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제주여! 싱가폴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자
軍과 상생으로 평화와 미래를 보장받아야
21세기 제주여! 싱가폴을 제대로 벤치마킹하자
1. 인큐베이터속의 미숙아 싱가포르 - 갑자기 찾아온 독립
"내가 마흔 두 살 되던 1965년에, 200만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독립국가 싱가포르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서른여섯 살이던 1959년에 나는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총리직을 맡아 왔으며, 1963년 9월에 우리는 말레이시아연방에 합류했다. 그러나 싱가포르과 말레이연방정부 사이에는 몇 가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65년 8월, 갑작스럽게 우리는 독립국가로서 홀로 서게 되었다. 우리는 내일의 운명에 대한 아무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말레이 연방 탈퇴를 강요당하고 독립국가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이 말은 리콴유 수상의 자서전 '일류국가의 길(From Third World to First)' 첫 장에 나오는 말이다. 1867년 영국이 싱가포르를 식민지화한 후 100년만의 독립이었다. 싱가포르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마치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2. 리콴유 수상의 일류국가를 위한 길 - 제주도가 벤치마킹해야…
리콴유 수상의 자서전을 보면 신생독립국 지도자로서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 그리고 21세기 제주의 평화번영을 위해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필자는 리콴유 수상의 행적과 싱가포르의 발전과정을 통해 제주발전을 위한 올바른 판단을 제공함으로써 21세기 제주의 평화번영에 진심으로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From Third World to First
그는 최우선적으로 싱가포르를 인근의 나라들이 쉽게 넘보지 못하게끔 안전보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다음 산업화와 자유무역으로 싱가포르를 오늘날 최고 경쟁력이 있는 국가로 재탄생시켰다.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싱가포르의 모습은 평화의 섬을 표방하는 제주도에게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3. 맨손으로 시작한 군대 만들기- 독립국가로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군대
이 제목은 리콴유 수상 자서전의 둘째 장에 나오는 제목이다. 군대는 국가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존재이다.
싱가포르는 작은 섬에 불과한 도시국가이지만 76%의 중국인, 17%의 말레이시아인, 7%의 인도인 등으로 구성된 다인종 다문화사회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연방으로부터 탈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인종구성에 있었다. 말레이 정부가 표방한 말레이인 우선 정책은 중국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싱가포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회적 부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던 중국인에 대한 말레이인의 반감도 싱가포르에겐 위협 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복합적 요소로 독립한 후 국가로서 자신의 안위를 책임질 군대의 보유는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신생독립국이던 싱가포르에게는 여력이 없었다. 리콴유는 영국에 군대 창설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영국이 싱가포르에 주둔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싱가포르의 안전보장책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말레이시아의 눈치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군을 모델로 싱가포르 군 육성
리콴유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과 암중모색을 했다. 이런 리콴유 수상의 국방에 대한 의지를 당시 싱가포르 국방장관이던 켕쉬는 국방논문에 이렇게 표현했다.
"싱가포르와 이웃나라들 간의 인구 대비 격차에 우리 스스로를 최면에 걸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장 군대의 전투력이지 인구의 규모가 아니다. 징병제도를 도입하여 5년쯤 뒤에는 우리도 예비군을 동원하여 15만 군대를 전투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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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싱가포르 국방장관 켕쉬의 개념은 이스라엘 방식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스라엘과 협조했다. 1965년 11월 비밀리에 ‘자크 엘라자리’ 대령이 이끄는 소부대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 모두가 독자적인 군대창설을 위한 리콴유 수상의 몸부림이었다. 리콴유 수상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군대창설의 과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전통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정서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국민정신을 재교육 시켜야만 한다."
‘좋은 강철은 못이 되지 않고 훌륭한 젊은이는 군인이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리콴유 수상은 모든 중등학교에 군사훈련단과 경찰훈련단을 만들도록 했다. 리콴유 수상이 목표로 하는 군대는 스위스나 이스라엘 같이 유사시 거대한 시민군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군대를 만들기 위하여 리콴유 수상은 10년을 목표로 잡았다.
지도자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 인재 육성과 국방력의 결합
아시아에서 지도자 교육을 가장 잘하는 나라는 싱가포르이다. 국가경쟁력 지수도 세계6위로서 아시아 국가 중엔 가장 높다. 그 배경은 바로 교육을 통한 지도자의 육성이다. 중학 입학 과정에서부터 미래의 지도자는 체계적으로 육성된다.
