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깨우기 위해 무엇을 했나?

Written by. 전경웅   입력 : 2006-11-25 오전 12:37:45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3
▲국제적 북한인권단체인 '링크(LINK)'의 세미나가 서울대 행정대학원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고교생도 눈에 띄였다. ⓒkonas.net

한국 학생이 주도해 만든 세계적인 북한인권단체가 있다. 바로 '링크(LINK: Liberty In North Korea)'다. 이 '링크'의 서울 세미나가 24일 오후 7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렸다. 약 30여 명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날 세미나의 주제는 '중국에 숨어지내는 탈북자의 실태와 이들의 구출활동'이었다.

▲'링크'의 활동을 소개하는 동영상. 독재자 김정일의 모습이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린 모습과 오버랩됐다. ⓒkonas.net

세미나는 '링크'에 대한 소개와 탈북자 관련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이어 탈북자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시작됐다. 먼저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대표인 김영일씨의 증언이 있었다. 김영일씨는 1996년 10월 탈북, 2001년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김영일 대표는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표가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에 대해 들은 것은 90년대 중반 군에 입대한 이후였다고 했다. 입대 후 제대로 먹지를 못해 영양실조에다 합병증에 걸려 고생할 때 소식을 듣고 면회를 온 어머니로부터 외삼촌이 굶어죽었다는 이야기, 바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탈북계획을 듣고 군에서 굶어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탈영, 가족들과 함께 탈북했다고 했다.

▲김영일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대표. ⓒkonas.net

김 대표는 "한국에서는 북한 경제난의 원인을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난 또는 동구권 붕괴로 인한 원조 중단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북한 내 엘리트들의 의견을 전했다. 김 대표는 북한 경제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70년대 김정일이 시행했던 소위 '70일 전투' 때문으로 봤다. 197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7개년 경제개혁계획을 시행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무리를 앞두고 실적이 형편없자 김일성이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이때 김정일이 나서 '70일 전투'라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70일 전투'는 명목상으로는 성공적인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김정일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이 계획에 쏟아부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 내 원자재가 10년치 가량 부족해지면서 '70일 전투'계획이 끝나자마자 가동을 멈춘 공장이 속속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국가의 모든 자원을 투입한 이유는 다름아닌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식량난의 원인을 미국의 봉쇄와 압박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북한 또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원자재난으로 인해 경제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던 90년대 중반 북한에는 식량을 살 돈도 있고 식량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 또한 군대에서 영양실조에 걸렸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부대에서 본 것은 거대한 창고를 가득 메운 식량이었다고 한다. 간부의 말을 들으니 지하창고에 식량이 더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식량은 전시를 대비한 군량미이므로 손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때 김정일은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해 8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금수산 궁전을 짓고 벤츠를 수입해 고급 간부들에게 선물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두 목격한 김 대표는 "그 8억 달러면 북한 주민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었다"며 "북한의 식량난은 절대 자연재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의 공개처형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북한의 공개처형은 80년대 말부터 서서히 잦아지더니 90년대 중반부터는 '술을 많이 먹고 행패 부렸다''식량을 사기 위해 전기선을 절도했다''보리 한 말을 절도했다' 등의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재판 없이 공개처형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증언을 하면서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북한인권개선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가 바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절대권력체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이미 김정일로부터 마음이 떠난 주민들이 저항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외부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 베드로 목사. 그가 중국 감옥에 1년 6개월 간 투옥되었을 당시 함께 투옥된 미국인에게는 영사가 매달 한 번씩 찾아와 건강체크, 소식전달 등을 했으나 한국 영사는 단 두 번 찾아와 안부만 묻고 갔다고 한다.  ⓒkonas.net

이어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중국 공안당국에 투옥당한 적이 있는 정 베드로 목사가 나왔다. 정 베드로 목사는 현재 기독교 사회책임 북한인권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베드로 목사가 중국에 가게 된 계기는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찾아 중국으로 간 그는 탈북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됐고 결국 그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정 목사는 탈북자들을 위해 여러군데의 피난처를 구하고 사람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정 목사가 탈북자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의식주 해결과 중국어 교육이었다. 방송통신대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교재로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신앙전파도 했다고 한다. 이때는 두 달마다 피난처를 옮겼다. 중국과 북한이 1986년 맺은 국경협정에 따라 공안에 잡힌 탈북자는 무조건 강제북송 당하는데 중국 사회에서 탈북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이 있다는 것이다. 이 포상금을 노리고 공안에 신고하는 조선족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고생하며 탈북자들을 보살폈지만 더 이상 여력이 안돼 고민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탈북자의 한국행이었다. 약 20여 명의 탈북자들을 한국 영사관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중에 스파이가 숨어있었다. 그는 "이때 우리는 휴대전화가 완벽하게 도청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계획이 외부로 새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 목사는 7명의 탈북자가 남은 시점에서 공안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정 목사는 현재 국내에서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그는 "현재 중국이 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과 함께 베이징 올림픽 불참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압력을 넣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민복씨. 북한 과학원에서 농산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konas.net

