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리호의 전사들
2002년 오늘 서해상에서 참수리 357호가 북측 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배가 인양되어 전시되자 국방부 주선으로 안보전문가 팀의 일원으로 직접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그대로 함상에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전사한 해군 장병 6명의 얼굴이 새겨진 초상 조각을 어루만져 보며 참혹했을 전투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북방한계선(NNL)을 넘어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 북측 배를 가로막기 위해 참수리 357호는 배의 옆구리로 적선의 진로를 막는 ‘차단기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차단기동은 상호 간에 배의 옆구리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상대방이 절대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결코 시행할 수 없다.그런데 북측의 배가 옆으로 방향을 바꾸며 돌리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민군들이 포탑을 돌려 조준하는 것이 우리 장병들 눈에 보였다. 순간 적진의 85㎜포가 불을 뿜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던 남측 배의 함교(조타실)를 명중했다. 남측과 같은 전자조준장비를 갖추지 않아 수동으로 조준하는 북측 함정이 미리 공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통제실인 함교가 무력화되고 포탑들이 차례차례 가격을 당하면서 우리 측은 대응 사격을 할 수 없게 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왼손을 포탄에 잃은 채 오른손만으로 M60 권총을 발사하며 투혼을 보인 권모 상병, 치대에 다니다가 의무병으로 승선하여 장병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다가 포탄에 그대로 노출돼 고통을 받다 숨져 간 고 박동혁 상병, 그리고….
박동혁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애통함을 담아 편지를 썼다. 부상당하지 않은 부위는 머리와 왼손뿐이었던 아들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기도할 뿐이었다. 다리가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왼손으로 엉덩이쪽을 만지며 흐느끼던 아들을 그해 가을 하늘나라에 보낸 어머니는 다시 절망했다.
새해가 밝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했지만 최고의 대우와 예우를 약속한 당국은 전화는커녕 편지 한 통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 주둔 미 사령관의 위로 편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과연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치밀어 오르는 분통을 터뜨리며 어머니는 절규한다.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니.”
해군 장교를 지낸 친척에게 “수영 잘하시겠네요” 했더니 “해군이 수영해야 되면 다 끝난 것이지”하셨다. 서해 교전의 처절함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면서 깔끔한 제복을 입고, 수영을 잘하는 멋쟁이로 해군을 동경하고 있었던 내가 심히 부끄러웠다.6월 호국의 달을 맞아 분단된 현실에서 북방한계선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출처: 국방일보)
안인해(고려대 교수·국방부 정책자문위원 yhahn@korea.ac.kr)
- 관련기사보기
-
무고한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 이후 정부의 NLL 사수 의지가 더 공고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북측은 어떻게든 NLL 문제를 확대시키겠다는 전술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NLL을 북한에 양보해선 안 된다.. 죽은 장병들이 용납치 못할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
2006-06-29 오전 10:1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