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교과서포럼 이영훈 교수, 마포포럼서 '민족'을 테제로 강연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6-04-27 오전 10:46:28
해방전후사를 중심으로 한 강연회가 개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주최로 26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이날 강연회에는 '해방전후사 재인식'집필진의 한 사람인 이영훈(서울대 경제학부교수)교과서포럼 공동대표가 나와 '민족'과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해방전후사 재인식 강연을 펼쳐 많은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이 날 강연회에는 문민정부시절 정·관계 주요인사를 중심으로 한 마포포럼 회원 50여명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 날 강연에서 이영훈 교수는 <해전사 재인식>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지난 1978년 저술된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이 45년 해방을 전후한 한국 현대사에 관한 기획물로는 최초라는 점 뿐 아니라 이 책을 학습한 세대가 현 집권세력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집권층이 왜 우리의 현대사를 두고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고 비판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여기서 <해전사 인식> 전 권을 분석한 결과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족'과 '혁명'으로 귀결된다고 단정했다. 즉 해방 전의 식민지기는 민족독립을 위한 역사이며, 해방후의 분단시대는 민족통일을 위한 역사로서 독립과 통일은 그 자체로서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방전후사가 민족지상주의 입장에서 통일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등 우리체제의 실패를 피력해 이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른 어떤 계획에서 저술된 것인지 의심되고 폭력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재인식>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하고자 했으나 막판에서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출판까지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는 해당 출판사 운영자가 주로 운동권출신들이어서 그들의 시각과 다른 내용을 받아들이기 꺼려해서였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 또 왜 당시 해방전후사 인식이 대학가에서 풍미할 때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하는 비판의 화살도 날렸다. 그러면서도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떠나 근본적으로 저항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민족'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민족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지상주의를 크게 우려했다.
'혁명'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 권이 혁명으로 통칭되고 있다면서, 인식의 저자들이 그럴듯하게 참고문헌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의 실증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이유로 이들 학자(최장집, 정해구)들이 주장하는 논거가 "북한에 혁명적인 소련군의 주둔과 함께 북한에서 민중의 반제 반봉건 혁명 열기를 수렴해서 혁명적인 정부가 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 인가"고 반문하면서 그 증거 또한 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북한 정권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또 지난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일본의 독도 관련 특별담화 발표를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이었다면서 "맞을 각오로 말씀드리지만 과연 일본 제국주의 침탈시기에 수탈과 고문으로 지배했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법을 가지고 들어왔다. 일제가 토지와 식량과 노동을 아무런 보상 없이 대량으로 수탈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낯익은 수탈론은 무책임한 역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판 신화"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일제는 조악한 수준의 수탈을 저지르기 위해 건너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일 제국의 영토로 영구히 병합하기 위해 근대적 시장경제제도를 이식하고, 공업화를 추진해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며 자신이 13년 전에 비판하고 오류를 제기했음에도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다며 학계를 성토했다.
이 교수는 또 "역사는 열린눈,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비판하고 청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인의 삶의 고뇌가 투영되고 성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제는 민족과 통일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선진문명을 향해 나아갈 때 통일일 길 또한 빨라질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한국의 현대사에서 정의가 패배했다는 일각의 인민주의적 언설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그들의 나라세우기가 처음부터 '정의'였고 체제의 원리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현대 인류가 공유한 정의였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날 주 의제는 '민족'으로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이어지기도했다. (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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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를 중심으로 한 강연회가 개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주최로 26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이날 강연회에는 '해방전후사 재인식'집필진의 한 사람인 이영훈(서울대 경제학부교수)교과서포럼 공동대표가 나와 '민족'과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해방전후사 재인식 강연을 펼쳐 많은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이 날 강연회에는 문민정부시절 정·관계 주요인사를 중심으로 한 마포포럼 회원 50여명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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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여기서 <해전사 인식> 전 권을 분석한 결과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족'과 '혁명'으로 귀결된다고 단정했다. 즉 해방 전의 식민지기는 민족독립을 위한 역사이며, 해방후의 분단시대는 민족통일을 위한 역사로서 독립과 통일은 그 자체로서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방전후사가 민족지상주의 입장에서 통일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등 우리체제의 실패를 피력해 이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른 어떤 계획에서 저술된 것인지 의심되고 폭력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재인식>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하고자 했으나 막판에서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출판까지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는 해당 출판사 운영자가 주로 운동권출신들이어서 그들의 시각과 다른 내용을 받아들이기 꺼려해서였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 또 왜 당시 해방전후사 인식이 대학가에서 풍미할 때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하는 비판의 화살도 날렸다. 그러면서도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떠나 근본적으로 저항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민족'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민족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지상주의를 크게 우려했다.
'혁명'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 권이 혁명으로 통칭되고 있다면서, 인식의 저자들이 그럴듯하게 참고문헌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의 실증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이유로 이들 학자(최장집, 정해구)들이 주장하는 논거가 "북한에 혁명적인 소련군의 주둔과 함께 북한에서 민중의 반제 반봉건 혁명 열기를 수렴해서 혁명적인 정부가 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 인가"고 반문하면서 그 증거 또한 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북한 정권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또 지난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일본의 독도 관련 특별담화 발표를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이었다면서 "맞을 각오로 말씀드리지만 과연 일본 제국주의 침탈시기에 수탈과 고문으로 지배했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법을 가지고 들어왔다. 일제가 토지와 식량과 노동을 아무런 보상 없이 대량으로 수탈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낯익은 수탈론은 무책임한 역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판 신화"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일제는 조악한 수준의 수탈을 저지르기 위해 건너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일 제국의 영토로 영구히 병합하기 위해 근대적 시장경제제도를 이식하고, 공업화를 추진해 근대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며 자신이 13년 전에 비판하고 오류를 제기했음에도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다며 학계를 성토했다.
이 교수는 또 "역사는 열린눈,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비판하고 청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인의 삶의 고뇌가 투영되고 성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제는 민족과 통일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선진문명을 향해 나아갈 때 통일일 길 또한 빨라질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한국의 현대사에서 정의가 패배했다는 일각의 인민주의적 언설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그들의 나라세우기가 처음부터 '정의'였고 체제의 원리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현대 인류가 공유한 정의였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날 주 의제는 '민족'으로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이어지기도했다. (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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