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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⑮] 나라를 얻는 방법

Written by. 김우진   입력 : 2016-09-20 오후 12: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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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입선’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나는 군대에 오지 않을 이유들이 있었다. 영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면서 영주권 혜택을 보았고, 미국 명문대를 졸업했다.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일 해본 경험도 있어서 해외에서 취직할 기회가 많았다. 미국인 여자친구와 4년째 사귀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래를 함께할 계획도 다 세워 놨다. 하지만, 군복무를 위해 그 미래를 연기하고 2015년 8월 10일에 입대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지 말라고 했다. 빠질 수 있으면 빠져, 라고 진지하게 말해줬다. 한국에서 계속 살 거야? 제대하면 당분간 해외에 있을 것 같아. 그러면 군대 갈 필요 없네. 그리고 충고란 기껏 이런 절망적인 것이었다. 그냥 너의 소중한 20대의 2년을 버린다고 생각해. 조용히 살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마.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말을 믿었다. 군 복무는 오직 우리 가족을 지켜준 나라에게 갚을 빚 정도로 봤다. 21개월 동안 새로운 것은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넓은 세상에서 이미 다양한 경험들을 해봤고, 매사에 강한 자제력을 가지고 생활해 왔으며, 인생행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경제학 박사과정을 위해 대학원에 입학할 준비도 되었다. 그러기에 과연 군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입대한지 10개월이 다 된 지금 부대에 자신을 투자할수록 군 복무가 더욱 의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투자할수록, 지키는 이 땅이 더욱 내 땅이 되었다. 결국, 군대를 통해 나라를 얻었다. 

 503 탄약중대에 인사서무행정병으로 전입한 뒤 며칠 만에 대대장님을 만났다. 같이 전입한 네 명의 신병은 탁자에 둘러앉아서, 어깨는 쭉 피고, 등뼈를 고정한 자세로 무릎 위에 주먹을 쥐고 앉아 있었다. 앞에는 김이 다 빠진 채 그대로 있는 커피 4잔. 우리를 바라보는 대대장님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의 넓은 어깨는 지는 가을햇빛에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질문?” 이라고 물었다. “없습니다!” 라고 함께 있는 신병 3명이 외쳤다. 나는 손을 들었다. “인사계로 보직을 받았는데” 라는 서툰 말로 시작하며, “한국말이 좀 부족해서.” 나는 한국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고 한글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한국말은 부모님과 생활하는 정도였고 평생 친구들과 영어로만 대화했다. 훈련소에서는 ‘금일’이 금요일의 줄임말인 줄 알았고, “이상입니다”가 뭔가가 이상하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왜 3일 연속 금요일인지, 보고할 때마다 뭐가 계속 이상하다고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대대장님은 나를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시며, “일단 해보자.” 이제는 나에게 딱 맞는 보직과 부대를 만난 것으로 믿는다. 행정반에 걸려오는 전화를 알아듣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었고, 인사계 업무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또 한 달이 더 지났다. 일과에 조금 여유를 찾고 나니, 부대 안에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건의했다.

 한 프로젝트는 근무점수제도이다. 작년 겨울 직전에 부대 3분의1이 전역했지만 신병들은 몇 명만 졸졸 들어왔다. 근무를 거의 매일 밤에 서는 자체가 심각한 피로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다.

 “짐승이 된 느낌이다. 오직 물리적 필요에만 관심을 가지고, 다음 잘 수 있는 순간만 열망한다.”라고 12월 일기에 기록했다. 내가 건의하게 된 컴퓨터 프로그램은 모든 병사의 근무순서를 기록해서 피로도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다음 날 근무는 그 점수를 참고로 해서 편성하는 것이었다.

 중대장님은 승인해 주었고, 점수체계를 실행한 후 설문조사결과 97% 만족도를 나타냈다. 나는 더 효율적, 규칙적, 그리고 투명한 근무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따라서 모두의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평소에 더 생산적으로 일과를 하게 하려는 희망이었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영어동아리. 종종 병사나 간부들이 와서 어떤 영어문제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앞으로 교수가 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어떤 개념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면서 깨닫는 표정이 점점 얼굴에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시간이 조금 지나, 공식적인 동아리를 만들어서 커리큘럼에 따라 정기적으로 가르치면 더 효율적이겠다고 판단했다.

 중대장님은 완전히 환영해 주셨다. 동아리활동을 통해 TOEIC이나 TEPS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인원들에게 포상까지도 약속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얻는 보람뿐만 아니라, 군대가 주는 재밌는 추억과 이야기, 유용한 교훈들이 떠오른다.

 체육대회 단체줄넘기를 위해 이틀 동안 간부와 병사들이 열심히 연습해서 우승한 추억, 전혀 예상치 못하게 국방TV의 <행복한 군대 이야기> 프로그램에 칭찬 받은 군인으로 출연한 색다른 추억, 걸그룹 투아이스의 <우아하게> 댄스를 선임과 함께 배우고 분장까지 해서 설날 장기자랑에서 2등을 차지한 기억.

 그리고 몸은 부대에 있어도 생각은 항상 자유롭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원래 감정은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럼에도 미국에서 나를 매일 기다려주는 여자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보고 싶고 동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일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슬픔은 억누르겠지만, 이제는 간직하고 싶다. 왜냐하면 약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군대에서 얻었던 가장 소중한 것은 한국의 정체성이다. 갑자기 아픈 동기를 대신해 누군가 자발적으로 근무에 나설 때, 선임이 후임에게 총기 관리법을 성실히 가르칠 때, 그리고 새벽에 간부가 구토하는 병사를 응급실로 급히 데리고 갈 때, 이러한 때 한국인들의 단결심을 목격했다. 또한 군대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식으로 배웠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자유를 갈망했던 분들이 겪었던 희생과 잔혹에 대해서 들었다. 그분들이 삶을 바쳤기 때문에, 내 조부모님들과 부모님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었고, 내가 지금 누리는 축복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이유로 군대에서 매일 목적과 의미를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최대한 일을 안 하고 생각도 없이 시간을 보냈으면, 일 년이 되어도 당연히 보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미는 섬기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입대 전에 들었던 말과 반대로, 군대는 발전을 억누르거나 막지 않았다. 대신, 부대에서는 솔선과 독창력이 환영받았다. 군 복무의 의미는 바로 본인의 어떠한 능력, 경험, 재능을 바쳐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한국말도 잘못 할지라도 말이다.(konas)

3군수지원사령부 50탄약대대 상병 김우진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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