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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전투② - 피의 증언들

Written by. 고성달   입력 : 2006-03-04 오후 1: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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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예년평균기온보다 좀 더 떨어져도 이렇게 추운데 55년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선 어떤추위였을까요. 밤에는 영하 35도까지 떨어지고 낮이라고 해도 영하 20도 였습니다. 게다가 눈보라 까지 몰아쳤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 자체가 바로 지옥이었일 것입니다. 게다가 사방의 산봉우리에선 끊임없이 중공군이 공격해 오는 상황이라면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악조건에서 미육군 7사단 및 7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카투사)이 중공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미 해병1사단은 그야말로 영웅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투혼을 발휘하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군사격언에 가장 훌륭한 군대는 철수나 후퇴할 때 알아본다고 합니다. 철수할 때도 지휘체계 그리고 진열을 흐트러 뜨리지않는 것입니다. 그런 부대가 미해병대였습니다.

 ▲ 전사한 전우까지 함께 퇴각하는 미해병 1사단.

☞TIP : 여기서 잠깐 미해병 1사단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옆의 마크는 미해병 1사단 마크입니다.미해병 1사단은 태평양전쟁때 창설되었습니다. 마크를 보면 남십자성을 뜻하는 5개의 별과 1사단의 "1" 그리고 과들카넬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미해병 1사단이 바로 태평양전쟁 와중에 미군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펼친 과들카넬전투때 미해병 1사단이 창설되었음을 알려주는 마크입니다.

 미 해병 1사단은 과들카넬 전투 이후 현재까지도 미국의 최정예부대이며 그 전통은 "ONES MARINE, FOREVER MARINE" 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은 본래 미해병의 모토입니다.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친 후 미 해병 1사단이 치른 유명한 전투는 월남에서 벌어진 케산지구 전투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 해병대가 치른 짜빈둥 전투와 비슷한 양상을 거친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 2번에 걸친 이라크전에도 미해병1사단은 최선봉에서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해외미국 공관의 경비는 모두 미해병대 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해병대의 전설 : O.P. SMITH 장군


 2차 대전의 노련한 해병대원들과 스미스 사단장은 부대가 중공군에게 포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작전은 헬기가 투입되는 새로운 전투양상을 띄었습니다. 전술적으로 헬기가 보급과 후송을 담당하게 된 최초의 전투가 바로 장진호전투이기도 합니다.
스미스 사단장은 각부대가 철수준비를 하는 동안 장병들에게 "사단은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후방의 적을 격멸하고 함흥까지 진출하는 새로운 방향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장병들의 전의를 고양시켰다. 이들은 철수 간 발생한 600여 명의 들것환자와 함께 부대건제를 유지한 질서있는 철수로 해병대의 용맹성을 과시했다. 군사격언에 철수할때 모습을 보면 부대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있다. 대오를 흐트러 뜨리지 않고 지휘체계를 유지하면서 또 적과 전투를 감행하면서 한 미해병 1사단은 현재까지도 미군의자랑이기도 하다.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미해병1사단에 대한 소식은 미국의 언론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으며 기자들은 스미스 장군에게 작전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그때 스미스 사단장은 이 작전이 후퇴작전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후퇴라니!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 중(We are just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 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개마고원의 매서운 추위

 미해병 1사단은 인해전술로 덤비는 중공군보다 개마고원의 강추위와 더 처절하게 싸워야 하였다. 이 추위는 2차대전을 치루었던 그 어떤 미 해병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추위였다. 장진호에서의 끔찍했던 추위에 대한 증언들부터 보자.

<5연대 의무대장이었던 체스터 레슨덴 해군소령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용해가 안 되고, 수혈관이 얼음조각 때문에 막혀서 혈장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붕대를 갈지도 못했는데, 붕대를 갈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손이 바로 동상에 걸리기 때문이죠. 상처부위를 살펴보기 위해 부상자의 옷을 자를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몸이 얼어버리기 때문이죠....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추위 때문에 지혈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무기가 추위 때문에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수류탄은 잘 터지지 않았고, 중기관총 총열의 냉각통에는 부동액을 채워야 했습니다. 또 경기관총은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표물이 있건 없건 몇 분간격으로 사격을 계속해야 했다...."

 "따뜻한 텐트 안에는 눈을 녹인 물을 석유난로에 끓여서 꽁꽁언 C-레이션을 끓는 물 안에 던져 넣었지만, 대부분 바깥쪽만 녹아서 얼어 있는 안쪽까지 먹어치운 해병들은 심한 장병과 설사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쉐퍼 병장이 다가와 데이비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했다. 쉐퍼를 따라간 중령은 그가 몸을 낮춰 중공군으로 판명된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참호에서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중공군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고, 데이비스는 그의 눈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위에 그런 모습의 중공군이 여러 명 있었는데,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참호에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갔다가 대부분이 얼어 죽은 것 같았다.

