이를 군 변환과 변환외교로 뒷받침한다는 것이 현 부시 행정부의 큰 구상인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변환전략에 따른 핵심적 요구사항이다. 그것은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양국이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의 특수성을 감안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논란의 초점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로 초래될지도 모를 주변국들과의 긴장관계와 안보 공백 문제이다. 특히 미국의 안보전략이 중국을 포위하는 것으로 인식해온 중국의 반응이 우려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그동안 우리가 원하지 않는 동북아의 분쟁 확대 가능성 때문에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즉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간 분쟁에 투입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에 비추어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합의한 것은 동맹 재조정 논의의 큰 걸림돌 중 하나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최악의 경우 우리에게 위험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동맹관계를 해치면서까지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할 이유는 크지 않다. 한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연루(連累)의 위험은 동맹관계의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동맹의 이익이 있으면 대가도 따르는 법이다. 한미동맹 강화에는 분명히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맹 완화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이 주변 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전략적 유연성을 주한미군의 유입(flow-in)은 되지만 유출(flow-out)은 안 된다는 입장에서만 바라본 결과이다.
동맹은 두 나라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의지적 결정의 산물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협상의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협상을 통해 쟁취할 것은 쟁취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글로벌 방위태세에서 핵심적 사안이다. 그것은 우리가 거부한다고 해서 미국이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한 부분은 과감히 양보하고 우리가 반드시 차지해야 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협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동맹의 의사소통 구조가 아직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맹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동맹의 건전성과 신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맹관계에서 실무차원의 조율과 조정이 잘 되고 있다는 것만이 한미동맹의 건강을 측정하는 지표는 아니다. 실상 실무차원의 조정은 동맹의 우호 정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처리해야 하는 사안들이다. 실무적 조율이 잘 되었다고 해서 동맹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은 안이한 판단이다. 한·미 양국이 동맹의 목표와 역할, 근본적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할 때 동맹의 토대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앞으로 전략적 유연성의 원칙과 절차를 확립하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주한미군을 어떤 상황과 기준, 판단에 따라 동원할 것인지 수용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도출해야 한다. 이번 전략대화의 후속조치로 금년 4월에는 서울에서 차관급 전략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이 모임에서 양국의 의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금년 하반기에 2차 장관급 전략대화를 열 계획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차출에 따른 안보 공백과 국민 불안 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출처: 정세와 정책 2월호/ 세종연구소)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shlee@sej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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