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분단은 무엇인가?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동복입니다.
서울에서 보내드리는 이동복의 통일대화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통일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대화를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1945년8월15일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분단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 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하여 6.25라고 하는 엄청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김일성(金日成)의 공산북한은 ‘통일’이라는 미명하에 1950년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전면남침을 감행함으로써 3년간에 걸친 ‘6.25전쟁’이라는 이름의 국제전쟁을 도발하여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수십만명의 인명을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1천만명 이상의 남북의 동포들에게 가족이산이라는 단장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쟁은 1953년 '휴전(休戰)’이라는 형태로 겨우 봉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停戰協定)’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되어 유명무실(有名無實)해 진 가운데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사이비(似而非) 평화가 불안정하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남북의 두 동포사회 간에는 상호 철저한 단절과 고립 속에서 엄청난 사회적 이질화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국토분단’, '국가분단', '민족분단’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엄연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분단’이야말로 그 역시 하나의 역사적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북의 ‘선택’은 ‘공산주의’와 ‘독재’였고 남의 ‘선택’은 ‘민주주의’와 ‘자유’였습니다.
북의 ‘선택’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입각한 ‘명령사회’였고 남의 ‘선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경쟁사회’였습니다.
북의 ‘선택’은 ‘폐쇄’와 ‘고립화’였고 남의 ‘선택’은 ‘개방’과 ‘국제화’였습니다.
이 같은 ‘선택’의 결과는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1948년에 이루어진 남북의 이같이 상이한 ‘선택’의 결과로 지금 남쪽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가히 민족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획기적입니다. 이것을 몇 가지 지표를 통하여 확인해 봅시다.
53년 13억 달러였던 남한의 국민소득은 2004년에는 그 523배인 6,810억 달러로 늘어났고 1인당 국민소득은 53년의 67 달러에서 2004년에는 그 211배인 14,162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남한은 세계 190여개 나라 가운데서 열한 번째의 경제대국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북한 동포들께서는 오늘날 세계에서 남의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앞서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스페인, 카나다, 인도 등 열 나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1945년 해방 당시와 비교한 광복60주년 때의 각종 경제지표는 실로 인상적입니다. 1945년과 비교하면 쌀 생산량은 2.7배, 철강 생산량은 59.400배, 자동차 생산대수는 50만배, 시멘트 생산량은 6,037배, 선박 건조량은 약 1,900배로 늘어났으며 수출액은 52년에 비해 9,200배로 늘어났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948년 국가분단 당시에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에 비해 앞서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945년의 통계수치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 역청탄의 98%, 전력의 92%가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또 1960년의 통계수치에 의하면, 비록 국민소득에서는 19억 달러 대 17억 달러로 남한이 약간 앞섰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94 달러 대 137 달러, 수출액은 33억 달러 대 154억 달러로 북한의 경제가 남한을 앞서고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본래의 경제구조는 남농북공(南農北工), 남경북중(南輕北重)의 상호 보완형으로 북한이 주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분단으로부터 반세기가 경과한 지금 남북한의 경제는 이미 비교의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북한의 경제는 북한이 국가예산을 편성하는 것을 중지한 1994년 이래 선고만 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파산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산업설비 가동률은 3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굶주린 근로자들이 유휴설비들의 부품들을 모두 뜯어내어 양식과 바꾸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래서는 유휴설비들은 이제 고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거덜 난 경제는 이미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1994-1996년 사이에 수백만의 주민이 기아(饑餓)로 목숨을 잃었고 수만 명, 어쩌면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밀도강(密渡江)하여 만주 벌판을 헤매고 있습니다. 북에 남은 주민들은 서방세계의 인도적 지원으로 겨우 집단 아사(餓死)를 모면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1차 7개년 계획에 착수한 직후인 1962년 김일성은 이 계획이 완료되면 북한주민에게는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지금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1948년에 북한이 공산주의와 김일성 독재체제를 ‘선택’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분단국가를 건설한 결과인 것입니다.
북한동포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대화를 계속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출처: 자유북한방송 대북방송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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