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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를 엿먹인 박정희 대통령

Written by. 고성달   입력 : 2006-03-23 오후 12: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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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撤軍하면 전쟁 터진다』 (싱글러브)

 위의 대화록을 읽어 보면 朴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한 말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朴대통령은 『미군 장성들에게 골프를 초대받은 적이 있어서 경기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撤軍에 반대야. 내가 「카터 대통령이 軍 출신이니까 잘할 것 아니냐」고 했더니 미군 장성들이 「그 사람, 잠수함을 석 달 탔습니다. 그것도 軍 경력에 들겠지요」라고 대답하더군』이라고 했었다. 카터를 이렇게 평한 사람은 베시였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베시 사령관이 金載圭를 통해서 朴대통령과 내통하던 바로 그 시간대에 베시의 참모장 존 K 싱글러브 소장은 워싱턴 포스트 존 사르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 사르 기자는 이때 카터 특사 필립 하비브 국무차관과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이 朴대통령을 만나러 오는 것을 취재하러 서울에 와 있었다.  사르 기자가 싱글러브 참모장에게 『귀하는 카터 대통령의 撤軍계획이 전쟁을 부를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싱글러브는 전역한 직후인 1978년 여름 白斗鎭 국회의장의 소개로 일본의 「新視点」이란 잡지 주간과 인터뷰를 했다. 이 녹취록을 구한 白씨는 자신의 회고록에 그 全文을 실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싱글러브는 자신이 『그렇다』고 대답한 것은 북한군의 戰力증강에 대한 최신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군은 1970년대 전반기에 대포와 전투기를 倍增시켰고 장갑차는 세 배로 늘렸으며, 수륙양용차와 수송기를 4배로 증강시키면서 휴전선 가까이 공군기지를 만들고 병력을 전진배치하고 공격대형을 취했다. 이런 정보를 미군은 1976년 초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카터가 1975년부터 駐韓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싱글러브는 카터가 대통령이 된 이후엔 군부로부터 보고를 받고 撤軍주장을 취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 『나는 撤軍에 반대하지만 만약 대통령이 그렇게 결정한다면 우리는 직업의식과 열성을 다해 이를 수행할 것이다』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이 부분은 생략했다. 

 5월19일 워싱턴 포스트 기사를 읽은 카터 대통령은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즉시 싱글러브 참모장을 불러들여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했다. 브라운 국방장관은 한국에 가 있던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이 지시를 전달했고, 브라운 의장은 베시 사령관에게 명령해 싱글러브 소장을 백악관으로 보내게 했다. 워싱턴으로 불려 온 싱글러브 소장에게 브라운 장관은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만나면 모든 책임을 기자에게 전가하세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고, 나는 撤軍을 지지합니다」라고 하란 말입니다』  싱글러브 소장은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장관께선 잘 이해하시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 기자는 본인의 발언을 정확하게 보도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카터-싱글러브 면담  

 브라운 장관은 싱글러브 소장을 데리고 카터 대통령 집무실로 갔다. 이상한 면담은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되었다. 카터 대통령은 경위를 물었고 싱글러브는 설명했다. 『저는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발언을 한 시기는 韓美 간의 撤軍 협의가 있기 전이었으므로 각하께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撤軍 결정이 내려지면 이를 열심히 수행할 것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런 결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군인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카터는 군대에 대한 민간통제의 전통에 대해서 강의하듯이 이야기했다. 녹취록에서 싱글러브는 『그런 것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므로 필요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카터 대통령도 싱글러브를 달리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다만, 그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라고 장관에게 지시했다. 美 하원 군사위원회의 소위원회는 싱글러브 소장에게 출두명령을 내렸다. 싱글러브는 소위원회에 나가서도 撤軍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 소위원회는 그 뒤 한국을 방문하고 撤軍반대 의견을 냈다.  이렇게 되니 싱글러브 소장의 인터뷰 파문은 워싱턴의 가장 큰 뉴스로 부각되고 카터는 곤경에 처했다.

 브라운 국방장관은 싱글러브에게 한국으로 歸任하지 말고 바로 조지아州 육군사령부로 가라고 명령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짐은 잘 챙겨서 보내 주겠다고 설득했다.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베시 사령관이었다. 브라운 장관은 싱글러브 소장에 대한 성대한 환송파티나 훈장수여를 금지시키고, 朴대통령에 대한 離任(이임)인사차 방문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베시 사령관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싱글러브는 朴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으나 朴 대통령은 사람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했다. 싱글러브 소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임을 앞두고 일주일간 휴가를 얻어 한국을 여행했는데 가는 곳마다 보통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식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곤했다는 것이다.  싱글러브는 조지아州의 육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전속되어 근무하다가 1978년 4월에 또 공개석상에서 카터의 중성자탄 제조연기, B-1 폭격기 생산계획 취소 조치를 비판했다고 해서 전역당했다.

