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비롯하여 언론 출판 학문 예술의 자유 등 정신활동의 자유를 주요 제한목표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유무에 전혀 상관없이 이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박원순, 윗책. 37, 141, 158쪽). 결국 국보법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의 취지 및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안에서의 남한측 헌병과 사무실밖에서 보초선 북한군 병사 /

사실 우리는 해방 이전부터 사상전쟁을 치르고 있다. 특히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갈라지고 남과 북이 채택한 이념과 정치체제가 다르게 되면서 더욱 사상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공산주의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식 군사독재 체제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과 적개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가 겪게 된 불필요하고도 잔인한 민족적 비극 때문이다. 이후 공산주의를 주장하거나 북한의 김일성 또는 북한의 군사독재체제 나아가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주장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반역행위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우리 헌법에서는 '사상의 자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규정이 없다. 단지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 뜻은 아무리 우리가 자유민주체제를 채택하고 있고 개인적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나 북한식 주체사상 또는 군사독재체제를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리라. 이것이 헌법에 표현된 국민의 뜻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학문적 주장이지 헌법에 표현된 국민의 합의는 아니다. 이 헌법의 뜻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법률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국보법에서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고 북한 정권과 협력하거나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행한 행위에 대하여 처벌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등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clear and present danger rule)에 한한다는 원칙은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원칙일 뿐이니 절대적 원칙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의 원칙이란 것은 자연현상에 관련된 원칙과는 달리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회과학적 원칙은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약속이며 합의다. 미국과 같은 안정된 사회에서 인정되는 법 해석의 원칙을 그대로 한국적 상황에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에서조차 이 원칙은 그 후 다른 원칙들에 의해 대체되거나 제한되어 왔다. 한 때 미국에서는 '명확하고 현존하는 원칙' 대신에 '위험한 경향의 원칙'(dangerous tendency rule)을 채택하기도 하였으며 다시 구체적 사건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 위험도를 참작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수정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공산주의를 주장하거나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행위 등은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체제를 전복시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자유민주체제는 반드시 군중 폭동이나 적의 군사적 공격에 의해서만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체제의 핵심인 선거를 통한 체제 전복이 가능하다. 따라서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전 선동 하여 표를 하나 하나 바꾸는 행위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다.


사실 전조교의 활동이나 기타 친북 시민단체 및 정치인들의 친북 활동에 의해 친북 성향을 가진 유권자의 수가 위험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들의 찬양 고무 활동에 의하여 북한이 아닌 미국이 우리의 적이라고 보거나 체제와 상관없이 통일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이것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아니면 무엇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가?


따라서 국보법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정신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명백하고 현존하고 위험의 원칙을 위반한 법으로 매도하며 국보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한국은 아직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대결하고 있다. 특히 한국 내의 친북 세력에 의한 반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친북활동이 때로는 은밀하고 때로는 공공연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보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자유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자유를 친북세력이 자유를 파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창인(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 정치 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