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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대한민국 진단서②

월남패망과 한국의 유사증상 비교

Written by. 이대용   입력 : 2006-02-10 오전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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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서 • 표는 월남의 상황을, ◎표는 오늘의 한국 상황을 기술한 것임.

 [증언] 월남패망과 유사증상 비교② - 前 주월공사 이대용

 • 체제의 우월성에 따른 대북 자신감

 그래서 월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경제력 우위를 바탕으로, 공산 측 지배를 월남 내에서 자연스럽게 소멸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휴전 무렵 월맹은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매년 80만∼100만t의 식량 부족,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맹은 줄기찬 대남공세를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 북한이 년 평균 30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들어 북한의 전쟁수행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전쟁 얘기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북한수령집단은 6.15공동선언 이후 한국사회의 분열과 붕괴를 위한 공작지침을 지하세력에 하달한 바 있음.

 • 요로에 프락치 침투, 정보 파악

 휴전협정 이전부터 숱한 공산당 프락치들이 월남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호치민이 1930년 2월 창당한 베트남 공산당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의장인 웬후토가 1962년 1월에 창당한 인민혁명당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

 그래서 월남 패망 당시 월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월남 사회의 저층(底層)에서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1969년 6월 6일 베트남 임시혁명정부로 개편될 당시 이 정부의 법무장관이었던 쭝뉴탄의 증언에 의하면, 캄보디아 국경선 근처 빈룽성 내의 지하 땅굴에 있던 혁명정부 청사에는 월남 정부의 각 부터와 월남군 총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회의 내용이 단 하루 후면 상세하게 보고 될 정도로 티우 정권의 핵심에 공산 프락치가 침투해 있었다고 한다.

 1967년 대선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쥬와,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를 위시한 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모두 공산 프락치였음이 알려진 것은 월남 패망 후의 일이었다.

 ◎ 과거정권 때에도 청와대 소식이 북한 당국에 보고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지금은 남한 사정을 꿰뚫고 있을 것임.

 • 반면 월남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질 때마다 대공(對共) 전문가들이 쫓겨나는 바람에, 월남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은 형해(形骸)만 남아 버렸다. 그들은 대(對)월맹 정보 수집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월남 내부에 침투한 공산 프락치 검거에조차도 무기력했다. 한 나라를 망하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보기관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 지금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대공기관이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평지풍파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간첩 하나 못 잡는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하였음.

 •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사회

 휴전협정 이후 월남은 월맹보다 경제력은 무론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그래서 월남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월맹군이 도발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할 것이고 이후 대(對_월맹 경제원조도 중단하면, (당시)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월남군 기동력과 화력으로 월맹군의 공세에 당연히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오랜 전쟁 후에 온 휴전 체제에서 평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혹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 믿음이 국방을 소홀히 하도록 하였고, 내부적으로도 극심한 정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 북한을 얕보는 사람, 남침 우려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안보라는 단어조차 사라질 지경에 놓여있고, 남과 북이 긴장관계 속에서 지내는 것을 원치 않는 사회심리가 보편화되고 있는 등 한국사회도 패망 직전의 월남과 유사함.

 • 부정부패로 공산당 프락치 활동 공간 넓어져

 1975년 9월에는 월남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과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했다.

 고질적인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권의 혼란과 맞물리면서 마치 전염병처럼 전(全) 국토를 휩쓸었다.

 정부의 부정부패는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계층 간 갈등이 조장됨으로써 공산 프락치들의 활동 공간은 점점 넓어져 갔다. 결국 이 선거가 최후의 자유선거가 되고 말았다.

 ◎ 김대중과 김정일이 서명한 6.15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에서 작성, 한국 내 지하세력에게 지령한 내용 중에는 부정부패를 공격하여 대중성을 확보하라는 대목이 있음. 고위층 인사들마다 땅 투기 의혹이 있는 등 대한민국은 아주 기분 나쁜 나라임.

