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해결 기미를 보이던 독도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측 EEZ(배타적경계수역) 측량을 철회하는 대신, 우리가 국제수로기구(IHO) 지명 변경 신청을 재고하는 선에서의 해결 방안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지난 1998년 잠정 합의된 ‘한·일 新어업협정’을 폐기하고 독도와 오키 섬을 기점으로 새로운 EEZ을 선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新어업협정’이 일본의 영유권 주장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기 때문에, 정부의 이런 방침은 일단 타당하다고 판단되며, 국민의 동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독도위기를 둘러싼 복잡한 한반도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의 영토보전과 국가이익을 어떻게 관철할 것인가 하는 정책수단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강경 태도는 한·미 동맹의 균열과 미·일 동맹의 강화라는 국제환경 변화에 크게 연유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 곧 열강에 둘러싸여 남북이 분단·무장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동안 한국이 국가안보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한·미 동맹의 강력한 안보우산이 있었던 때문인데, 이 우산이 걷히려는 조짐을 보이자, 힘의 약세를 파고들어 그들의 국가이익을 관철하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우리로서는 전례없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국력이 월등한 일본에 대적하기가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정치 지도자들간에 남북이 연합하거나 중국의 힘을 빌어 일본에 대항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이 단합하여 외적에 대처하자는 것이 호소력있는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남북이 지금 연합이나 연대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공조’ 명분 하에 교류·협력이 증대되고 있다고 하나, 북한은 대남전략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남북 간 지금까지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합의·실현된 것이 없다. 더욱이 북한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 ‘항일’ 연대 구상은 실현될 수도 없고, 안보 상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힘을 빌리자는 구상도 현실적 타당성을 결여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의 ‘동북공정’ 사례를 거울삼아 우리는 중국의 패권적 요소를 경계해야 한다. 최근 중·북은 경제적·군사적 동맹 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으며, 외교적으로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사실, 중국과 북한은 한 통속이다. 한 쪽의 외침을 물리치기 위해 또 다른 침략자를 불러들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구한말에 우리가 충분히 경험한 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넘을 것인가? 미국의 중재를 통해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도 외적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 영토적 야심이 없고, 자유민주주의·인권을 중심으로 한국과 ‘혈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가 이미 중재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의 특수성격상 ‘동북아 안정’ 명분 하의 미국 중재를 거부하기 힘든 관계 속에 있다.

 노무현 정부가 반일 감정을 ‘민족주의’ 차원에서 감성적으로 이용하려 하지 말고, 냉정한 현실인식과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위기 상황에서 국가이익 수호에 차질이 없었으면 한다. <동아일보 기고. 2006.4.21>

 홍관희(안보전략연구소장)