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문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당당하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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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등 북한인권문제가 다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이 27일 사상 처음으로 탈북자(북한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서재석씨)의 정치적 망명(political asylum)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미 의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에 따라 그간 몇 가지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지긴 했지만,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에는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다. 하지만 미 이민법원의 전향적인 결정으로 입법, 사법, 행정 3부가 공히 탈북자들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게 됐다. 현재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한 탈북자는 수십명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법적 결정은 앞으로 유사 사건의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동향은 최근 미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와 관련이 있다. 지난 2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인권 주간행사에 보낸 격려메시지와 28일 탈북자 면담을 통해 이들의 인권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게 그 단적인 예다. 그는 탈북자들과의 대화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존중을 바란다면 인권을 지켜야 하며,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은 매우 용기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했고, 앞으로 북한인권문제를 대외정책의 전면에 내세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레프코위츠 북한인권 특사도 미 하원이 주최한 탈북자 및 납북자청문회에서 조만간 ‘중국 체류 탈북자’의 미국 망명도 허용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각국의 북한인권단체들이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북한 자유의 날을 맞이해 한․미․일 3개국 북한인권단체들이 미국 의회 앞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그에 이어 오는 5월 9일부터 3일간 노르웨이에서 북한인권 및 난민문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또 6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할 유엔인권이사회에선 북한인권문제가 강도 높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정작 탈북자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은 국제적 동향과 어긋난 자세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년간 계속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또 작년 12월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 채택에 불참 내지 기권하는 ‘비겁한’ 혹은 ‘인권 외면적’인 선택을 했다. 얼마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에 주목하고 그 개선에 노력해야 할 직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북한인권단체들을 폄하하고 나무라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국제 시민사회는 한국의 대북정책(특히 ‘퍼주기식 지원’ 위주의 햇볕정책)이 ‘끔직하다’(terrible)고 지적한 지 이미 오래이다. 독재정권의 가혹한 인권탄압에 눈을 감으면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대북지원을 계속해, 형식적인 대북화해 분위기 유지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인권에 관한 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임에도 한국정부는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말은 북한과 중국 및 한국을 공히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인권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자가 나쁘지만, 이를 방관하고 해야 할 소리를 하지 않으며 눈치를 보는 것 역시 잘못이라는 것이다. 전자가 1차적 인권탄압 범죄라면, 후자는 2차적 인권탄압 무시․방조범죄가 된다는 논리다.
이제 탈북자에 대한 그간의 혼선을 정리하고 ‘당당한 인권정책’을 펴나가야 할 때다. 그러려면 먼저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탈북문제는 국제법상의 난민문제요, 금일의 국제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권문제의 하나이다. 다른 한편, 우리 헌법 제3조(영토조항)에 따른 ‘자국민 보호’의 문제이기도 하다. 피를 나눈 같은 형제들에 대해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구현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가 매 맞고 착취당하고 강제로 팔려나가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인권에 침묵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또 그 자체 비인도적․반민족적인 처사라고 하겠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게 마땅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결 ‘의지’와 ‘책임감’이다.
사실 탈북 등 북한인권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정권의 수립과 함께 시작됐다. ‘월남 실향민’이 그것이다. 정치범수용소는 이미 1950년대 말부터 존재했다. 탈북과 정치범수용소 등 북한인권은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체제의 반민주성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제 북한인권의 거론 및 개선을 위한 실천적인 정책의 추진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일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인권문제는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와 직결돼 있는 만큼, 국제규범(국제인권규약, 난민협약 등)을 존중하면서, 그에 근거한 국제협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유엔기구는 물론, 미․일․ EU 국가 등 북한인권 관심국과의 협력은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동맹국간의 북한인권 공조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한미공조는 북핵문제 해결의 동력을 재충전하고, 북한의 개혁․개방, 나아가 한반도 평화 기반 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명심하고 대북정책에 조속히 ‘인권 개념’(Human Rights Concept)을 도입해야 한다.
현재 북한인권 침묵정책, 북한 감싸기정책으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는 보편적 가치도 존중하지 않는 나라로 ‘무시’를 당하고 있고, 중국으로부터는 탈북자문제는 제3자가 관여할 사안이라고 하면서 참여의 ‘배제’를 당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보고 북한이 한국 정부를 존중해줄까? 필시 깔볼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 눈치를 살피던 사이 한국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고 정부는 정부가 아닌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 고교생 5명(자국민)이 북한에 납치돼도,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송환을 촉구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차리리 우리는 일본 정부가 취하는 조치를 보고 정부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는 노무현 대통령, 정동영 전 장관, 그리고 이종석 현 장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등 현 정부의 고위당국자들 전부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인권이 없는 정책은 도덕성을 상실한 것이며,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취해야 할 최선의 정책은 보편적 가치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사회를 행해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이고, 또 원칙에 기초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정부 당국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과 함께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달라고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북한주민의 눈물에 눈을 감을 것인가? (http://www.freezone.co.k)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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