우수한 학생들은 부모가 잘 살든 못 살든 중학부터 학비를 안 내는 것은 물론 국가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다. 최우수 장학생은 ‘국방부 장학생’인데, 이들 전원을 외국으로 보내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게 하고 군사훈련을 시켜 장교로 만든다. 군인으로 그대로 남는 수도 있지만, 제대해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30대에 중앙 정부의 고위직에 발탁된다.
이들은 끝없는 공부와 평가, 실습을 통해, 지식을 쌓을 뿐 아니라 윤리의식과 애국심도 고양시켜야 한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가차 없이 탈락한다. 이들의 능력은 영국 옥스퍼드 장학생 이상이다.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은 이 과정을 거쳐 30대에 별을 달았고 그 후 고촉동에 이어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에 대한 싱가포르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4. 영국군 철수를 막기 위한 리콴유의 노력 - 원조보다는 안전보장이 중요하다
리콴유 수상은 자서전에서 영국정부와의 일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66년 10월 데니스 힐리는 켕쉬와 내가 싱가포르에 영국 전투기를 넘겨 달라고 요청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에게 손가락을 흔들면서 ‘영국군대가 당신네들을 지켜줄 것인데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느냐’고 말했다."
리콴유 수상은 군대창설 작업 중에도 이렇게 영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확인을 잊지 않았다. 국가 안전보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대창설과 무기구매에 부정적이던 영국은 다른 경제적 지원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리콴유 수상이 거부했다. 리콴유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싱가포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안전보장이다"
몰타에서의 충격 - 리콴유 생각을 바꾸다
1967년 영국이 해외 주둔지 철수를 언급한 이후 리콴유는 영국기지 철수 후에 대해 구상하기 위해 1967년 몰타를 방문했다. 몰타는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로 영국 해군기지가 있었다. 리콴유는 몰타가 영국 해군기지 철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벤치마킹하러 들렀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리콴유가 방문한 시점은 중동에서 6일 전쟁이 발발하여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 시점이었다. 이렇게 되자 몰타의 조선소 역시 폐쇄되고 말았다. 그러나 몰타는 태평천하였다. 왜냐하면 영국이 철수하면서 약속한 경제지원금으로 먹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리콴유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선에 가까운 무상지원은 국민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것과 무역로의 확보, 경제적 자립기반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영국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또다시 수에즈 운하가 끊겨 조선소가 폐쇄된다면 몰타는 더 이상 살 수 없으리라는 것을 리콴유는 보았다. 몰타에서의 충격은 리콴유 수상에게 경제적 자립을 위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했다. 그 핵심은 바로 산업화였다.
5. 영국의 조기 철수- 해군기지의 영향력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 계기
1968년 1월, 영국은 1971년에 싱가포르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원래 1975년경을 언급했으나 시기가 앞당겨졌다. 그 배경은 영국의 경제 상황이었다. 영국의 철수를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라진 영국의 철수는 싱가포르 경제에 분명한 마이너스였다.
자서전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1967년~1971년 당시 싱가포르 GDP의 20%를 차지하던 영국기지의 주둔비 감소는 싱가포르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영국군 기지는 3만개의 직접적인 일자리와 4만개의 보조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리콴유는 몰타방식의 지원약속을 거부했다. 그것은 영국에 대한 반발이 아닌 나태함에 대한 경계였다. 이는 다음 연설에서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유약한 사회를 원했더라면, 우리는 이미 멸망했을 것입니다. 유약한 국민은 달콤한 해결책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지만, 그런 해결책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에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물조차도 돈을 내야 합니다…<중략>…영국이 물러난 후에도 오랫동안 싱가포르는 산업, 교역,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릴 것입니다."
이 발언은 영국을 적대시한 것이 아니었다. 리콴유 자신도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영국 조야의 인사와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연설은 국민의 단결을 호소한 것이었다.
무엇이 변하였나? - 영국군에서 싱가포르군으로 주인이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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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싱가포르 군으로 교체되었으며 영국 해군기지는 싱가포르 해군 기지로 변했다. 그리고 일부는 산업화시설로 탈바꿈 했다.
무엇이 변하였나? - 민간산업시설과의 공존으로 상생을 택하다
영국 해군의 조선소는 민간 조선소로 바뀌어 싱가포르에 기항하는 선박의 수리와 정비로 외화를 벌어들였다. 싱가포르 해군을 위한 조선소 역할도 겸했다. 영국군이 사용하던 텐가 공군기지는 싱가포르 공군의 주력기지로 바뀌었고 창이공군기지는 더욱 확장돼 창이 국제공항으로 변했다. 영국 철수에 미리 대비한 싱가포르는 영국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6. 생존을 위한 결실 - 경제적 자유와 부는 항구로부터
싱가포르의 경제 거인화는 바다와 기름에서 비롯되었다.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 동양과 서양을 이어 주는 허브다. 현재 물동량은 로테르담에 이어 세계 2위다. 싱가포르를 거치는 항로도 3백 개나 된다. 이 뱃길로 세계 80개국 300여 개 항구들과 이어져 있다.
