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비판
주체사상의 성립과 내용
주체사상은 북한의 핵심 통치이념으로서 북한정치체제의 규범적 지침이자 지도적 강령으로 기능한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주민가치 및 생활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국가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파급시킨다. 조선노동당의 당규약 전문은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1998년 개정헌법은 제3조에서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주체사상이라는 명칭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에 접어들면서이며,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당대회를 통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동등한 위상을 점하며 조선노동당의 공식 이념으로 채택된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떨쳐내고 독자적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주체사상은 초기 북한정권의 이념적 강령인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의 부분적 이탈을 의미한다. 사회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전통적 맑시즘의 유물론적 시각을 수정함으로써 주체사상은 상부구조의 주요 구성체인 인간의식이 사회변화와 역사전이의 과정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조한다. 즉, 주체사상은 경제적 생산관계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의 의식과 행동을 주도적으로 결정한다는 견해를 수정하면서, 인간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위에 의해 경제구조와 사회와 역사가 변화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인민대중의 주체성을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교시를 북한적 특수 상황 속에서 변환 적용시키고자 하는 주체사상은 일견 북한 사회주의의 창의성과 동적 발전력을 제고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주체사상에 민족주의적 유산이 깊게 투영된 데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험이나, 한국동란 이후 생성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에 대한 공포와 반감, 그리고 소련과 중국 등 거대 우방국과의 비대칭적인 협력관계의 불편함 등이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요인들은 상호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자신들이 실제적 혹은 잠재적 적국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이른바 ‘포위 피해의식(siege mentality)’을 생산하며, 이러한 의식의 반작용이 바로 민족주의의 강조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편, 민족주의와 더불어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이탈시키는 또 다른 결정적 변수는 유교적 사상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래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적 전통은 강력한 절대권력의 통치자에 의한 후원주의적(paternalistic) 통치체제가 북한에 정립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은 스탈린주의의 특성과는 다소 상이한 형태로 절대권력의 일인통치를 지원하는 주체사상의 문화적 하부구조를 북한사회에 생성시키고 있다.
주체사상의 형성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초기에는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에 대한 민족주의적 대응의 성격을 강하게 표출하며 북한인민의 대외적 주체의식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후르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이 소련 및 중국 내 수정주의자들에 의한 일인독재지배체제 비판을 촉발함에 따라, 이 같은 비판의 유입을 대내적으로 절연시키며 북한의 독재지배체제를 옹호하는 데 주력한다. 대외적으로는 중·소간 교조주의자 대 수정주의자의 이념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독자적 생존을 위해 중·소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외교전략적 대응이 정치이념적으로 표출된 측면도 엿보이고 있다.
1960대 이후 북한은 김일성 개인우상화에 치중하며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로의 이론적 변환작업을 시도한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적 인간형으로 김일성 주석의 소년시절이 제시되는가 하면, 인간에게 육체적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는 존재가 바로 김일성 수령이라는 우상화 논리가 전개된다.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인 인민대중의 정점에 수령이 존재하며, 수령은 인민대중을 인도하는 지적 영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른바 ‘수령론’은 김일성 개인우상화의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수령론’의 내용은 인민대중들이 개별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상호 극복하는 데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수령의 올바른 지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공식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세습수령에 대한 지속적 충성심을 강조하는 작업이 병행된다. 주체의 위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만큼 대를 이어가며 주체의 위업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권 내에서도 유래가 없는 부자세습의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습전제왕조에 대한 기존의 비판 등이 형태를 일부 변형시키는 상황은 자연스런 귀결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동구 사회주의권과 소련이 연속적으로 붕괴함에 따라 이에 북한은 위협을 느끼고 주체사상의 논리적 보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노력한다.