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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⑤] 철로 곁에서

Written by. 김환이   입력 : 2017-09-15 오후 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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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저는 문턱이었습니다. 안과 밖을 가르는 좁은 문턱. 가끔 그 문턱에서 상처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발가락을 찧거나 발이 걸려서 넘어질 뻔한 경험. 저는 그때마다 방향성도 없는 화를 냈습니다. 문턱의 탓은 아니었으나 하필 그 순간 제게 닥쳐온 작고 사소한 사건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지 문턱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철도

 저는 2016년 8월 말에 가산디지털단지 역 사회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코레일 소속 전철 사회복무요원을 지원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의 직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모토였습니다.

 아버지는 구로차량기지에서 일을 하셨고 그 때문에 저에게 철도는 굉장히 친근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암 판정을 받게 되었고 긴 시간동안 긴 투병 생활을 해왔습니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코레일의 지원, 아버지 친구들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도움 속에서도 아버지는 결국 병마에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구로차량기지를 돌았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존경하던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들과 그 장소.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곳. 제게 있어서 철도는 단순한 대중교통 그 이상이었습니다.

 지독한 더위 속에서 훈련을 수료하고 돌아왔을 때 저는 묘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현역으로 입대하지 못한 아쉬움과 현역보다는 편하다는 주위사람들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일했던 곳은 아니지만 존경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루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게 있어서 ‘위너’의 삶은 같은 나이 또래들이 그러하듯, 대학을 가고 친구들을 사귀고 배우고 싶은 공부도 하고 나중에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하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겐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꿈. 그래서 글로 대학을 가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오랫동안 재수 생활을 했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집에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도 아픈 상황이었으나 아버지는 그 꿈을 잃지 말라고 저를 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글 쓰는 것에만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 생활 속에서 안도하고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정신을 차려보니 세월이 많이 지나있었고 제게 남은 것은 죄책감과 현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회의 보편적인 틀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두려워졌습니다. 굳게 집안을 지탱해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서 제가 가정에 어떤 도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의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전 이미 어른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있어서 사회적 규범은 단순히 족쇄나 책임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소집이 되었을 때 사회라는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한 현실을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제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인정받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턱

 가산디지털단지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직장인들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작은 역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서 저는 제가 생각했던 보편적인 직장인들의 모습과 현실이 무척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숨이 막힐 만큼 꽉 찬 전철 안에서 치열하게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무감각하고 차가운 등과 어깨, 가득 찬 전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튕겨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의자에 누워서 헛구역질을 했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도 보았습니다.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 그들은 짧은 휴식조차 사치인 것처럼 다음 열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사람이었는지 되새겼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아픔을 다루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아픔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아픔을 가장한 허세를 부려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경한다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로로 인해서 쓰러진 여성 고객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전철에서 나와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누워있던 고객을 본 어떤 고객이 신고를 했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겠다는 우리들의 말에도 그녀는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파랗게 변한 입술을 보고 저는 그분을 업고 역무실로 옮겼습니다. 그녀의 몸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튕겨져 나올 때, 무언가 함께 빠져나간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이루는 무게조차도 견디지 못한 것처럼 힘겨워했다. 저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고객은 끝내 들것을 들고 온 구급대원들과 함께 역 밖 구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관찰했던 것들은 전부 글에 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삶은 현실이었고 저로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감상일 뿐이었습니다. 제 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히 전철역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수로 같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들어가는 그곳에는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개찰구 앞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문턱일 뿐이다.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선인 문턱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 번도 문턱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에게 경계는 없었고 그저 문턱을 넘어다닐 뿐이었습니다. 문턱은 가만히 머물러 있습니다. 경계선을 만들면서 그 자리에 경계선 자체가 됩니다. 그들에게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스쳐지나갈 뿐, 저는 문턱으로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게는 수없이 많은 사건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한 번의 해프닝일 뿐이었습니다. 제일 당황스러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문턱을 넘어가는 고객들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턱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그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흘기면서 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문턱은 어땠을까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누군가에 의해서 부딪치고 치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경계선이 단순히 두 공간을 가르는 것 하나의 선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경계선도 하나의 공간이었습니다.

 부재의 형식

 우리는 수많은 경계선을 넘나들었습니다.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상행으로 하행으로. 그렇게 넘나드는 사람들 또한 어떠한 문턱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는 직원으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어떤 문턱이었습니다. 그 안에 무슨 상처들이 있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선을 넘어가다가 걸렸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를 대했던 제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경계로서 대했던 나. 또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경계로서 저를 대했던 사실. 그 속에서 저는 진짜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훌륭한 아버지로서만 기억하려고 하면서 진정한 사실을 잊으려고 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전할 사람이 진정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슬퍼만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제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제 주위에 남아있는, 그리고 찾아올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문턱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고객대응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들이 무신경하게 뱉던 말들은 더 이상 상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을 때 휴대폰을 잃어버린 고객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고객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보니 다른 분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고객은 술에 취해 있어서 습득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막차 시간이라서 역에 물건을 맡기는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저는 습득인에게 근처 편의점에 휴대폰을 맡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습득인은 구로역에서 내린 상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일을 했던 구로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편의점의 위치를 분실한 고객에게 안내했습니다. 지도를 보여주고 방향을 알려줬습니다. 다행히 고객은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있다가 그때의 고객이 칭찬 민원을 넣어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고객을 대신해서 전화를 받아 휴대폰을 맡길 곳을 찾고 길을 안내했을 뿐이었습니다. 무척 사소한 일이었고 평소에도 매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칭찬민원을 받았다는 이야길 듣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사소하다고 생각하여 쉽게 넘어가던 것이 누군가에겐 칭찬민원을 넣어줄 만큼 고마운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사실 그동안 고객들이 내뱉는 것들을 견디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욕을 하고 그들이 쏘아내는 시선들. 그 속에서 저는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들이 쏟아내는 말을 듣고 견뎌야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역무원 분들에게 쏟아지는 말들을 보면서 제가 마치 어떤 사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것들은 내 기분을 상하게 했던 사람들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친절하게 대해줬던 고객들이 더 많았습니다. 초행길 안내를 도와주자 캔 음료수를 하나 건네줬던 분도 있었고 고생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 고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준 친절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왔었습니다. 제가 불쾌하게 생각했던 고객들과 저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습니다. 내가 미워하던 사람도 사실 생각해보면 내 안에도 그 사람과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은 후로 작은 친절이야말로 가장 좋은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을 대하는 일상적인 태도. 그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 철로 위에서
 
 선이라는 것은 저에게 무언가를 가르는 용도였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선을 넘고 그렸을까. 내가 가지고 있던 이념과 가치관, 경험, 기억들은 선을 긋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지내는 과정이 잠시 회피의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사회에 통속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회에 포함되지 못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회의 일원이었고 그들에게서 제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타인들이 말하는 현역에 가지 못한, 편한 일만 한다는 무시와 멸시에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식이든 그것 역시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제겐 삶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어느 방향을 가더라도 저는 몸을 옮겨야하고 그 발 아래로 경계선을 지나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어딘가에 걸려서 당황 속에서 평정심을 쉽게 잃지 않을 것입니다. 경계선마저도 삶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환이 / 한국철도공사수도권서부본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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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6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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