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테러범 한국행 원한다
국내송환 촉구 청원서 국회에 접수
Written by. 박창규
입력 : 2006-02-21 오전 10:52:23
청원서는 이어 “북한 공작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민철은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복역하며, 한국에 가서 참회하며 살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면서 “미얀마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석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만큼 유일한 생존자 테러범을 우리가 송환해 관련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 온 국민들에게 알리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민철 등 북한 공작원 3명은 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를 공식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때 원격조정장치로 폭탄을 터트려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17명을 숨지게 했다. 공작원 3명 중 한 명은 도주하다가 사살되고 조장 격인 진모와 강민철은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이 중 진모는 2년 뒤인 85년 사형됐다. 강민철은 변호인 탄원이 받아들여져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88년까지는 독방에 있다가 모범적 수형 생활로 이후 ‘하우스’라 불리는 독채 독방으로 옮겨져 ‘6호’ 방에서 지내고 있다. 강은 90년대 중반까지 테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강은 면회 온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상부지시로 폭파했지만 결과적으로 17명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마음 아프다”며 “여기서 이대로 그냥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은 2003년부터 “북조선으로부터 속았으며 석방된다면 제3국이 아닌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형법에 따르면 무기수가 최소 13년 6개월을 복역하면 행형 실적에 따라 언제든지 석방될 수 있다고 한다. 강의 한국행 의사에 대해 당시 정부 관계자는 “강이 한국행을 원한다 해도 나이가 많고 정보가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주변에선 “정부가 주저하는 실제 이유는 강을 받아들일 경우 김정일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보위에서 “강민철이 우리나라로 송환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차원의 송환대책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현지 상황을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그의 한국행 의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또 그가 한국에 온다면 당시 사건의 진상과 배후가 낱낱이 밝혀져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konas)
1983년 미얀마 아웅산묘지 폭탄테러 사건의 북한 공작원 중 유일한 생존범의 국내 송환을 촉구하는 청원서가 20일 국회에 접수됐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소개로 양영태 씨 등 70여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된 청원서는 “북한은 1983년 미얀마를 방문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수행원을 암살하기 위해 유례없이 처참한 폭탄테러를 자행했다”면서 “이러한 반인간적 잔혹행위에 대해, 북한은 여태까지 사과는커녕 자신들의 범행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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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서는 이어 “북한 공작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민철은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복역하며, 한국에 가서 참회하며 살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면서 “미얀마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석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만큼 유일한 생존자 테러범을 우리가 송환해 관련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 온 국민들에게 알리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민철 등 북한 공작원 3명은 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를 공식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묘소를 참배할 때 원격조정장치로 폭탄을 터트려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17명을 숨지게 했다. 공작원 3명 중 한 명은 도주하다가 사살되고 조장 격인 진모와 강민철은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이 중 진모는 2년 뒤인 85년 사형됐다. 강민철은 변호인 탄원이 받아들여져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88년까지는 독방에 있다가 모범적 수형 생활로 이후 ‘하우스’라 불리는 독채 독방으로 옮겨져 ‘6호’ 방에서 지내고 있다. 강은 90년대 중반까지 테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강은 면회 온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상부지시로 폭파했지만 결과적으로 17명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마음 아프다”며 “여기서 이대로 그냥 죽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은 2003년부터 “북조선으로부터 속았으며 석방된다면 제3국이 아닌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형법에 따르면 무기수가 최소 13년 6개월을 복역하면 행형 실적에 따라 언제든지 석방될 수 있다고 한다. 강의 한국행 의사에 대해 당시 정부 관계자는 “강이 한국행을 원한다 해도 나이가 많고 정보가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주변에선 “정부가 주저하는 실제 이유는 강을 받아들일 경우 김정일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보위에서 “강민철이 우리나라로 송환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차원의 송환대책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현지 상황을 파악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그의 한국행 의사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또 그가 한국에 온다면 당시 사건의 진상과 배후가 낱낱이 밝혀져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konas)
박창규 기자 keepkore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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