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전면에 내건 북한의 주체사상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이미 붕괴한 동구권 사회주의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설명하고 북한 사회주의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키는 데 주력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래 주체사상은 ‘김정일주의’로의 전환을 부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1996년 이래 간행되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사상리론」시리즈는 주체사상의 김정일주의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심각한 경제난 극복에 치중하는 현실에서 북한사회 내의 실리적 및 실용적 사고의 확대는 이념적 지배력을 수행하는 주체사상의 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근년 들어 주체사상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대신 ‘선군정치’의 기치가 활발하게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을 대체하며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부상할 것인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선군정치’는 주체사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정권의 통치 슬로건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독자성을 확보하는 통치이념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구성과 내용 등의 측면에서 현저한 진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극히 미약해 보인다. 반면, 북한의 경제회복이 이루어질 경우 주체사상은 그 이념적 지도력을 재확보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변화하는 내외적 환경에 따라 내용을 끊임없이 부분적으로 재구성해 온 주체사상이 향후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를 시도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주체사상의 실효성과 한계
북한의 주민들은 학습과 교화과정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일상화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야말로 혁명적 사회 건설의 기초를 이루며, 주체사상의 일상화는 북한이 처한 여하한 난관도 극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식 사회주의’의 승리를 가져올 토대라고 주창한다. 주체사상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에 관한 이론과 사회개조, 자연개조, 인간개조에 관한 이론이 전면적으로 체계화되고 완성된 공산주의 혁명이론”이며 무오류의 사상으로서 그 현실적 실천성을 확보한 사상임을 강조한다.
주체사상이 지닌 북한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실로 절대적이고도 전범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사상도 1990년대 중반 이래 지속되는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그 실천적 유용성이 저하되면서 언급의 빈도가 축소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이후 ‘붉은기 사상’, ‘사회주의 강성대국건설사상(강성대국론)’, ‘선군정치론’ 등 경제난국을 대처하고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행동강령적 성격의 슬로건들이 주체사상을 대신하여 정치적 기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유일한 최고지도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의 공식적 위상과는 별개로 실질적 정책지침으로서의 실효성 상실과 이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 저하라는 일부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극심한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감도 일부 확대되는 경향이 엿보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대인민 생필품 수급체계에서 사실상 소외된 개인들이 나름대로의 자기생존의 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정당화 논리로 주체의 의미를 활용하는 풍조도 북한사회 내에 나타나고 있다. 주체의 기치가 내실없는 외형적 슬로건으로만 지속되는 상황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사회 내 불신과 비판의 대두는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가 북한의 붕괴 우려에 대한 효율적 대응기제로 작동하는 데 한계를 지니는 것은 명백하다.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우선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지의 절대성과 유물론적 경제결정주의가 공존하는 이론 구성에서 과연 논리적 일체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는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간의 불명확한 상호 연계성도 추가적 논란을 구성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연대주의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간의 논리적 상충여부 등 주체사상을 둘러싼 여러 이론적 질문들은 체계적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민족주의, 유교사상, 유기체적 전체주의, 인간중심의 유심론 등 상충될 수 있는 이념들의 난삽한 집산체로 구성된 주체사상에 대해 명쾌한 논리적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본원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체사상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비판은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기치가 개인의 권력독점 및 우상화를 위한 사실상의 정략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북한이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위기에서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체로 확인시키고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독려함으로써 위기의 극복을 시도하는 주체사상이 일인지배체제 강화와 우상화라는 왜곡된 용도도 차용되면서 주체사상은 그 진실성과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수령론’의 근저에서 인민대중은 주체가 상징하는 진정한 주인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고 수령의 지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 사회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자세습화를 추구하면서 주체사상은 주인 잃은 의식과 행동의 강령으로 표류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초법적 통치이념의 위상을 현재 점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신격화된 김일성 주석에 의해 창시된 것으로서 그간 북한체제의 존립자체를 대변하는 이념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체사상이 내적 논리상의 오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외적 변화에 대응하는 데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내외적 한계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21세기의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며 자국의 이익을 지켜가는 국가이념체계로서의 주체사상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본원적 해법은 북한사회에 내재하는 총체적 경직성의 탈피일 것이다. 그 같은 경직성 탈피의 첫 번째이자 또한 마지막 과제를 구성하는 것이 결국 주체사상의 해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konas)
장의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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