끝으로 95년에 귀순한 이민복씨가 나왔다. 이민복씨는 북한 과학원에서 식량을 다루던 과학자 출신으로 현재 대북지원 풍선날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씨는 80년대부터 북한에서 아사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식량 문제는 사회주의 집단농장기법에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 집단농장과 개인농장으로 실험을 해 5배의 생산성 차이가 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가 '반동분자'로 몰리자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탈북을 시도하다 붙잡혀 결국 정치 수용소에 수감됐다고 한다. 이씨는 "북한은 아우슈비츠보다 더 심하다"며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간수가 죄수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으며 여성 죄수를 죽일 때는 옷을 벗겨 국부에 삽자루를 박아 죽이거나 잔학한 생체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링크 회원들은 믿기 어려워했다. 같이 탈북했던 친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철도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튼 러시아, 중국을 통해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는데 햇볕정책이랍시고 김정일을 자극하니까 받아들이지 않길래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결국 UN난민고등판무관실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정보기관원들에게 쓰레기장과 감옥을 보여달라고 했다. 쓰레기장만큼 그 사회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게 없을 것이며 인권 상황을 볼 때는 감옥이 가장 적나라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지금 남한의 대북정책결정자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며 그는 일본에서 오는 화물 중 라디오는 모두 압수하고 중국에서 오는 물건 중 책은 반입이 안된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즉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는 북한의 수령체제와 폐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KBS사회교육방송과 대북선전물살포 중단을 요구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외부의 정보를 북한 사회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에서 대북방송과 선전물 살포를 중단한 후 그가 보낸 선전물이 북한 여러 지방에 살포되었다는 것을 중국에서 들었다고 한다. 그후 북한 당국이 우리 정부에 10여 차례 항의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답답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과연 북한 주민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문해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의 정보를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탈북자와 링크 회원들 간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현재 남한에서 햇볕정책, 포용정책에 대해 찬반이 있는데 탈북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들은 "지금처럼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김정일이 개방개혁을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이민복씨는 "대북지원 전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사비나 김정일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며 전용 가능성이 없는 옥수수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김영일씨는 "김정일은 개방개혁을 하게 되면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개방개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의 대북지원정책은 김정일 정권을 공고히 해준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 정권 붕괴 이후 수습방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김정일 정권을 대체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제거된 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을 만들거나 내부의 엘리트 세력을 내세워 사회 안정을 유지한 다음, 중국과 같은 방식의 점진적인 개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렇게 해야만 남북한이 함께 사는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생한 증언과 탈북자들과 학생 간에 열띤 질의응답을 하느라 세미나는 오후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탈북자들과 '링크' 회원들의 기념촬영. 일부는 먼저 자리를 떴다. ⓒkonas.net

'링크'는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애드리언 홍이 창설했다. 현재 본부는 워싱턴에 있으며 60개 이상의 미국 지부를 포함, 일본, 유럽 등 전세계에 70개 이상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이 단체는 철저히 비영리적, 비정치적, 비인종적 NGO로 그 목적은 오직 북한인권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려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인권토론회 개최는 물론 한국과 세계각지의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왔다. 최근 가장 인상깊은 활동은 세계 각국의 회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인권개선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고 한다.

이 단체는 중국 내 30개 이상의 탈북자 보호시설을 갖춰놓고 탈북자 출신의 고아와 윤락여성들을 돌보고 있으며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도울 정도로 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서울 지부에는 (http://club.cyworld.com/linkglobal)에서 외국인 20여 명을 포함, 약 15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박지혜 서울지부 대표는 앞으로는 이 같은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pakwj3697    수정

    핵실험으로 생존을 담보가 된것처럼 대처를 못하는 정부... 젊은이들의 합창에 귀를 좀 기우리면서 삽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7 오전 9:35:39
    찬성0반대0
  • 타이거    수정

    그나마 다행이다.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읽는다는 게...</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6 오후 6:59:44
    찬성0반대0
  • 탈북인   

    김정일제거와 체제붕괴를 위한 선무공작을 해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11-26 오전 9:22:40
    찬성0반대0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