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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의 바다

Written by. 조홍래   입력 : 2006-10-06 오후 3: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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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라고 불렀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대통령은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에 "잔혹한 사회"(brutal society)란 별명 하나를 추가했다.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말이다. 김정일 정권이 역사에 유례 없는 폭정의 독재체제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놀라운 일은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 여름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려 한반도가 물바다가 되더니 "바다 이야기"라는 도박게임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있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에 대한 인사권을 둘러싼 당정 갈등을 진정시키기 위한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는 큰 배"에 비유했다.

창당 2년의 정당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자체가 가관이지만 이제 그 배마저 바다 이야기에 침몰하고 있다. 재임 1년여를 남긴 무능 정권이 소멸하는 것은 역사의 섭리이다. 문제는 무고한 국민이 몰지각한 정권의 희생물이 되어 "폭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대통령은 바다에 빠진 국민은 외면한 채 이 사건에 연루된 조카를 구출하는데 급급하다.

직무유기는 대통령이 했는데 엉뚱하게 문광차관이 해임되었다. 국민은 참여정부 3년 반 동안 온갖 폭정에 시달렸다. 6·25 남침에 맞서 피로 지켜낸 자유는 통일을 방해한 치욕의 역사로 개조되고 세계 10위의 경제발전은 개발독재라는 이름의 강간을 당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의 한국을 세운 선조와 원로들을 그토록 모욕한 이 정권이 바로 이분들이 만들어준 경제력 위에서 가당찮은 자신감을 자랑한다.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고 동포끼리의 통일을 지향하고 자국국방을 구현한다고 노래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잘 사는 놈과 잘난 놈들"에 대한 解寃(해원) 굿판을 벌인 게 전부다. 북한을 "인민의 낙원"이라고 우기는 김정일의 억지를 능가하는 자가 당착이다.

이스라엘은 국제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으면서도 남부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국가 안보가 걸린 중대문제다. 레바논의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먼저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해 사단을 만들었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이 자위권을 행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이스라엘 사태는 전시 작전권 회수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노 정권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작통권을 회수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이어 주한미군 철수가 뒤따를 수 있다. 유럽국가들은 미군사령관이 지휘하는 나토에 작통권을 맡기고 있다. 그들이 자주를 모르고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분리되어 있는 작통권을 통합하고 있다. 전직 국방장관과 원로들은 지금의 사태를 "안보위기"로 규정하고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왔다. 일설에는 작통권 회수가 내년 대선을 노린 카드라고 한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게 정말이라는 작통권을 회수할 게 아니라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을 회수해야 마땅하다.

개혁과 참여를 표방한 노 정권 3년 반의 족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김정일을 즐겁게 해준 것이다. 무조건 퍼주는 것으로도 양이 차질 않아 이제는 국가안보까지 헌납할 태세다.

미국에서는 요즘 "이슬람 파시스트"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영국이 미국 행 여객기 폭파 음모를 꾸민 용의자 20여 명을 체포한 사건을 두고 부시 대통령이 "이슬람 파시스트들"과의 전쟁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되었다. 부시가 알카에다, 헤즈볼라, 탈레반, 이란의 핵 개발추진 자들을 이슬람 파시스트로 표현하자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새로운 구실 찾기란 오해가 생기고 파시스트 논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적을 이슬람 파시스트라는 광범한 범주로 확대하는 것이 온당하냐를 놓고 찬반이 엇갈린다. 논쟁이 파시스트의 定義(정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역사가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는 1920-30년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등장한 파시즘을 "초월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transcendence)이라고 말했다.

파시즘이 뿌리를 내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초월적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1930년 대 산업주의가 절정에 달하면서 엘리트층은 부와 명예를 독점했다. 여기에서 소외된 세력은 자신들의 땀의 대가를 독식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굴욕과 배신감을 느낀 이들은 기존의 사회와 가치관을 파괴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 조류의 대표적인 표출이 나치였다. 물론 타도의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노 정권의 박정희 매도도 그들을 압도하는 리더십에 대한 역반응인 것 같다. 하긴 이 정권의 박정희 때리기는 저항이랄 것도 없는 생떼에 불과하다. 미국의 적 논쟁은 노 정권의 적이 누구냐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분명한 것은 노 정권의 적과 국민이 생각하는 적이 다르다는 점이다. 노 정권은 재벌, 엘리트, 중산층, 서울대, 기존의 가치관 그리고 "통일을 방해하는" 미국 등을 적으로 보는 것 같다. 야스쿠니를 놓고 일본까지 적의 리스트에 올렸다.

간단히 말해 자기들보다 유능하고 현명한 존재는 모두 적이 되는 셈이다. 바다 이야기가 상징하는 것은 이 땅에도 세상을 뒤집으려는 한국판 파시스트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다.

그러고 보면 탈레반 정권 얘기가 나온 것도 한참 전이다. 물바다, 큰배, 바다 이야기, 청와대 인근의 횟집 그리고 폭정의 바다...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다.

조홍래(언론인)

** 한국논단 10월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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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국민은 사회전반적인 사항을 보며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각종의 부정부폐와 혼란한 분위기에 젖어든 안보 불감증의 팽배, 북의 핵실 등을 들수 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0-09 오전 8: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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