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 그 실체를 벗긴다 ①
I. 균형자의 역사적 어원과 의미
2005년 3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60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질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는 이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 후 한달 동안 언론에서 과연 한국이 동북아시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구에서 등장한 'balance of power'라는 개념이 구한말 조선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균세'(均勢)로 번역되면서 아시아에 등장하게 되었다. '균세'는 용어는 청나라에서 서양서 한역을 맡았던 윌리엄 마틴(William A. Martin)이 헨리 휘튼(Henry Wheaton)의 『국제법요강』(Elements of International Law)을 번역한 책 『만국공법』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구한말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金弘集)이 일본에서 가져온 청국인 황준헌(黃遵憲)이 강조한 러시아의 남진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동양 3국(한중일)이 수호(修好)해야 하며, 미국과 연합하는 것(親中國 結日本 聯美邦) 등의 내용을 담은 『조선책략』(1880)에도 '균세'는 용어가 발견되고 이 책을 통하여 조선에는 '균세'는 말이 오늘날의 '세력균형' 같은 의미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균세'라는 표현 대신에 일제시대에는 '세력균형'이라는 용어가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균형자'(均衡者)라는 말은 '균세'에 나온 말이다. '균'은 국가들 사이의 힘을 어느 한 국가로 치우침이 없이 평형하게 맞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형'은 저울대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균형자'는 저울대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면서 저울대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국가를 말한다. 물론 균형자의 목적은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균형자와 유사한 어휘로서 통제자(controller) 혹은 중재자(mediator)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II. 역사적 사례의 성공과 실패의 경우
균형자로서 나름대로 성공한 경우로 대영제국을 들 수 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 시절 영국의 외교정책은 전형적인 '균형자'의 모습이었다. 당시 영국은 유럽 대륙의 국가들과는 평시에는 동맹을 맺지 않는 고립주의 노선을 추구했지만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국가가 나와서 유럽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경우 여타 국가들 편에 서서 개입하여 유럽의 세력균형을 회복시키는 균형자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서 프랑스가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협하자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연합하여 대불동맹을 결성하여 결국 나폴레옹의 프랑스제국을 붕괴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영국은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가 이끄는 반동적 보수주의 성격의 비엔나체제(1815-1848)에 초연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륙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 식민지 경영에 주력하였다. 그 이후 영국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상대로 연이어 통일전쟁을 벌였을 때, 중립을 지키면서 독일제국의 성립을 방조, 묵과하였다. 그 이유는 통일된 독일제국이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와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세력균형을 이룰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영국의 판단은 비스마르크의 실각이후 독일제국이 노골적으로 군비경쟁과 해외 식민지 경영을 추진하면서 영국의 제해권과 해외식민지들을 위협하자 독일제국의 팽창주의를 영국의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수단의 파소다사건(Fashoda, 1898)이후 프랑스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 이후 러시아와도 접근하여 영․불․노의 삼국협상을 완성시킴으로써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3국동맹에 저항할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대영제국이 고립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자유롭게 동맹국을 선택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은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이점과 제해권을 장악했으므로 타국이 감히 넘보지 못하여 균형자로서의 역할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영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초에 들어서면서까지 유럽의 세력균형의 중심축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19세기 게르만족의 통일을 달성한 저 유명한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통일된 거대한 독일제국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민족갈등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발칸반도의 중재자로 자청하여 여러 차례 국제회의를 베를린에서 주최하여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등 동유럽국가들의 이해관계를 공평하게 중재하려 노력했지만 러시아의 반발을 사면서 그의 뜻대로 되지 못했다. 20세기초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일전쟁의 중재자로 자청하여 뉴햄프셔에 초청하여 포츠머스 조약(1905)을 성사시켰지만 영국, 미국, 러시아가 일본의 조선 주권을 침탈하는 것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거중 조정하고 말았다. 카터 대통령은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분쟁을 조정하려고 캠프데이비스 협정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 협정의 효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약소국가로서 균형자 역할을 감당하려다가 실패한 경우의 대표적인 경우가 1차대전에서 이탈리아의 외교와 1930년대 폴란드의 경우이다. 원래 이탈리아는 삼국동맹에 가담했으나 1차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지켰다. 전쟁의 중반기에 이탈리아는 영토의 할양 등 대가를 약속 받고서 삼국협상에 가담하였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이탈리아의 외교관들은 승전국이 연합국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약간의 영토를 얻었지만 원한만큼 얻지 못하고 실망한 체 귀국했다. 이탈리아는 약삭빠른 국익을 취한다는 명분하에 전시에 동맹국을 교체한 결과 전후 패전국들은 물론 연합국들로부터도 불신감을 사서 파리강화회의에서 왕따를 당헸던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는 더 비극적이다. 30년대에 폴란드는 강대국 러시아와 독일의 틈바구니에서 협공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에 접근하면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에 맞서면서 균형자 역할을 감당하려고 하였으나, 원체 국력이 약하여 1939년 9월 독일과 소련의 공동 침략에 의해 처참하게 국토가 절단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여기에서 얻는 교훈은 이렇다. 균형자 내지 조정자의 역할은 거의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는 강대국들이 하는 것이고 단기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성공적인 조정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약소국의 경우 균형자의 역할은 거의 처참하게 실패로 끝났음은 물론 영토의 유린과 주권의 상실로 이어졌었다는 점이다. 요약한다면, 균형자 전략은 정책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제조건으로 여타 국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konas)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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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균형자와 주체없이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같은 외관상 균형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싶다. 전자는 절대우위의 power를 가진자가 할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쓸개에 붙었다, 간에붙었다하는 논리에서 지탱하다가 속국이 되어버린다. 과연 현정부는 어느쪽에 속할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
2006-06-20 오전 9:3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