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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㉑]나는 그날 누구보다 행복했다.

Written by. 조무근   입력 : 2017-09-11 오전 1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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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질병치료’ 부문 장려 당선작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보람찬 하루를 보낸 어느 날 저녁. 나는 생활관에서 편지를 한 장 받았다. 발신인은 병무청. 발신인을 보자마자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병무청에서 온 편지 중에 달가웠던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히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에는 자원입대자 체험수기 공모전을 연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군대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던 입대에 대해서 생각해볼 틈이 없을 만큼 바빴다.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고 되뇌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러한 선택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면 난관을 넘어설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병무청에서 온 편지 덕분에 다시 그 일을 생각하게 되어 기뻤다. 내가 자원입대를 결정하게 된 건 작년 이맘 때쯤의 일이였다.
 
 시험이 끝난 대학교 거리에는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술과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한 가운데에 적정한 때 입대하기 위해 걱정 어린 얼굴로 PC방을 들락거리던 내가 있었다. 나와 함께 동반입대 하기로 한 친구 역시 복학하기 적당한 시기에 전역하기 위해 입대일자를 열심히 알아보던 중 이었고, 마침 5사단 동반입대에 2월달 입대하는 자리가 있어 이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내게 병무청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신체검사 기준이 완화되었으니 다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보였다. 동반입대를 지원하는 날이 코 앞이라 지원하지 못할까봐 가슴이 철렁한 나는 지원시기를 맞추기 위해 급하게 병무청으로 향했다. 몸무게와 키만 다시 재면서 어차피 똑같은 현역판정 결과가 나올 것을 왜 하냐며 투덜댔지만 그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그 날 나는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군 면제를 꿈꾼다. 군대에 가면 청춘을 희생한다느니, 시간을 버리고 온다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며 군대는 안가면 좋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때에 면제까지는 아니어도 현역이 아니니 당연히 기뻐야하고 당연히 즐거워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놀랐었던 건지 나는 얼떨떨하다는 느낌만 받을 뿐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일단은 동반입대를 약속한 친구에게 같이 군 입대를 못하겠다고 알렸다. 친구는 아쉬워하며 다른 친구와 동반입대 하기로 했다. 친구나 나나 내가 군 입대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였기에 간단히 동반입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때는 왜인지 몰랐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우울증을 느꼈고 입대 일정이 엉망이 되어서 주위에 짜증을 많이냈다. 

이미 대학교에 휴학을 신청한 상태였고 온 동네방네에 군대 입대한다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다시 복학하기는 민망했다. 휴학한 김에 사회복무요원에 지원하기로 한 나는 지원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했지만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심한 우울증을 느꼈고 술을 즐기지 않던 내가 그 어떤 때보다 술을 마시고 싶었을 정도로 의기소침한 날들이 이어졌다. 

 사회복무무요원 지원 신청 후 대망의 합격자 발표 날 나는 지원한 모든 곳에서 떨어졌다. 추가 모집도 지원에 실패했다. 1년을 기다리고 다시 지원하는 건 새로운 생활을 간절히 원하던 우울증 걸린 나에게는 너무 긴 가혹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지원한다고 해서 합격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대체복무 방법을 찾아보던 중 산업기능요원제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산업기능요원제도는 국가에서 지정한 기업체에서 2년간 일하며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인데 보수도 최저시급 이상이고 주말에 쉬며 무엇보다, 출퇴근 이후에는 완전히 자유였다. 급하게 잡은 면접에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쉽게 채용이 되어서 깜짝 놀랐다.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출퇴근 버스를 지원하고 보수도 괜찮았으며 밀리지 않고 잘 주는 편이라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먼저 일하고 있던 친구가 말해주었다. 다른 공장들은 월급이 밀리는 경우가 많고 주말에도 강제로 출근하라고 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첫 출근을 한 날 직원 분들은 친절했고 일은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지만 복잡한 일이 없고 정말 쉬었다. 좋은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이제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는데,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회사일만 하면 2년 뒤 큰 목돈과 예비역 딱지를 가지고 다시 행복한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는데 무언가 가슴에 콱 박혀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삼일 동안 복잡한 생각으로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피곤하지도 않았다. 가슴에 걸린 것이 너무 답답해서 화가 났다. 잠을 못자는 밤 시간동안 내가 왜 이런지 날이 새도록 고민했다. 공장에 출근한지 삼 일째 새벽에 동이 트듯 환하게 내 마음에 빛이 비쳤다.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지 깨달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에게 뒤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교 진학도 했고 평범하게 남들처럼 군대도 갈 줄 알았다. 그래서 첫 병역판정검사에서 3급 판정을 받았을 때 의아하고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렇게나 뚱뚱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모자란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체 건강한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자들은 평범하게 군대에 간다. 내 친구들이 그렇고 내 아버지가 그러했다. 그런데 나는 가지 못한다. 그제야 내가 군에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기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기쁠 리가 없었다. 모자란 사람인 것 같고 남들에게 뒤지는 것 같고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었으니까. 나에게 군대란 그런 의미였다. 모든 이들이 하는 일이니 나도 당연히 입대해서 훌륭한 육군 병장 소총수로 전역하고 싶었다.

 결심을 내렸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나에게 부모님도 반대하셨고 회사 사람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은 정신 나간 놈이라고 놀렸다. 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려 하느냐고 물었다. 내게 이것은 ‘복’ 이었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나는 내가 진지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하루에 한 끼씩 먹으면서 네 시간씩 런닝머신을 뛰었다. 한 달이 채 안되는 시간에 13㎏의 몸무게를 감량했다. 다시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현역병 지원을 했다. 6월 21일. 내가 입대하던 날,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날 누구보다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입대해서 근 1년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일주일 동안 못 씻어본 적도 있고 너무 더워서 물 10통을 이틀 만에 모두 마셔버린 적도 있으며 7시간동안 걸으면서 500원짜리보다 큰 물집이 몽실몽실 발바닥 곳곳에 잡히기도 했다. 새벽 3시에 갑자기 깨워져서 경계근무에 투입되는 일은 일상이다. 군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일이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불평을 하거나 한숨을 쉬거나 하면 내 사정을 아는 전우들이 내게 가끔 묻고는 한다. 입대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냐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몇 번을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노라고.

 군대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나에 대한 자신감을 찾았다. 모두와 같은 의무를 해내고 있고 그것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내가 원했다는 것에 대한 명예도 자긍심도 얻었다. 군대라는 것이 그렇다. 보수는 적고 일도 힘들고 평등하지도 않으며 자유롭지도 않지만 그 속에서 군인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며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아낸다. 나는 군인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의 길을 당당히 걷고 있다.

(20기계화보병 기갑수색대 상병 조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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