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마젤란
중학교 시절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리빙스턴·아문젠·바다밑 이만리·마젤란 등 주로 육지와 바다를 탐험했던 위인에 대한 것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중에서도 마젤란은 나의 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헤치고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이뤄 냈는지는 뒷전이고, 남국의 낭만과 멋진 상상이 나를 바다로 나가게 했다.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생활하면서 마젤란에 대한 나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애초에 마젤란은 자신의 나라 포르투갈 국왕 돈 마누엘에게 향료와 식민지 획득을 겸한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위해 선박과 선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신뢰할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젤란은 스페인 카를로스 국왕의 승낙을 받아 1519년 8월 10일 작은 범선 다섯 척과 259명의 승조원과 함께 대서양 서쪽으로 대망의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했다. 브라질과 남미 최남단까지 항해한 마젤란은 드디어 태평양으로 나가는 해협을 발견했으며, 그곳이 후세에 마젤란 해협으로 불리게 됐다.
남극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좁고 긴 해협을 38일간 항해하면서 그들은 혹독한 추위와 폭풍을 견뎌 내야만 했다. 해협 통과 후 그들을 맞은 대양은 오히려 바람 한점 없이 평온한 망망대해였다. 마젤란이 발견한 바다는 너무나 크고 잔잔했기 때문에 이 바다를 ‘일 파시피코(태평양)’ 라고 명명했다. 마젤란 해협에서 괌과 필리핀을 발견하기까지 석달 열흘 동안 그들은 험난한 항해를 했다.
그러나 필리핀을 발견한 마젤란은 귀항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날 휴양지 세브 섬에 인접한 막탄 섬에서 원주민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1522년 9월 6일 빅토리아 호 한 척과 18명의 선원만이 그들이 출항한 세비아 항으로 3년 만에 귀항했다. 출항시 그들이 목표한 향료를 가득 싣고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낸 것이다.
33일 만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항해에 비교하면 3년 동안의 항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력이 없던 시절, 오늘날 고속정 만한 크기의 작은 범선으로 오직 돛에 의지하면서 그들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것이다. 마젤란은 직접 별을 보며 위치를 짐작, 항해했으며 심지어 어떤 때는 바닷물의 맛으로 항로를 결정짓기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식수와 식량이었으며, 식량이 없을 때는 돛에 달린 가죽마저 씹어 가며 항해를 했다. 특히 야채를 섭취할 수 없어 괴혈병으로 많은 인원이 죽었다.
또 그들이 육지를 발견해도 식민지를 개척하고 원주민을 다스리는 것은 항해만큼 어려웠다. 그러나 그를 승리로 이끈 것은 뱃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불굴의 인내심이었다. 또 그당시 이미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스페인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데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 바다로, 세계로 나아가 국익을 위해 일하도록 했다.마젤란! 내 마음속에 그는 항상 함께하고 있으며 내 친구인 그에게 뱃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윤 연 (예 해군중장·전 해군작전사령관 admiralyunyon@hanmail.net)
** 이 글은 국방일보(11월28일자)에 실린 '병영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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