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추위' 결과로 오히려 커진 열차 편 평양행 가능성
대부분의 언론 보도들은 제주도에서 있었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 결과를 보고 이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편 평양행이 사실상 좌절된 것 같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 같은 언론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번 ‘경추위’ 회의 결과로 김대중 씨의 열차 편 평양행의 가능성이 오히려 커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김정일의 북한은 이번 ‘경추위’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추가적인 경제 실리를 최대한 확보했다. 남의 노무현 정권은 북측에게 금년부터 2006년부터 의복류, 신발, 비누 생산에 필요한 대량의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채택된 9개 항목의 합의서에 의거하면 남측은 우선 8월부터 시작하여 금년 중에 8천만 달러(8백억 원)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북측에 제공하게 되었다. 이들 경공업 원자재의 대북 공급은 금년 이후에도 매년 계속된다. 내년 이후의 물량은 합의된 것이 없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대로라면 북에서 달라는 대로 주겠다는 것이 노 정권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북에 제공하는 경공업 원자재도 ‘유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의 상환 능력이다. 상환 능력이 없는 북한의 상환 약속은 하나마나다. 실제로는 ‘무상’인 것이다. 이른바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개발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담겨진 이 ‘경공업 원자재’ 제공은 북이 경의선ㆍ동해선 남북 연결구간에 대한 철도 시험운행 문제를 이용하여 남으로부터 덤으로 짜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도 남으로부터 추가적인 경제 지원을 짜내는 북의 행태는 계속되고 반복되겠지만 북은 이번의 경우 ‘군부’를 팔아서 짭짤하게 한 탕 한 것이다.
경제적 실리를 이처럼 챙겼으니까 김정일의 북한은 느긋한 마음으로 김대중 씨의 평양 길 교통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이제는 정치적 실리를 챙길 차례인 것이다. 아마도 김정일은 예정된 김대중 씨의 평양 길 출발 날짜인 27일에 임박해서 자신의 독단적 결단으로 일견 무산된 것처럼 되어 있는 김대중 씨의 열차 편을 이용한 방북을 허용하는 극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는 그 같은 조치를 취할 경우의 ‘명분’을 이미 확보해 두고 있다. 그와 함께 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낸 파트너인 김대중 씨에 대한 ‘예우’와 함께 김대중 씨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그것이다.
‘수령독재’라는 북한 특유의 독재체제 하에서 ‘군부의 반대’가 김대중 씨의 방북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북측이 ‘군부의 반대’를 이유로 분명히 김정일의 승인 하에 남측과 합의했었을 경의선ㆍ동해선 철도의 남북 연결구간에 대한 열차 시험운행을 무산시킨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북측이 챙기는 경제적 대가를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대중 씨의 평양방문의 극적 효과를 키우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북의 체제에서 소위 ‘군사적 보장조치’란 한 마디로 가소로운 일이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연결된 철도 구간에 대한 시험 운행을 생략할 수도 있고 뒤로 미룬 채로 김대중 씨의 열차 편 방북을 허용할 수도 있다.
2007년 대선의 풍향계였던 5.31 지방선거가 열린우리당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시점에서 분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남의 노무현 정권과 김정일의 북한이 하나의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내년 말에 있을 남한에서의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을 차단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정권이 재창출되도록 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의 열린우리당과 김정일의 북한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평양을 다시 찾는 김대중 씨에게 맡겨 질 역할은 ‘남북 정상회담’의 ‘바람잡이’ 역할이다.
김대중 씨가 ‘남북 정상회담’의 ‘바람잡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위상을 한껏 높여 주는 방법으로 그의 두 번째 평양방문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한 사회에서 김정일에 대한 거부 반응을 누그러뜨리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 여론을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바로 이 같은 고려에 입각하여 김대중 씨의 열차이용 허용 여부에 대한 그의 결단을 내릴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 동안의 선거 역사를 보면 역대의 어느 정권도 선거에 북한을 이용해서 재미를 본 사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시점에서 남북의 정권세력에게 불을 향해 날아드는 ‘하루살이’의 곡예를 무릅써야 하는 ‘동병상린’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의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열린우리당 정권은 역풍의 위험 부담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북한으로부터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한국의 성난 표심(票心)을 달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고갈되어 있다. 반면 김정일의 북한의 입장에서는 내년의 대선을 통해 남한의 친북ㆍ좌파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김정일 독재정권을 연명(延命)시켜 주는 마지막 ‘생명유지 장치’가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共生)”은 자연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끝]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전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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