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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3·1절 99주년 맞아 독립유공자 50명에 포상

건국훈장 29명, 건국포장 8명, 대통령표창 13명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8-02-27 오후 3: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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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다음달 1일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50명에게 포상을 한다고 27일 밝혔다.

 포상 대상자는 국내와 미주에서 종횡무진 독립운동을 펼친 열혈 여성 차인재 선생,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김종삼 선생 등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9명(애국장 11, 애족장 18), 건국포장 8명, 대통령표창 13명이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0,823명, 건국포장 1,227명, 대통령표창 2,829명 등 총 14,879명(여성 298명)에 이른다.

 차인재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차 선생은 1920년 6월 수원에서 삼일학교 교사로 근무 중 비밀결사조직 구국민단 교제부장을 맡아 임시정부에서 국내로 보낸 독립신문, 대한민보 등을 배포했다.

 그해 8월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중견 간부로 활동하면서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그의 남편 임치호 선생도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등에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공로로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바 있다.

 전라북도 임실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김종삼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다. 김 선생은 1909년 2월 순창군 강진면에서 의병에 참여해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다 체포된 뒤 징역 10년 형의 중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국가기록원에서 수집한 ‘합장부’(일제하 형무소에 수감 중 사망한 사람들을 가매장·합장한 내용을 간단하게 기록한 문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수감된 지 5개월여 만에 전주형무소 옥중에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중국 북만주에서 독립군 사관학교를 정탐한 밀정을 처단한 뒤 순국되어 사형 순국한 염재군·김광은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두 사람은 1916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에서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이동휘 등이 설립한 동림무관학교를 정탐하기 위해 파견한 일본인 등 밀정 3명을 처단하고 체포돼 사형됐다.

 염재군·김광은 선생은 체포된 뒤 1918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사형을 받고 같은 해 7월 9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편 염재군 선생의 동생인 염재영(廉才英) 선생도 이들과 함께 활동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1930년 3월 19일까지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1910년대 중반 중국 북만주의 대표적 독립군 장교 양성기관인 동림무관학교의 대적(對敵) 활동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3·1운동 당시 대규모의 공세적 시위로 유명한 강화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옥고여독으로 사망한 박영칠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3월 18일 강화군 부내면 관청리 시장에서 5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강화경찰서 공격과 일본 순사 응징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3개월을 받고 수감 중 1개월 여 만에 옥고 여독으로 사망 순국하였다.

 또 일제 식민통치 말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독립운동에 진력할 것을 협의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황용순·유종남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두 사람은 1943년 8월부터 1944년 2월까지 전북 전주에서 각각 전주사범학교 고용원(황용순)과 학생(유종남)으로 만나 일본인과의 차별에 반발하여 민족의식 관련 도서를 탐독하면서 일본군의 전쟁 준비에 타격을 가할 방안을 협의하고 주변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힘쓰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황용순 선생은 징역 1년, 유종남 선생은 징역 단기 1년·장기 2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두 사람은 1950년 6·25전쟁에 동반 참전하여 같은 날 전사 순국하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관련기관과 사료수집 협업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여성, 의병 등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더욱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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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아빠(heng6114)   

    나라를 찾기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순국선열 하신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그 후손들이 잘 살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2018-02-28 오전 8:55:25
    찬성0반대0
1
    2018.12.14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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