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背恩忘德 한미동맹'
김성은 前국방 "우려만으로는 안 된다, 한미동맹 복원시켜야"
10월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안보포럼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이 공동 주최한 '한국안보의 현실과 미래' 안보대토론회는 최근 우리사회의 안보현실을 반영하듯 300여명의 청중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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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과 김성은, 이상훈, 이종구, 조영길 전 국방장관 등 군 원로, 토론자로 참석한 남주홍, 송대성, 제성호 교수 등 학계 인사,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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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은 "어제 불교도 총 연맹 궐기대회에 참석해서 몇마디 말을 했더니 이종구 장관이 '내일 대토론회에 나와서 같은 내용으로 축사를 좀 해달라'고 청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며 8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예의 카랑카랑한 음성의 달변을 풀어 나갔다.
참석자들이 경청을 하며 6, 70년대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헤쳐나가던 우리 국민과 위정자의 모습을 보는 듯 했으나 시간 제약으로 정작 본론분야에서 서둘러 매듭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코나스>는 이 날 김성은 전 장관이 연설한 축사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어제(10월31일) 불교도 총 연맹이 모여서 북핵 실험과 관련한 궐기대회를 했습니다. 나는 종교가 기독교지만 종교 가림 없이 참가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보다는 제가 나이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6·25전쟁 당시 저는 해병대 대대장이었다. 중령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면서 미 해군의 함재기와 함포들이 얼마나 포화를 퍼부었는지 모릅니다. 인천에는 부서진 기왓장, 개 한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구경도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 들어와서도 쏘아대는데 폭탄은 떨어지고 로켓은 유성처럼 날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미 화력이 강한지 처음 봤습니다. 인천 팔미도에서 쏘는 함포가 서울 남산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내는 병자와 도둑, 고아들이 태반이고 부상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야말로 눈으로 말할 수 없는 참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중앙청을 탈환하고 태극기를 걸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 GNP는 67달러였습니다. 지금 16,000달러라고 하니 250배정도 뛰었다고 생각됩니다.
5·16 혁명 후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혁명말기에 장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항상 어떻게 해야 경제적으로 나라가 잘 살겠느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살아보세' 라는 노래도 친히 작사 작곡하셨습니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한이 서려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빨리 한일회담을 정상화시켜 일본의 자본을 가져와 경제를 발전시켜야 되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서독에서는 리부케 대통령이 당선되어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당시 명칭 간호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지원한 사람들도 대학졸업생이 태반으로 광부는 100대 1이고 간호사는 70대 1 정도로 시험이 어려웠습니다.
광부들은 지하 1,400미터 아래까지 내려가서 석탄을 채굴하는데 저는 그때 얘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100미터 내려갈 때마다 1도씩 더워진다는 것입니다. 한여름 바깥 30도 무더위라면 지하 막장에의 체감온도는 어떠했겠습니까? 거기서 석탄을 캐고 일어서려고 하면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아무런 힘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간호사들은 또 독일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체를 알콜로 닦는 일을 했습니다. 시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얼마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밥맛도 잃어버리고 정신마저 이상해질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으니 이들의 감회가 또 어떻겠습니까? 방문단과 함께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애국가를 부르지 못할 지경이었고 이들이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끓어 않고 엉엉 우는데 마치 시집간 딸이 친정아버지 어머니를 붙들고 우는 정경이었습니다.
대통령도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느라 제대로 연설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당시 이들 광원과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독일 마르크로 1억마르크, 미화 3천만달러였습니다. 그 돈을 벌려고 남의 나라 가서 그 설움 속에 한푼 두푼 모아 자본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또 일본과는 한일 회담을 해서 받은 것이 유·무상을 합쳐 6억불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웬만한 중소기업이 수출하고 버는 액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일본 사람들이 독도문제를 들고 나와 (지원금 문제로 인해)희미하게 해버린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6억불로 경제를 재건하는데 보탰지요.
월남파병도 그렇습니다. 파병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각료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겠다고 하는 2, 30억불의 돈을 문서를 받고 파병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세계인들이 자식 생명을 팔아서 하는 용병 한다고 볼 것이니 그런 누명을 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전쟁 때 우리를 도와주고 동맹국이니까 동맹국을 돕는 차원에서 파병을 하겠다고 하면 계약서 이상으로 미국은 '가난한 나라지만 괜찮은 놈이다' 하고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사게 될 것이고 300억불, 3천억불도 가져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냈고 참으로 잘 싸워주었다. 이 자리의 이종구 장관 이상훈 장관 다 월남전 용사들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 한지 모릅니다.
언젠가 필리핀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이 의장이었습니다. 마르코스가 개식사 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좋아한다. 전쟁을 해서는 평화가 올 수 없다. 월남에 파병했지만 후방에서 건설 돕는 일만 하지 전투는 안 한다"고 연설하자 참석한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마르코스 대통령 입 바로 앞에 손을 대고 박수를 쳐 댔습니다. 말을 그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또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던 때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1백만명 학생을 동원해서 김포공항에서부터 서울까지 도열을 해 환영을 했습니다. 김포가도를 오다보니 길가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있자 존슨이 차에서 내려 바지를 걷어올리더니 논에 들어가 낫을 들고 한아름 벼를 베고 농민과 어깨동무하고 사진도 찍는 등 열렬하게 환영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박 대통령과 나는 존슨 대통령을 안내해 연천 26사단을 가는데 농민이 소를 몰며 쟁기질 하는 것을 보고는 한국은 작은 땅에서 농사를 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 과학기술처를 만들어 주겠다면서 "한국은 반드시 산업화해야 산다. 내가 만들어 줄테니 세계 브레인을 불러다 공업화해라" 하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씨가 되어 공업화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태국은 우리보다 두 배 필리핀은 세배나 더 잘 산 나라입니다. 그런데 마르코스 시절 이후 反美를 하고 미군철수를 부르짓고 미군이 철수한 이후 필리핀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당시 필리핀이 하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다시 돌려 놓아야합니다.
마음속에 생각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앉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들도 한국을 배은망덕으로 섭섭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한미동맹을 옛날처럼 회복시켜야합니다. 감사합니다. (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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