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6·25
신록이 우거진 6월! 해마다 돌아오는 6월 달이다. 6월이 오면 6·25동족상잔의 비극이 떠오른다. 그리고 영원히 가시지 않는 무언의 상처!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지난날의 악몽 같은 비극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자유 대한민국의 근간이 무너저가는 상황에서 안보 결속을 다짐한다.
50. 6. 25 일요일 새벽 4시를 기하여 38선 전역에 걸쳐 김일성공산당괴수는 적화통일의 야욕에서 전차와 대포 등 중무장으로 불의에 남침을 도발해 왔다. 이때에 남한에서는 안이한 태도로 방심하고 평온한 잠자리에서 세상모르고 잠자고 있었다. 불의에 침공을 당하고보니 속수무책이 였다. 우리국군은 M1소총으로 소련제T-35탱크를 앞세우고 침공해오는 공산군에 대전하기에는 비교도 안되는 열약한 군비로 대전하다보니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면서 6월 28일새벽 침공 3일만에 수도서울이 함락되고 피난민행렬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비극은 시작 되었다.
수원이 함락되고 파죽지세로 밀어닥치는 공산군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 였다. 그리고 7월 5일 급기야 미군이 참전하였으나 전세는 불리하여 대전이 함락되고 대구마저 위기에 처해있었다. 서부전선은 광주, 목포가 함락되고 동부전선은 포항까지 함락 되었다. 대구마저 공산군에게 함락된다면 부산까지는 순식간에 함락될 것이며,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우리국군들은 용감무쌍하게 사력을 다하여 최후의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하여 싸웠다. 아군은 위기일발의 대구북방 낙동강방위선과 서쪽 창영,마산 그리고 영천,안강,구룡포에 이르는 방어진을 구축하고 적의 집중공세를 격퇴하여 사수해 왔으며, 전사상 최대의 격전지로서 피아간의 희생자도 수없이 발생했다.
전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던 중 공산군주력부대는 대구점령을 목표로 왜관 및 다부동지역에서 총공격을 감행했으나 아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하자, 화급히 공격방향을 영천으로 바꾸었다. 50. 9. 4부터 영천으로 주력부대를 총집중 공격을 감행하였다. 영천을 점령하게 되면 경주를 거처 부산을 함락하겠다는 전술이 였으나, 한국군8사단 장병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영천시가를 10일간에 네 차례나 빼기고 뺏는 격전 끝에 공산군을 섬멸하고 대승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세는 역전되어 북진반격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또한 9월 15일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50. 9. 15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UN군과 한국군은 반격에 나섰다. 급기야 공산인민군이 퇴각되고 아군은 진격하여 9월 28일 수도서울을 수복했다. 그리고 10월 1일 38선을 넘어 진격하여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했다. 그리고 선두부대 한국군 6사단 7연대 수색소대가 10월 26일 오후2시경 초산을 지나 압록강변 언덕에 태극기를 꽂아 세웠다. 아군이 압록강 가까이 진격하여 북진통일의 과업이 눈앞에 다가왔었으나 중공군이 개입 반격에 나섰다. 공산인민군이 패주하여 위기상황이 이르자 11월 1일 중공군이 본격적인 공세를 감행하면서 참전하게 되였다. 중공군 30만명의 병력이 투입하여 인해전술로 반격해오자 전세는 다시 악화되어, 51. 1. 4 서울이 다시 함락되고 1,4 후퇴가 이루어졌다.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서 미·중 전쟁의 체제가 되었고, UN의 많은 나라들은 3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되는 것을 염려하여 휴전을 제안했다. 그리고 남침전쟁을 사주한 소련도 미국에 대하여 휴전을 제기함에 따라 미국은 휴전협상에 임하게 되었다. 미국은 휴전교섭의 계기를 필연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 때를 즈음하여 누차 화평제안을 기대를 걸었다. 수차례의 협상 끝에 53. 7. 27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조인이 이루어지고 개전 3년 1개월 만에 정전이 되었다.
김일성이 도발한 남침전쟁 3년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인명손실도 600만명이라 한다. 이러한 비극적인 살인마 원흉 김일성과 김정일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사죄하고 반성의 기미는 없이 적반하장으로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한 채 핵무기증강 등으로 주변국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북한김정일 공산군주독재에 대하여 김대중정권에서 노무현정권에 이르기 까지 햇볕정책이란 명분으로 응분의 대가와 변화도없이 무한정 지원하고 있는 것은 북한공산정권체제를 유지해주는 결과이며 이적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경제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 또는 “김정일정권이 핵무기보유가 일리가 있다.”는 등 석연치 않는 언행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지원사업은 북핵개발과 핵무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처사가 아닌가 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한다. 그러나 잊혀저가는 국민인식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현충일은 자유와 국가를 위해서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르고, 희생을 당한 그들에 대한 감사와 은혜로 보답할 수 있는 예의가 국민의 도리라고 본다. 해마다 국립현충원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추념식이 열리고 있으나 연례적인 1회성 행사일 뿐 그 들에 대한 실질적인 예우는 미급하기 짝이 없다. 퇴색해 가는 보훈정책과 무관심속에서 6·25는 점점 잊혀저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 국가유공자가 홀대를 받아야하는 것일까?
좌파정권이 등장하면서 6.25전쟁을 미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통일전쟁이라고 아쉬워해야하는 진보좌파,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희생된 참전용사들을 미국의 용병이라고 비웃는 진보세력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뿐만 아니라 “6월에 6.25전쟁만 있느냐”며 “6.10항쟁도 있고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도 있으니 6월은 ‘보훈의 달’이 아니라 ”민중항쟁기념의 달“로 부르자는 집단이 노무현정권의 울타리이자 민주투사로 대접 받고, 청와대에 초청받아가는 세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과거 지하에서 암약하던 친북좌파(이적행위자)가 지상으로 부각되어 민주혁명유공자로 둔갑이 되는가 하면 우리민족의 살인마 김일성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적단체 운동권 386세대들이 현 정권요처에서, 또는 의정활동으로 주도권을 장악하는 현실에 이르게 되었으니 자유대한의 앞날이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미군철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여나 베트남처럼 몰락되지 않나하는 의구심 금할 길 없다.
6월을 맞이하여 6.25전쟁의 아픔과 상처는 우리민족사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그 비극의 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좌파정권이 들러서면서 국가안보와 자유 대한민국의 국기(國基)가 흔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안보역군들은 다시 한번 결속을 다짐하면서 반드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물러주어야 한다. 더욱이 6.25를 모르는 전후세대들에게 일깨워주고, 북한김정일 공산당이 주장하는 환상적인 민족자주와 민족공조를 앞세우고 “우리민족끼리”란 술책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 무엇이 자유 대한민국의 국익인지 심사숙고해 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친북좌파세력들을 이 땅에서 배척하는 것만이 우리 자유대한이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다행히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나타나듯이 좌파세력여당의 참패는 남한사회가 이념전쟁의 와중에서 친북좌파의 정체를 파악하고 “공산주의는 안된다. 북한식연방제 적화는 안된다.”는 국민적 정서가 광범하게 확산된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내년 대선에서도 기필코 공산좌파세력들을 이 땅에서 배척함으로써 자유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는 바이다. /2006. 6. 7 백마 씀
** 이 글은 코나스 독자가 '백마'라는 ID로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 관련기사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