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들의 용어혼란전술에 대한 대처법 ⑥
"진보·강성대국·김일성민족·광폭정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자유와 부의 혜택을 만끽하면서도 좌익논리에 심취해 있는 남한의 좌파 지식인들···. 그들은 현란한 혀놀림과 붓끝으로 북한이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사용하는 용어들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남한의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많은 대중들은 그들의 용어혼란전술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북한은 용어 하나에도 혁명성을 불어넣어 대남 심리전과 통일전선전술로 활용한다. '민족', '자주', '평화' 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런 용어들도 북한은 우리와 다른 해석을 한다. 따라서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그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 <코나스>는 북한과 좌익들이 주로 사용하는 35가지 선동 용어들을 골라 시리즈로 연재함으로써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소개되는 용어는 북한문제 전문가 유동열(柳東烈) 박사와 북방문제연구소장 임채욱(林采郁) 박사가 설명·해설한 것으로 월간조선 홈페이지에 실린 글이다. <편집자>
11. 진보
진보는 어의(語義)적으로는 ‘좀 더 발전되는 상태’를 말하지만 이념적 의미를 부여하면 진보된 사상과 제도를 지향하는 것이 된다. 이런 뜻에서 좌익진영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진보라고 하고 그들 진영을 진보진영이라고도 한다.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따라 인류 역사는 원시 공산사회에서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사회주의ㆍ공산주의사회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가장 진보된 사회는 사회주의ㆍ공산주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ㆍ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진보적 인민들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광복 직후 김일성이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한 것을 다른 민주주의와 구별하려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일도 있는데 한마디로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국가정권에 실시된다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앞서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단계에 적합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12. 강성대국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위해 세운 전략목표다. 첫 언급은 노동신문 1997년 7월22일에 나타나는데 1998년 8월31일 대포동 미사일(북한은 ‘광명성 1호’로 주장) 발사를 앞두고 노동신문 8월22일자에 정론으로 강성대국론이 등장한다. 이어 1999년 새해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 건설이 주제로 된다.
강성대국 건설은 구체적으로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치사상강국 건설을 통해 군대를 튼튼히 세워 군사강국을 만들고 그 군력(軍力)으로 경제건설을 추진해서 강성대국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은 이미 건설되었고 경제강국 건설만이 당면과제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경제건설에 힘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난 속에서 강성대국을 부르짖는 것은 사실상 실현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를 제기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체로의 견해는 김일성 사후(死後) 계속된 ‘유훈통치’의 종식을 알리면서 김정일로서는 주민들에게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전망 제시가 필요한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대외적으로 체제붕괴론을 무력화시킬 필요성이 시급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3. 김일성 민족
북한이 19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주민 또는 남북한 동포와 해외동포 전체를 일러 부르는 명칭이다.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김일성 사망 100일에 즈음해서 김정일이 “지금 해외동포들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이라고 하고 있다”라고 한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의 담화에서였다.
이 담화에서 김정일은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말했다. 그 뒤 김일성 민족은 공식행사나 보도매체를 통해 일반화되었는데 공식행사는 1994년 12월15일 북송실현 35주년 기념보고대회에서 장철 연설문에서 등장한다.
보도매체의 사용 예를 보면 “오늘 우리 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 민족이고, 현대 우리나라는 수령이 세운 김일성 조선”(‘평양방송’ 1995년 1월18일), “이 땅에 김일성 민족의 융성과 번영의 새 시대를 펼치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조선중앙방송’ 1997년 10월8일) 등이다.
김일성 민족은 북한 소설에도 등장한다. 단군릉 발굴과 개축을 주제로 한 단편 ‘2000년의 분출’(한익훈, 조선문학 1995년 8월호)에서 단군릉 발굴의 주역이었던 강진국 박사(소설 상의 주인공으로 김일성과 동년배의 황해도 출신 원사ㆍ박사ㆍ교수. 실제인물의 모델인지는 불분명)는 이렇게 읊조린다.
“민족사의 시원을 찾게 된 지금에 와서 나는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신 김일성 동지는 명실공히 민족사의 뿌리를 찾아주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원이시며, 우리 인민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긍지 높은 김일성 민족이라고….”
멀리 단군으로부터 이어진 민족사의 중시조가 김일성이란 것에서 끝나지 않고 ‘김정일 민족’, ‘태양민족’이란 말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정하고 그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를 정했을 때 북한방송은 “우리는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 우리는 태양의 나라에서 사는 김일성 민족, 김정일 민족. 태양이 영원하듯 김일성 민족, 김정일 민족은 영원무궁하리라”고 외쳤다(‘평양방송’ 1996년 7월8일).
북한의 김일성 민족 강조 배경은 단군으로부터 비롯된 민족사의 계승을 과시하면서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14. 광폭정치
각계각층의 모든 인민대중에게 사랑과 믿음을 안겨준다는 폭넓은 인덕정치를 말한다. 이에 대한 김정일의 말이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각계각층의 인민들에게 차별 없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는 폭넓은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당의 인덕정치를 광폭정치라 한다.”
이를 보면 광폭정치는 인덕정치와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광폭정치는 본질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의 정치, 인덕정치이다.
광폭정치가 처음 나온 것은 1993년 1월28일자 노동신문을 통해서이다. “인민을 위한 정치는 통이 커야 한다” “노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폭이 넓어야 한다”는 등의 말이 시사하듯 통이 크고 폭이 넓은 정치를 말하는데 주체사상탑, 개선문, 5․1 경기장 등의 건조물을 광폭정치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광폭정치는 김일성에 의해 실시되었고 김정일에 의해 계승되었다. 광폭정치가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어도 북한 사회주의는 끄떡없이 전진하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은 광폭정치를 김정일의 치적으로 만들어 줄 요량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일 동지는 혁명선배들을 존중하는 아주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정일 동지는 비범한 령도력으로 혁명과 건설을 현명하게 령도하고 있습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konas)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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