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조’ 평양회담의 DJ방북 합의
애당초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해결 기회로 삼겠다던 평양 남북장관급회담은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해결을 위해 협력한다’ 는 추상적 합의만을 남기고 종결됐다. 회담 전에 거론되었던 함경남도 단천의 자원공동개발 건은 구체화하지 못했다. 대신 북한의 비료 30만t 추가 지원 요청은 그 가운데 20만t을 다음달중에 지원키로 합의했다. 그리고 남북 양측은 오는 7월11∼14일 부산에서 제19차 장관급회담을 갖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회담에서는 정치적 ‘핫이슈’ 인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방북 건이 북한 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 특징이다. 남북은 이번 제18차 장관급회담에서도 ‘6·15공동선언’ 에 기초한 ‘민족공조’ 와 ‘우리민족끼리’ 의 정신을 재확인했다. 이제 노무현정부는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독트린을 공식 인정하고 수용한 셈이 됐다.
핵문제 해결의 목적도 “민족공동의 이익과 안전에 부합하게” 라고 합의문에 명시함으로써, 북핵 문제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인식은 크게 변질됐다. 원래 북핵 저지의 최대 명분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의 복귀, 곧 핵확산 방지와 대량살상무기 억지를 통해 세계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었다. ‘범죄 정권’ 으로 전락한 김정일 정권과의 공동 이익을 위한 게 아닌 것이다. ‘민족’ 의 이름을 빌려 사실상 공산독재 정권과 야합하는 모양새가 돼 버린 것이다.
남북 간 ‘우리민족끼리’ 정신의 연원을 찾는다면 의심할 바 없이 2000년 DJ의 평양 방문과 6·15공동선언이다. 그만큼 6·15선언과 DJ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DJ는 김일성 - 김정일 체제와 ‘신뢰’ 와 ‘합의’ 를 통해 남북 간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아직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북핵 등 군사·안보 현안에서 ‘평화적 해결’ 을 우선케 하여,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원인이 됐다.
북한은 모든 ‘남북대화’ 채널을 이용, 남한의 자유민주체제를 교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번 합의문에 나오는 “상대방의 사상·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실천적 조치” 라는 것도 북한내 참관지 자유 방문 허용이나 남한내 친북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제도적·법적 조치, 곧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있음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섣부른 신뢰보다는 경계와 검증이 우선이다.
DJ는 이번에 방북하여 북핵 문제를 논해 보겠다고 말하고 있다. DJ는 북핵을 미·북 간 현안으로 국한시켜, 한국을 스스로 핵 문제의 ‘국외자’ 로 만든 장본인이다. 핵협상에서 ‘중재’ 를 자임함으로써, 국민 간 핵 위협에 대한 책임 회피와 안보불감증을 확산시켰고, 더 나아가 북핵을 저지하려는 미국을 오히려 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그야말로 가치관의 전도 현상을 초래했다. 현 국가 위기의 배경이 된 ‘탈미·친북’ 현상은 바로 이러한 오도된 인식에서 잉태된 것이다. 이런 과거를 안고 있는 DJ의 방북이 핵 문제 해결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나 DJ의 방북을 바라보는 국민의 의혹의 눈초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사견에 불과했던 ‘연합제’ 통일방안과 낮은 단계라 하지만 북한의 적화통일 방안임이 분명한 ‘연방제’ 를 일치시켜 대한민국의 통일 방안에 치환시킨 그의 중대한 위헌 행위에 국민의 보다 큰 지탄이 향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6·25 이래 최대의 시련이라 할 만큼 국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 위기의 배후에 바로 6·15공동선언이 자리하고 있고, 6·15선언을 만든 DJ가 그 역사적 책임의 중심에 서 있다. 공직에서 물러난 그가 스스로 자중하여 국가위기를 악화시키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홍관희 / 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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