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의 실책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참패의 원인인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고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과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2일, 중앙부처 홍보 책임자 토론회에서 선거 한두번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민심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국민의 속을 뒤집어놓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북정책이라고 하겠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공조 및 [우리 민족끼리] 코드에 매달려 북한의 안보 위협을 가볍게 여겨 왔다. 최근 중국과 북한 선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인천 옹진군 연평도와 울도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군경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선박이 NLL선을 침범해 3시간 이상 우리 영해를 항해했는데도 해군은 이것을 제대로 감지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 어선은 지난 30일 북한측 해역에서 조업하다 다친 선원 치료를 위해 연평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에는 북한 선박 한 척이 울도 인근 해상에 도착했는데 그 선박에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 일가족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남한 침투를 노린 북한의 공작원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결과가 뻔한 노릇이다.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대북정책에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 3월, NLL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더니 그 후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의 NLL 재설정 주장에 대해 우리측에서도 협상 용의를 밝혔다. 이것을 호재로 판단한 북한은 그 후 남북장성급회담에서도 NLL 재설정 논의를 먼저 하자며 기타 남북한간 군사현안에 대한 합의를 뒤로 미루었다. 심지어 북한은 NLL 재설정과 남북열차 시험운행을 연계시켜 시험운행을 무산시키는 전략으로 나왔다.
지난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부속합의서에 의하면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지금까지 남북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이 바로 현 NLL을 기준으로 한 구역인 것이다.
그런데 북측이 지금와서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가 관할하여온 NLL을 철회하라니 이 무슨 생떼인가. 그 이면에는 현 정전체제를 흔들려는 계략이 깔려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NLL 문제를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협의하자고 함으로써 북측에 빌미를 제공하고 우리가 견지해온 NLL 고수원칙이 흔들리고 있는데, 그 정치적 배경이 매우 의심스럽다. 핵무장한 북한군을 눈앞에 두고 해상경계선 확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같은 상황에서 남북한이 합의했던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이 북한의 취소통보로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5월 23일, 북한 군부의 동의가 없어도 열차 시험운행을 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입각하여 남한측 탑승자 명단을 북한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북한은 이날 오후 서해상 충돌 방지와 같은 근본문제(NLL 재설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며 남측 제안을 거부했다. 이로써 55년만에 경의선 남북 철길이 열리게 됐다던 지난 5월 12일의 남북합의가 없었던 일로 돼 버렸다. 여기서 보듯이 열차 시험운행이 해프닝으로 끝난 데에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마추어적 대북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
정부는 불과 24시간 뒤에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조차 헛짚은 것이다.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열차 시험운행이라는 이벤트성 업적과시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북한 군부의 동의없이는 열차운행이 어렵다는 것은 초보적 상식에 속하는 일인데도 정부는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몽골 방문중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북측에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면서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가 정상회담의 대가로 지급하려는 제도·물질적 지원의 내용, 규모가 어떤 것일까.
물질적 지원은 대규모 경제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이 가면 그 규모가 밝혀지겠지만 제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그 이상 언급을 회피하고 있어 국민들의 궁금증만 자아내고 있다. 그리하여 항간에서는 제도적 지원이 국가보안법 철폐나 남북연합제 논의와 같은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만약 이러한 추론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심각해질 것임으로 정부는 제도적 지원의 내용, 성격에 관해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지방선거 참패의 교훈을 대북정책에서도 찾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konas)
송영대 (평화문제연구소 상임고문, 前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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