 이상의 경과를 살펴보면 베시 駐韓미군 사령관과 싱글러브 참모장은 카터의 撤軍특사가 朴 대통령을 만나러 오는 시점을 D데이로 삼고 작전하듯이 反카터-反撤軍 공작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駐韓미군 사령부는 朴 대통령과 손잡고 카터를 물 먹인 셈이다. 이런 공작이 발각되었다면 군법회의에 넘겨졌을 만한 일을 감행해 가면서 베시와 싱글러브가 카터의 撤軍정책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撤軍의 논리와 전략이 너무나 허술하여 군부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軍心이 완전히 떠난 상태에선 아무리 최고사령관의 의지가 강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다』 

 1977년 5월25, 26일 양일간 미국 카터 대통령의 특사 하비브 국무차관과 브라운 합참의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朴대통령에게 카터의 撤軍계획을 통보했다. 첫날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시5분까지 소접견실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한국 측에선 崔圭夏 국무총리를 비롯해 외무·국방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의전수석(통역)이 배석했다. 미국 측에선 스나이더 駐韓 미국대사와 베시 駐韓미군사령관이 배석했다. 둘째날인 26일에도 오후 4시부터 1시간 15분 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하비브와 브라운은 朴 대통령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들의 설명요지는 이러했다. 

 <撤軍은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파괴하거나 북한의 오판을 유발하지 않도록 진행될 것이다. 한국의 자주국방 능력 향상을 위한 한국 측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對韓방위공약은 변함이 없다. 美 공군은 계속해서 주둔한다> 

 朴대통령은 2~3일 전부터 꼼꼼히 메모해 두었던 견해를 조목조목 털어놓았다.

 <미국 대통령이 자기 나라 군대를 빼겠다는데 다른 나라가 막을 수는 없다. 駐韓 美 지상군을 4~5년내에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은 韓美 양국을 위해서 대단히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美 지상군은 북한군의 再남침을 저지하는 관건이자, 일본과 東아시아의 방위를 위해서도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駐韓미군은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볼 때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더불어 소련을 견제하는 2大 근간이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駐韓미군사령관은 4만여의 駐韓미군과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60만 한국군, 그리고 고도의 훈련을 쌓았으며 전투경험도 있는 250만 내지 300만 명의 예비군까지 지휘하고 있다. 소련은 그 병력의 3분의 2를 西歐에, 3분의 1을 극동에 배치하고 있다. 3분의 2에 대해서는 NATO軍이, 3분의 1에 대해서는 駐韓미군사령관 휘하의 韓美연합군이 대처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으로 볼 때 駐韓미군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朴대통령은 駐韓미군의 主力인 지상군이 철수하면 駐韓미군사령관에게 위임해 놓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도 再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朴대통령은 金載圭 정보부장과 베시 사령관 사이의 밀약에 따라 「先보완 後철군」을 요구했다. 하비브 차관과 브라운 합참의장은 『카터 대통령의 방침은 보완과 撤軍을 병행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 이견을 해결하기 위한 韓美 간 실무자회담을 수용했다.

『카터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시오』

 1977년 5월26일 오후 撤軍관련 회담을 끝낸 朴대통령은 鮮于煉 공보비서관에게 회담에서 논의된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구술했다. 

 <먼저 하비브 美 국무차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고 한다. 『대통령께 이제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카터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장이 어렵다는 것을 각하께서 잘 좀 이해해 주십시오. 카터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장이나 얼굴,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간청합니다만 뭔가 제스처를 좀 써 주십시오』  朴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스나이더 대사에게는 이미 이야기했지만 한국에 소위 인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는 같은 정치인으로서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내에 소위 인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대통령에게 사면권은 있습니다. 나 자신 대통령으로서 사면권을 과거 몇 차례 행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민청학련 사건 때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여부는 본인들, 즉 복역자들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개과천선하고 개전의 정을 보이고 또 복역 자세가 좋을 경우에는 내가 사면을 해왔고, 또 사면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역자들의 자세가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경거망동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귀하들이 온다니까 구세주나 오는 것처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면을 하겠소? 사면은 못 합니다. 그들이 왜 그런 자세를 갖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에서 소위 한국의 인권 문제가 거론되고 제기될 때마다 미국 정부가 「관심을 표명한다」는 식의 논평을 내니까 그들이 자세를 안 바꾸는 것 아닙니까?』>

 朴대통령은, 1977년 5월27일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신민당 당수 李哲承을 청와대로 초청해 韓美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李총재는 나중에 이렇게 기억했다. 

 <인권과 미군철수를 흥정하는 미국의 압력에 그는 참으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국가안보를 볼모로 하여 정권투쟁을 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중도통합의 철학에 따라 反정부와 反국가는 구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쿠라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朴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했던 것이다>

 고성달/자주국방네트워크 역사연구실장 (http://www.powerc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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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통사랑    수정

    박정희가 키워논 대한민국을 그후 이상한 지도자들이 나와 엉망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지하에 있는 박통이 편히 잠들지 못하는 이유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3-24 오전 1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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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나    수정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에 인권상황에 관심이 없었다에 올인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3-24 오전 9:57:31
    찬성0반대0
  • pakiwj3697    수정

    이 시대에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든다. 최근 북괴가 고도의 높은 심리전략전술을 사용, 낮은단계연방제에서 고려연방제로 굳힐려는 이때, 우리사회를 좌익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한 것이 합당한 것인지, 국민모두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은 우리모두가 똘똘뭉쳐 한덩어리가 되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할때입니다. 그리고 국미느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야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

    2006-03-24 오전 9:16:26
    찬성0반대0
  • 자유    수정

    고성달씨, 아무리 박정희가 그리워도 반미감정을 조장하는 이런 제목은 정말 아닙니다.당신은 자주국방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역사연구실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데 사소한 글이지만 미국사람들이 이글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역지사지도 모르는 사람이 역사연구실장이라니, 참 딱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

    2006-03-23 오후 9:01:37
    찬성0반대0
  • 만득이    수정

    박정희 대통령이 그립다. 대한민국에 또다시 이런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3-23 오후 6: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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