산업 없이 발전 없다 -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석유제품 수출국
흔히 싱가포르 하면 중계무역항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장 싱가포르다운 산업은 정유 공업이다. 싱가포르는 로테르담과 미국 휴스턴에 이어 세계 3위의 정유센터다. 정유 능력은 한국의 약 두 배인 하루 110만 배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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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이 근방을 내려다보면 수십 개의 오이를 띄워 놓은 것처럼 슈퍼탱커들이 묘박지에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말라카 해협의 탱커 통항량이 많은 이유중 하나도 싱가포르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정유 시설이 부족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원유를 정유해 주는 임가공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석유류 제품 거의 전부가 수출된다.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 수출 상품이다. 싱가포르엔 아시아에서 하나뿐인 석유 현물 시장도 있다. 동아시아 석유 개발 현장의 야전 사령부이자 석유 정보의 집합점이기도 한 것이 싱가포르이다.
당찬 국가 싱가포르의 비밀 - 경제력과 국방의 결합
싱가포르는 이런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위스와 같은 고슴도치식 국방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규군 5만 명에 예비군은 25만 명이나 되는 작지만 당찬 나라, 큰 짐승도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 싱가포르인 것이다.
"당신네들의 가상적국이 어디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 군대에서는 어느 나라가 가상적국이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우리 이외의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싱가포르의 평화번영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물리적 힘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이다.
7. 싱가포르가 21세기 우리 제주도에 던져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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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잠재력의 원천은? - 배타성과 편견을 넘어서 개방과 포용의 실용주의에 있다.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싱가포르지만 종교 인종 등 여러 부분에서 다문화 사회이다. 이런 이유로 싱가포르는 독립 초기 인종적 갈등과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태생적 갈등요소를 리콴요는 매우 현명하게 극복했다. 갈등 요소를 공동의 목표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 원천은 편견과 배타성을 극복한 포용적 실용주의에 있다.
포퓰리즘적 타협보다는 국익실현의 일관성이 싱가포르에 투자를 하게 하다
이런 개방과 포용적 실용주의는 넓은 안목과 장기적 비전을 가진 지도자의 세계화 능력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 리콴유는 포퓰리즘과 타협하지 않고 국익실현의 일관성을 유지해 나감으로써 세계 투자자를 싱가포르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시장경제에서 사람과 돈이 몰려오게끔 하는 필수적 요소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리콴유가 이것을 실현하는데서 철저히 배격한 것이 포퓰리즘이다. 때문에 한때는 서방언론이 독재자라고 비난했던 리콴유가 오늘날 싱가포르에서는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구호와 환상만으로는 살 수 없다.
싱가포르와 같은 평화번영은 현란한 구호와 막연한 환상으로는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자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안전보장책을 만들었고 번영을 위해서 산업화와 무역을 선택해 성공시켰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는 모토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있다. 싱가포르 발전의 핵심적 기둥이던 가치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군사력은 평화라는 이름 앞에 무력화되고 있고 산업시설은 환경보호라는 명목으로 제약받고 있다.
싱가포르를 제대로 벤치마킹 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리콴유라면 제주해군 기지 유치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발 벗고 뛰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와 필리핀 그리고 평화의 섬 제주도
싱가포르와 필리핀은 공통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공통점이라면 싱가포르엔 영국의 해군기지가, 그리고 필리핀에는 미군의 해․공군 기지가 있었다. 두 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철수한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차이가 크다. 싱가포르가 국제화를 통한 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해외 자본과 산업을 적극 유치해 국가발전에 이용한 반면에 필리핀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합의도출보다는 편견과 배타성으로 점철된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오늘날 가정부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대변하고 있다.
이 두 나라의 모습에서 21세기 평화의 섬을 표방하는 제주도는 벤치마킹 대상이 싱가포르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작지만 강한 군을 가진 싱가포르. 그런 싱가포르는 군과의 공존을 통해서 자신들의 평화와 미래를 보장받고 있다. 제주는 싱가포르를 제대로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konas)
고성달 (자주국방네트워크 기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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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발전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 하려면 대규모 군항을 건설해야 한다. 제주도를 발판으로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이 되면 당연히 제주도는 아시아의 중심항이 되는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9-14 오후 3:5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