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낙관론 경계한다
지난 10월 9일 핵실험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북한이 3주 만에 6자회담 복귀에 합의했다. 평화적 핵해결을 갈망하는 한국의 공식적 반응은 일단 ‘환영’일 수밖에 없지만, 회담 재개 그 자체만으로는 감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저간의 정황들을 종합하면 이번의 대화 제스쳐는 ‘국면의 전환’이기보다는 ‘예정된 수순’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곧 이어서 대화에 나설 것이란 점은 익히 예상되었다. 북한이 추구할 당연한 다음 수순이 ‘핵보유 굳히기’와 ‘협상지위 격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핵보유국으로 가는 길에는 세 개의 문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비밀리에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을 ‘기술적 문턱(technical threshold)’으로 그리고 핵실험을 통해 핵폭탄의 실체를 과시하는 것을 ‘정치적 문턱(political threshold)’라고 부른다. 통상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문턱이 넘기가 어렵다. 이어서 일정 숫자 이상의 핵폭탄과 함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통해 투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지휘통제가 가능한 핵군사력을 건설하면 세 번째 문턱인 ‘핵폭탄의 무기화’를 넘게 된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된다. 체제수호의 수단으로서 핵보유에 집착해온 북한이 이 문턱들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점에서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추진되어온 북한의 핵개발을 ‘협상용 카드’로 평가절하해온 낙관론자들의 정신자세에는 분명 문제가 많았다.
‘핵보유 굳히기’ 및 ‘ 협상지위 격상’ 의도는 핵실험 직후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었다. ‘선제 핵공격 배제,’ ‘핵무기 이전 자제’ 등은 “얌전히 핵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1964년 중국도 핵실험을 한 직후 정확하게 같은 목적으로 그런 입장을 천명했었고,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도 그랬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핵군축을 위한 미국과의 대화 용의’는 “대등한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에 미국 핵무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뜻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낙관론자들이 “핵실험을 했지만 여전히 핵포기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한 것은 한 마디로 촌극이었다. 북한에게 있어 핵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응하는 당연한 자위수단’인 것이다.
때문에 6자회담이 재개되어도 북한의 주장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거 회담에서도 북한은 내내 “체제와 정권에 대한 완벽한 안전보장‘을 요구했고, 미국이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회담은 좌초되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시나리오는 핵이 없어도 될 만큼 체제와 정권의 안이를 확실하게 보장받는 경우와 북한의 내부문제로 체제나 지도부가 바뀌는 경우에 국한될 것이다. 확실한 체제보장이란 수령독재와 인권부재의 실상이 지속되도록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며, 후자의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서 회담이 재개되어도 전망은 밝지 않으며, 북한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6자회담은 북한의 ‘핵 굳히기’와 ‘협상지위 격상’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화 그 자체는 필요하다. 해결 가능성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것이 평화적 핵해결을 위한 과정인 이상 열과 성의를 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핵문제의 실태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북한은 2003년부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하여 자유롭게 핵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 당연히 핵폭탄 재고의 증가, 핵폭탄 소형화, 미사일 탑재 등을 서두르면서 세 번째 문턱을 넘기 위해 노력을 퍼붓고 있을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북한에게 세 번째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여 한국은 더욱 깊숙하게 핵인질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6자회담의 재개가 이런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핵은 한국을 겨냥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 무해하다”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게 될지도 걱정스럽다. 핵무기는 존재 그 자체로 상대방을 주눅들게 만드는 정치-외교적 무기로서 한국을 겨낭하든 안하든 남북간 군사균형을 변질시키는 남북관계를 왜곡시키는 와일드카드이다. 회담의 재개가 핵불감증을 확산시키고 순진한 주장들에게 설득력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konas)
김태우(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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