 ▲ 개마고원의 매서운 추위에 전사 또는 동사한 중공군

 영웅들의 행진

 1개 분대의 병력을 거느린 윌리엄 G.윈드리치 하사가 적군의 역습을 오랫동안 저지하여 I중대가 어둠속에서 재편성을 마치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12명 중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류탄 파편에 머리를  다치고도 후송을 거절한 윈드 리치는 1소대를 이끌고 돌격하다가 다시 부상을 입었다. 접근하는 위생병에게   오지 말라고 손을 저으며, 그는 "아직 아냐"라고 말했으나, 몇 분 후 숨을 거두었다.> 

 부상병들도 다시 무기를 들고 싸워야 했다.
해리슨 포머스는 구호소 텐트에 들어온 바버 대위가 병력이 부족해 부상자들 중에 사선으로 돌아올 자원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 명의 부상자들이 간신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영웅이었습니다." 이렇게  미 해병1사단대원들은 장진호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수많은 전우들을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앨런 헤링턴 상병 ;  피가 흐르다가 얼어서 고드름이 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하갈우리라는 외부로 나가는 관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로 장애물 옆에 서서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찾았지요. 부대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내가 아는 하사관을 찾으면 그 부대의 누군가가 트럭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전사'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 거기 서서 얼어붙은 시신들이 트럭에 실려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가끔씩 아는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 모두는 내게는 개인적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피가 흐르다가 얼어서 고드름이 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의관 헨리 리트빈 중위에게는 이스트힐 전투가 긴 악몽의 일부분 같았다.
 "부상당한 해병의 철모를 벗겼을 때 그의 심장이 그때까지 뛰고 있었는데도 뇌수가 냄비의 스튜가 쏟아지듯이 골 밖으로 나와 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모습에 가슴이 저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는데, 그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혹독한 전장에서 꽃핀 해병들의 전우애에 대해 역사가 린 몬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투력이 기강이나 무기의 성능보다 다른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때가 있는데,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굳이 말해야 한다면 그건 전우애입니다.

 미국 최고의 훈장

 ▲ 저 훈장이야말로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는 그런 훈장입니다.

 중공군과의 전투가 얼마만큼 치열하였는지는 미의회가 수여한 최고명예훈장을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해병 제1 대대장 데이비스 중령(Lt.Col. Raymond G. Davis)과 제2대대 F중대 중대장 발버 대위(Capt. William E. Barber)대위입니다.

 그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대부대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 속에 있던 제2대대의 F 중대를 1대대장으로서 병력을 직접 인솔하여 구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의 상황은 고립된 발버대위의 1개중대 병력 약 150여명으로 무려 1.000여명에 달하는 중공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포위망을 벗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2대대 F 중대 중대장 발버 대위(Capt. William E. Barber)와 1대대장 데이비스 중령은 그 무공으로 인하여 미국의 최고훈장인 'Congressional Medal of Honor'를 트루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백악관에서 수여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런 미해병의 희생정신과 전투력을 높이 평가하고 또 장진호 전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미해군의 티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에도 이름을 붙였으니 바로 "초신함" 입니다. (참고로 당시 한국어로 된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 표기로 장진호는 CHOSI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군들은 아직도 장진호라고 하면 모르고 CHOSIN FEW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 우리말로 장진호 입니다. FREEDOM IS NOT CHEAP AND NEVER GOES ON SALE! 새겨 들어야 합니다.

 이번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새삼 놀란 것이 있습니다. 미국은 장진호 전투에 대한 자료와 당시 해병에 대한 추모의 글과 자료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미국인들의 자국 군인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자신들이 겪었던 역사적 전투에 대한 되새김에 다시한번 놀랐습니다.


 ▲ 미해군 초신함(장진함)의 마크입니다.

 

 

 

 

 

 

 

 

 

 

 

 

 

 고성달 (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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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판사판    수정

    위 한국이란자는 뇌가 없는자냐 아니면 사상이 불손한자냐 이처절한 기사를 보면서도 느낌도없고 미군활약상홍보 운운하고 자빠졌으니...너같은건 겨울철 장진호추위가 어떤건지 직접가서 체험하고 얼어 죽어가는 고통을 맛보아야 그ㄷ따위 소리를 안하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0-03-27 오후 8:54:20
    찬성0반대0
  • 자유대한    수정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혈맹이요 우방이다 오늘날 남한의 좌빨 빨갱이놈들은 모두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거기서 배고픔과 추위를 느껴보다 강냉이 한주먹 훔치다가 총살을 당해봐야 남한사회의 고마음을 알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9-26 오전 9:42:28
    찬성0반대0
  • 한국    수정

    미군의 활약상을 홍보하는 건가요? 내용을 도통 이해못하겠네요... 카츄사라도 지원하라는건가???ㅎㅎ</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3-06 오후 11:44:36
    찬성0반대0
  • PAKWJ3697    수정

    부친은 그당시 사병으로 참전, 1952.7.30일 이등중사로 전, 만3년을 군에 몸담았으나 가장생생하게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함흥철수작전이였다고 하시면서 아비규환의 모습, 피 비린내나는 함흥시가지는 눈뜨고는 차마 볼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하니 실로 상상을 초월했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이런사항을 친북좌경세력들 아는지모르는지, 저들에게 자재할 것을 전 국민의 이름으로 엄중히 경고한다</title><style>.ar4w{posi

    2006-03-06 오전 9: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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