 • 정규군 58만 명 중 10만 명이 위장휴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내(軍內) 부정부패였다. 당시 월남 정규군은 58만 명이었는데, 이 중 10만 명이 뇌물을 주고 비공식 장기휴가를 받아 대학에 다니거나 취업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장군들이 운영하는 사(私)기업에 파견되어 무보수로 일하는 사례마저 있었다. 이처럼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군인들을 가리켜 당시 월남에서는 「유령 군인」, 「꽃 군인」이라 불렀다.

 비록 독재로 기울기는 했지만 대단히 청렴결백했던 고 딘 디엠 대통령 시절, 월남군은 용맹하게 공산군과 맞서 싸워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그 덕택에 휴전 당시 월남은 전 인구의 90%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지도층의 부패였다. 티우 대통령의 사위가 군에 입대했는데, 그는 이름만 군적(軍籍)에 둔 채 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대통령 사위가 그럴 정도였으니, 가른 고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도층 아들들은 입대 영장이 나오면 일단 입대한 다음 뇌물을 써서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월남 지배층은 사리사욕과 부정축재,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천민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였다.

 반면 「국가에 대한 의무」라는 말에는 코웃음을 치며 등한시함으로써 체제파괴 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평화무드로 공산군에 대한 경계심도 사라졌다. 이것이 월등히 높은 경제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월남 군대가, 식량 부족으로 고민하던 월맹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이다.

 ◎ 월남 군대처럼 부패하지는 않았다 해도 오늘날 사회 지도층 인사와 그 아들들의 병역기피 사례가 언론에 공개되는 모습은 월남군부와 같은 사기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더욱이 군 입대 거부운동, 교전 장병의 사망에 무심한 사회분위기, 친북이적단체의 공공연한 활동 등은 정신전력의 약화와 젊은이들의 자기희생정신의 쇠퇴를 초래하고 있음.

 •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를 좌익이 장악

 한편 이 무렵 월남에서는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 불교계의 뚝드리꽝 스님 등이 모여서 「구국(救國) 평화 회복 및 반(反)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사회단체 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일종의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반부패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순수한 반부패 운동 조직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반체제 세력으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점이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뒤섞여 반전운동, 인도주의 운동, 문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 동원하여 티우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975년의 월남은 월맹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공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 좌익 단체의 선전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1974년 10월, 월남에서는 유전(油田)이 발견되어 온 국민이 흥분에 휩싸였다. 나라 전체가 평화 무드에 젖어 있던 상태에서 석유까지 발견되자 사람들은 더욱 자유분방함과 안일주의에 기울어 갔다.

 ◎ 한국사회의 시민운동권이 북한비판을 전혀 하지 않고, 반미반전 촛불시위와 과격시위 조종, 앤티 조선운동 등을 하고 있으며, 체제수호와는 무관한 대북포용론을 기저로 하고 있음. (계속) (konas)

  - ①번기사 보기 -

 이대용 (前 駐越 公使)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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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롱이    수정

    세상이 변해도 잘못 변해서 '안보'를 강조하면 무조건 수구집단으로 매도해 버린다. 이런 현상에 오래 잠겨 있으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 나라가 망한 후에 후회하면 늦다. 정신차리자. 안보에는 보수와 진보도 없고 좌파와 우파도 없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2-10 오후 4:02:42
    찬성0반대0
  • 와룡    수정

    진정 우리사회는 자유민주 애국시민은 없고 월남패망 직전의 반미주 ,반정부세력만 존재하고 준동하는 것일까?, 심히 우려가된다.대책은 없을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2-10 오후 3:46:22
    찬성0반대0
  • 걱정이요    수정

    공산화된 월남을 부러워하는 게 노 정권의 속셈 아닐까? 자유시민들이 봉기를 해야된다구! 정부를 믿을수가 없으니 말이요.. 걱정이외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2-10 오전 1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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