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특무부대장 김창룡 묘역 놓고 자유진영, 친북세력 충돌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6-06-07 오후 2:08:14
다음은 이 날 자유시민연대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 전문내용임 (편집자)
순국정신 이어받아 친북 세력 타도하자!
역사에 가정(假定)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만일 그때- 그랬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 민족에 의해 독립이 되었더라면 6.25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젊은 영혼들 의 꽃다운 희생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라는 가정이 그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김창룡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호국의 달, 특히 현충일이 오면 그를 떠올리게 됩니다. “만일 김창룡이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한국의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을 인물이 바로 김창룡이기 때문입니다.
김창룡은 건군(建軍) 초기 군에 침투해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적발, 대한민국의 전복을 미연에 막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1948년 여수·순천의 군 반란사건 당시 김창룡은 국방부 정보국에 있으면서 4,749명의 공산주의자(남로당원)을 색출하는 등 그로부터 군 전체의 10%에 이르는 공산주의 세력을 뿌리뽑은 장본인 입니다.
만일, 6.25당시 우리 군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건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1950년 6월 25일 공산군 남침당시, 4일 만에 국군 6개 사단이 붕괴되고 44,000 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군 내부에 침투해 있던 공산세력이 여수·순천반란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부대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켜 북한군에 호응했다면, 미군이 부산에 오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공산치하에 떨어지고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오늘도 없을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오늘날의 북한 꼴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국의 달 6월에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돌아봅니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전복을 미연에 막아낸 김창룡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요? 그런데도 지금 ‘김창룡의 묘’를 대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선동하는 무리가 있으니 참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북 세력들의 망동이 여기까지 와있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값진 희생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온전히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절박한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대한민국을 흔드는 친북세력의 타도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영령들의 값진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번영이
거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의 자유가
공짜로 주어진 줄 아는가?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재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 뒤에는
선대(先代)의 피어린 투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51주년 현충일인 6일 오전 대전 국립현충원에서는 김창룡(예 육중장) 전 특무부대장 묘역을 이전하려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이를 지키려는 보수우익단체 회원들 사이에 한바탕 맞대결이 벌어졌다. 대전 현충원 앞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양측 회원들은 서로 확성기를 틀어놓고 각기 다른 주장을 펼쳤는데 이 날 보수측에서는 애국청년단체회원과 자유시민연대 청년회원 등 30여명이,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들이 1시간여 동안 설전을 벌였다. 이들은 서로의 주장을 벌이다 12시경 충돌 없이 자진해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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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날 자유시민연대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나눠준 전단 전문내용임 (편집자)
순국정신 이어받아 친북 세력 타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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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김창룡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호국의 달, 특히 현충일이 오면 그를 떠올리게 됩니다. “만일 김창룡이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한국의 현대사는 크게 달라졌을 인물이 바로 김창룡이기 때문입니다.
김창룡은 건군(建軍) 초기 군에 침투해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적발, 대한민국의 전복을 미연에 막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1948년 여수·순천의 군 반란사건 당시 김창룡은 국방부 정보국에 있으면서 4,749명의 공산주의자(남로당원)을 색출하는 등 그로부터 군 전체의 10%에 이르는 공산주의 세력을 뿌리뽑은 장본인 입니다.
만일, 6.25당시 우리 군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건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1950년 6월 25일 공산군 남침당시, 4일 만에 국군 6개 사단이 붕괴되고 44,000 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군 내부에 침투해 있던 공산세력이 여수·순천반란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부대를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켜 북한군에 호응했다면, 미군이 부산에 오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공산치하에 떨어지고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오늘도 없을 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오늘날의 북한 꼴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국의 달 6월에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돌아봅니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전복을 미연에 막아낸 김창룡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요? 그런데도 지금 ‘김창룡의 묘’를 대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선동하는 무리가 있으니 참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북 세력들의 망동이 여기까지 와있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값진 희생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온전히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절박한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대한민국을 흔드는 친북세력의 타도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영령들의 값진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번영이
거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의 자유가
공짜로 주어진 줄 아는가?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재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 뒤에는
선대(先代)의 피어린 투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6. 6. 6.
대한민국성우회·대한참전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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