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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臨政격 고려국 후신 '대동민국' 창립시도 있었다"

이현희 교수, '독립운동 선구자 四賢의 항일언론 투쟁' 학술대회서 밝혀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6-04-25 오후 7: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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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배설(베델)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가 주최하는 「독립운동 선구자 사현(四賢)의 항일언론투쟁」학술대회가 개최돼 광복61주년에 즈음한 우리 사회의 항일언론투쟁사를 재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다.

 ▲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독립운동 선구자 사현의 항일언론 투쟁'' 학술대회. 이날 학술토론회에서는 후손들이 애국선열들의 얼을 받들어 더욱 나라를 탄탄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konas.net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는 300여명의 각계 전문가와 청중이 참가한 가운데 일제강점기 日 제국주의에 맞서 평생을 언론을 바탕으로 일제와 맞섰던 배설(베델, 영국인), 백암 박은식, 우강 양기탁,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애국 혼과 민족사관을 기리는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었다.

 ▲ 국민의례하고 있는 참석 내빈들 (우로부터 진채호 배설기념사업회 회장, 정남기 한국언론대단이사장, 김국주 광복회장,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konas.net

 이 날 학술회의는 국가보훈처, 광복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후원아래 한국언론재단과 민족정기수호중앙회 주관으로 각기 4개의 주제발제에 이어 종합토론 순으로 열렸다.

 제1주제 "배설(베델)선생의 항일언론투쟁"(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 제2주제 "박은식 선생의 사학과 민족운동"(김창수 동국대 명예교수), 제3주제 "양기탁 선생의 항일투쟁"(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 제4주제 "신채호 선생의 민족사관"(박성수 국제평화대학원대학 명예총장)주제발표에 이어 각 주제별 1,2명의 토론자 토론, 청중과의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되었다.

 주제발표에 앞서 정남기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은 대회사에서 "일제하 36년간 민족의 독립을 이끌었던 선배 언론인들의 넋을 기리고, 업적을 재조명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라며 "최근 우리의 언론자유는 언론자유는 구가하지만 언론인의 자유는 제약되는 전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주장했다.

 ▲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konas.net
 축사에 나선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우리의 근대사는 질곡의 시기로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기고 더할 수 없는 시련을 감수하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양상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반추한 뒤 "조국이 광복을 맞기까지는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국내외에서 고군분투하며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고 35년간의 일제치하를 되새겼다.

 박 보훈처장은 그러나 "이런 분들 중에는 독립운동의 선구자 사현(四賢)인 배설 선생님
과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님의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은 이 시대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 되고있다"고 밝히고 "특히 국경을 초월해 이타정신(이타정신)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사신 배설선생과 항일 언론투쟁으로 한평생을 바치신 세분의 숭고한 생애와 사상을 되새겨 더욱 폭넓은 연구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국주 광복회장도 "일제의 우리 조국 강탈야욕이 절정에 이르러 온 나라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자신을 불태워 한줄기 찬란한 빛이 되어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 독립운동 지도자 사현의 애국정신을 새로운 지침으로 삼자"면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엘리트 지식인들은 존재하지만 그들이 어떠한 가치관과 얼마나 굳은 의지를 갖고 사회를 이끌어 주느냐에 따라 민족의 성쇠가 결정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늘의 국제정세는 100년 전 그때와 다름없이 중국의 동북공정, 일제의 독도야욕 등 자신들의 실리를 위해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선열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풍요를 올바로 지키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선각자들이 남겨주신 정신문화를 되새겨 새로운 가치관을 함양해 나가자" 고 부언했다.

 이어 발제에 나선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과연 베델이 없었다면 그 시기에 어떻게 우리의 자주독립운동이 힘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며 사진자료들을 중심으로 발표하면서 "역사는 연구자의 고정된 시각에 맞지 않는다 해서 중요한 자료를 외면하거나 일방적인 자료를 토대로 살붙이고 색깔을 더한다면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창수 동국대 명예교수(한국사)는 "백암은 죽음에 임하면서도 오직 조국의 독립과 민족적 통합을 염려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의 독립운동을 주장할 정도의 진정한 의미의 독립투사이며, 독립투쟁의 경륜가"라고 숭모해 마지 않았다.

 이어 지난 3월 참여정부를 중심으로 이른바 진보단체들이 주도하고있는 과거사 청산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주목을 받았던 이현희 성신여대명예교수(독립운동사)는 양기탁의 대동민국 임시정부 수립설을 제시하면서 "임정수립의 신봉자며 필요성을 인식한 양기탁의 독립운동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단재 사학은 지금 죽었다. 그것은 천재인 신채호를 둔재인 우리 후배들이 따라가지 못해 아직 재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단군을 배제한 것은 바로 퇴보의 역사를 여실히 입증하는 것이며, 사지가 다 잘려나간 역사와 진일배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역사가 살려면 구석시, 신석기 시대가 교과서의 첫페이지를 장식할게 아니라 단군부터 살려야 역사가 사는 것"이라면서 단재의 한국사 인식, 대아와 소아의 투쟁, 그의 연구방법론과 새로운 식민사관 대두 등을 토대로 독설을 뱉어가며 역설했다.

 그런데 이 날 토론주제의 대상인 사현(베델,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은 1904년 영국인 기자 출신인 배설(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구국의 항일운동을 전개하게 된 인연을 갖고있다.

 배설(베델)기념사업회는 현재 이들 사현을 위한 기념관 건립을 추진중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학술대회에 발제 및 토론자로 나온 대표들이 유준기 총신대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 및 질의에 임하고 있다 @konas.net

 다음은 이 날 발표자들이 발표한 발제내용을 발췌한 내용임. 

 정진석, "배설(베델)선생의 항일언론투쟁"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발행한 영국인 배설(1872-1909)은 러일전쟁에서 한일합방까지의 기간에 한국을 둘러싼 영, 일 두 나라의 외교사에 가장 큰 쟁점이 된 인물이다.

 배설은 신문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문사를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로 만들었으며,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는 이 신문사를 본거지로 삼았다.

 민족진영에서도 배설이 발행하는 신문을 항일운동의 총본산으로 활용했다. 한국 근대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배설은 항일 의병투쟁,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 등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한국 민족운동사의 핵심적인 연구과제가 되는 사람이다.

 배설과 관련해서는 객관적으로 규명할 문제는 적지 않게 남아있다. 영국, 일본, 한국 등 세나라의 문서들을 정밀히 비교 검토하고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완전한 국내의 자료만 보면서 아전인수식의 자세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할 위험성이 크며 올바른 역사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매일신보 창간의 경과와 경영자금, 신문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도 명쾌하지 않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신문의 민족운동사, 외교사, 언론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한일합방이 공포된 날까지 약 6년동안 발행된 신문 발행시기와 신문의 외교사적 중요성, 또 한반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영국과 일본의 기본적 입장과 양측의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를 대한매일신보가 알려주고 있다.

 또 민족운동사에서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소유의 치외법권아래 발행되었으므로 일본측의 검열을 피할 수 있어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한국 민족독립운동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고,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는 점이다. 그런면에서 배설의 공적은 누구보다도 컸다.

 김창수 "백암 박은식 사학과 민족운동"

 박은식의 민족주의사학에 대한 신념은 나라는 망해도 그 역사만 잃지 않으면 민족은 멸망하지 않고 다시 독립한다는 것이다. '한국통사'는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민족운동가와 청년학생에 큰 자극을 주어 국혼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25년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음에도 오직 독립을 위한 원로로서의 독립운동선상의 통일과 성취만이 그의 소원이었다.

 박은식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단순한 사상가 혹은 행동가에 그치지 않고 사상과 행동을 동시에 수행한 유일한 존재였다는 점에서 더하다.

 그의 항일독립운동의 사상 및 이념은 철저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1920년대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겪고 있던 독립운동노선상의 혼미상황에서 민족적 통일을 지향하여 민족분열을  막고 오직 독립운동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임을 명심토록 하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개인의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모든 독립운동의 통합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조국광복을 성취하자는 것으로 한국통사 등을 통하여 직접적인 독립투쟁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현희 "우강 양기탁의 항일독립 투쟁과 교훈"

 양기탁은 1904년 러일전쟁 때 서울에 온 영국 신문기자 데델을 만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 운영하면서 폐간될 때까지 6년여 동안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을 본격화하였다.

 그는 신민회를 결성하여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조성하고 독립전쟁론을 펴면서 투옥되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투쟁을 구체화 한 것이 1917년 이래의 고려 국이란 독립국인 임시정부 수립시도였다. 당시는 임시정부 표현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성사되었더라면 그가 국내외에서 최초의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애국의 임정 수립 신봉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또 '대동민국' 임시정부를 일제치하인 서울에서 과감히 건국하려 기도한 한 점이다. 그는 한국인만으로 길림에 독립국인 고려임시정부를 만들고자 했다. 대동이란 해동, 동국, 동방, 단국 등의 의미로서 우리 '한국'을 상징하는 조선이란 선대적 명칭으로서 빼앗긴 국가를 재건하려 했다.

 3·1운동 전후로 8∼9개의 임정이 국내외에 수립되거나 될 찰라에 있었지만 성사여부를 떠나서 이제 앞으로 '대동민국 임정'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이는 창립장정 문안 기사만으로 볼 때 창립시말은 명백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압수된 창립 장정의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발견만 한다면 본인의 평가는 물론, 대동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과정, 참여인사, 정강정책, 서고문, 강령, 의회설치 유무 등 국가건설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는 상해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된 지 얼마안된 뒤의 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임정 수립신봉자이며, 필요성을 먼저 인식한 민족정통성의 주체인 셈이다.

 박성수 "신채호 선생의 민족사관"

 단재는 백암과 함께 일생을 한국사 연구에 바쳐 민족사관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박은식은 근대사를, 신채호는 고대사를 맡아서 연구해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나 그 분들이 남긴 역사정신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신채호에 있어서 '아'는 '소아'가 아니라 '대아'며 '대아'는 정신적인 것이며, 바로 '대아'는 민족혼이자 국혼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본래의 '대아'를 찾아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며, 대아와 소아의 투쟁에서 '아'가 '비아'에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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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iwj3697    수정

    역사학적으로 대동민국을 찾았으면, 대마도 우산국정벌후의 관리했던 시대적사항을 국제적으로 학술연구 발표도하여 우리의 입지를 공고히해야할 시점인데 현시점에서도 외침을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답답...(독도,고구려역사문제...)</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4-26 오전 9: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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